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monocell (단세포) 날 짜 (Date): 2005년 3월 1일 화요일 오전 06시 48분 02초 제 목(Title): Re: 루가 복음 15장 11절 돌아온 아들 이야 아, 이 말씀은 지난주에 제가 묵상하다가 소름끼칠 정도로 놀란 구절이군요. 큰아들의 처지가 너무나 저에게 와닿았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큰아들처럼 '아니 저런 개망나니자식이 뭐가 좋다고 아버지는 감싸고 도시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 이야기는 사실 큰아들(혹은 그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에게 더 큰 깨우침을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자, 스토리는 다 아실테고, 다시 큰아들의 불평으로 돌아가보면, 큰아들은 우선 '나는 뼈빠지게 일해왔고 아버지 말씀에 늘 복종했다'고 항변합니다. 자기는 할만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말씀에 복종하고 일 열심히 하면 다일까요? 과연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의 모습을 바랐을까요? 또다른 불평은 '아버지는 내게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마리 주신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저 망나니자식한테는 잔치를 베풀어주시는건지 큰아들은 이해할 수가 없죠. 즉, 큰아들의 사고방식은 '내가 아버지 말 잘들으면, 아버지는 내게 잔치를 베풀어주실것'이라는 전제를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그의 (겉보기에) 효성스런 행동은 아버지로의 보상을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흠, 그래도 제3자 입장에서 보기에도 큰아들이 억울해 보이긴 합니다. 그럼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 그의 인생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나? 여기에 제가 충격을 받은 구절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 첫머리에 보시면,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 제가 가진 영어성경에는 So the father divided the property between them.이라고 되어 있네요. 즉, 큰아들 역시 자기몫의 재산을 이미 나누어 받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그 재산 중의 염소새끼 한마리쯤은 잡아서 친구들과 즐겨도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친구들과 쓰기에는 재산이 아까왔는지 아니면 일에 중독되어 (동생이 돌아올때도 그는 들에 나가 있었죠) 놀 여유조차 잊었는지는요. 이 사실은 마지막에 아버지는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이미 네 것이 아니더냐?' ----------- 저는 이 이야기를 자유의지와 관련지어 받아들였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생을 개척할 자유'가 주어졌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활용하는건 우리의 몫이고,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도 이것만큼은 손대질 않으시죠. 사실 자유는 두려움을 수반한다고 봅니다. 결과를 예측할수 없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불안을 가져오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길 주저합니다. 설사 지금 현재 상황이 잘못된걸 알더라도, 그게 익숙하다면 불안해보디는 새로움보다는 낫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막상 비난의 화살은 남에게 돌립니다. 어나니에서 흔히들 말하는 '징징징'이지요. 우리 인생은 우리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도 새로운 도전은 늘 두렵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마저도 따뜻이 맞아주는 모습을 보여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자, 세상으로 나아가거라. 실패하고 돌아오더라도 내가 맞아줄테니 걱정말고' 라는 메세지를 담아서 말이죠. 저 역시 아주 전형적인 소심하고 쪼잔한 키즈인입니다만, 이 말씀은 정말 전기가 통하듯이 와닿는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제 인생을 바꾸어 나가기로 말이죠. 운동도 시작했고, 조만간 친목모임에도 여럿 가입할 계획입니다. '키뚱뻔빈대공' 중에 3-4가지는 해당되는 저이지만, 이대로 축 처져서 살긴 제 인생이 너무 소중하고 아깝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