[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balloon (* 풍 선 *) 날 짜 (Date): 1997년05월03일(토) 03시53분42초 KST 제 목(Title): 우리 만나야 하리 [김남조] 우리 이젠 만나 봐야 하리. 하던일을 접어 두고 서로 달려와 시월의 창가에 마주 앉는다면, 막혔던 세월의 안부를 확인하며 서로의 손을 잠시만 잡는다면, 만남의 실감 온몸에 퍼지며 고맙고 배부르리. 친구여, 우리는 뜨겁기보다는 따스함을, 잦은 만남 보다는 간간이 뜻있는 만남을 원해왔건만 바로 지금 못 참을 주기에 온 듯만 싶구나. 친구여, 오늘은 우리 만나야 하리. 그 무엇도 불타게 하지 말고 적셔주고 자라게 하여 궁극의 좋은 동반자 되자고, 일정한 거리와 동일한 밀도의 오랜 지속을 얻어내자 했던 것을. 그러나 오늘은 만나야 하리. 내 마음 안에 그대의 집을 주리라.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이 아니고 한 가지만은 바라는 사랑으로 그대 앞에 서리니, 다름 아닌 둘 사이의 깊은 중심이 심연에 닿아 내리고 하늘에도 치솟게 할 그 희구이다. 이제 마나야만 하리. 이 계절이 또한 놀랍다. 여린 과일에 단맛과 자양을 따르어 주던 햇빛은 과일을 익혀 내곤 그 신열이 내렸다. 지금은 온화해진 빛으로 물기없는 보송한 바람과 뒤섞여 나지막이 지붕을 지우고있다. 나무들의 덕성을 배울지니 열매 맺는 나무나 열매없는 나무가 모두 정적에 잠겨 생명있는 자의 묵상을 부추긴다. 존재의 테두리를 감아 두른 가호의 빛이여, 금빛의 가락지인양 하다. 그러면서 존재의 숙소마다 등불을 빛추니 그 광명의 고마움이여. 잎을 지운 나무들이 더 많은 바람과 하늘 빛을 통과 시키면서 늠연히 서 있는 모습은 초월자의 장함을 감지하게 한다. 그러나 사람의 가슴 안엔 폭풍이 거듭 분다면 어떻게 되나. 나무의 쓸쓸함이 성냥골과 화약전처럼 맞비벼진다면 어떻게 되나. 이 계절은 다시금 놀랍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모르고 모두가 혼자' 라고 한 시인은 말했으나 그렇지가 않다. 어떤 나무에게도 그리워하는 다른 나무가 있으며 사람들 역시 이와 같다. 깊어 가는 가을에 우리는 한마음 가득히 이 축복을 안아 버리고 말자. 사랑하는 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