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unitas (조수사) 날 짜 (Date): 2000년 3월 29일 수요일 오전 09시 09분 55초 제 목(Title): [오늘느낌] 용서 아래의 글은 유니텔 가톨릭 동호회에 올린 사순 2주간 강론으로 올린 부족한 글입니다. 너그럽게 봐주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 "누가 용서하는가?" 조인영 알베르토 SJ 수사 예수회(Unitel ID:manresa) 사순 2주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사순시기를 흔히 '회개와 용서의 때', 혹은 '은총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용서받기를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용서받기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마치 화장실에서 뒷처리(?)를 하지 않고 나온것처럼, 고백소에서 사죄경까지 받아 나오면서도 마음 한쪽 구석에 무엇인가 응어리가 남아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과연 용서를 받은것인가요? 정말로 용서받기를 원하나요? 누가 용서를 하는가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죠. 그 당시의 율법으로 '죽어 마땅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나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죄를 짓지 마시오"라고 말씀하시며 용서해주셨죠. 그 뒤에 그 여인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성서에 나와있지 않지만 우리는 잠시 우리의 상상을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상상해볼까요? 만약에 그 여인이 그렇게 용서받고도 돌아가서 "나는 죽어 마땅해....", "몹쓸 인간이야.... ", "죄를 또 지으면 어떻게 하지..."등등의 걱정과 근심을 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용서(우리 본당신부님도, 김수환 추기경님도, 교황님도 아닌 예수님이 하신)는 과연 그 여인에게 무슨 역활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걱정들은 예수님의 용서까지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 용서를 받아드렸는지 아니면 거부했는지 확인하시지 않습니다. 그 여인에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비슷한 경우지만 '부자청년'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초대를 거부하고 갖은 인상을 쓰며 돌아갔다는 사실도 여러분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용서받기를 강요하시지 않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충분히 용서를 거부할 수 있기도 한 것입니다. 내 자신을 받아드리지 못한다면 하느님도 우리를 용서해주시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즉 "무늬만 용서"(형식적인)이지 나를 진정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나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이 여러분의 체험 속에서도 확인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존재는 바로 '진흙과 하느님의 입김'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두가지가 대조적인가요? 도저히 서로 합쳐질래야 합쳐질 수 없는 것들이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흙과 하느님의 입김을 둘 다 갖고 있는 것이지요.(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사실이지요)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닮은 인간을 만들으시길 원하셨지 '인간하느님'을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흙에서 출발합니다. 무엇인가 불완전하고 삐그덕거리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한한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기본적인 바탕을 무시한 채 많은 가톨릭신자들은 죄에 대한 결벽증(!)에 걸려서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흙이 가진 불완전하고 삐그덕거리고 변화한다는 사실을 거부한 채 자신의 죄를 끊임없이 후벼파서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를 자유로움이 아닌 또 다른 죄로 끌고 갑니다. 예수회원들은 예수회원의 신원을 말할 때 흔희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벗으로 불림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이 예수회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봅니다.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깊이 뉘우치지만,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로 우리 한명 한명을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후벼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용서를 거부하지 않고 와락! 끌어 안는 용기가 필요할 뿐입니다. 흙이지만 하느님의 입김을 담고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주님의 용서에 기쁘게 응답하는 은총과 기쁨의 사순시기가 되시길 저의 부족한 기도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흙, 하느님의 입김, 죄인, 그리스도의 벗, 부르심 (위의 단어를 갖고 틈틈히 묵상하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