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TBA (To B Anncd) 날 짜 (Date): 1999년 4월 16일 금요일 오전 02시 57분 16초 제 목(Title): [펴옴] 대중속에 보통명사로 자리잡는 CCM 대중속에 보통명사로 자리잡는 CCM ------------------------------------------------------------------------------- - 글을 시작하며 찬양 사역을 본령으로 하는 크리스천 음악인외에도 세상속의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 중에서도 끊임없이 크리스천 음악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그룹들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왔고 또 이들이 크리스천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다고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한편 이런 대중음악인들의 크리스천 음악계로의 진출을 두고 크리스 천 음악계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첫번째 시 각은 손을 들어 크게 환영하는 시각이었고 두번째로는 어떻게 세상 속에 찌들어 있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거룩한 복음성가계에 치고 들어왔냐는 식의 곱지 못한 시 선을 보여주는 옛 교복입고 학교다닐때에 보여준 엄격한 생활지도 교사의 시각이었다. 물론 두번째 시각의 반응을 보이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세상에서 소위 잘 나가던 시절에는 하나님을 잊고 세상 속에 푹 젖어 살다가 인기가 가시고 세상에서 절망해서 임시 방편적으로 생활고의 문제를 복음성가계에서 풀어보 려는 얄팍한 상혼같은 것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가스펠계에서 종사하던 아티스트들이 보기에 대중음악인들의 신앙의 깊이는 일천한데 어떻게 감히라는 식의 바리새인적인 태도로 대중음악 가수들을 쉽게 판단하는 데에도 물론 큰 문제가 있었 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 두가지 시각에 대해서 모두 신중하게 비판적인 자세로 점 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을 감찰하고 판단하실 수 있는 이는 오직 주님 한분이시기에. "너희가 너희 형제 자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태복음 5:47-48) 대중속의 CCM 흐름의 고찰 (1)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CCM은 찬양인가? 대중음악인가? CCM은 찬양이면서 대중음악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모두는 하나님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의 주권은 하나님께서 모두 지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같은 나라는 세워질 때부터 청교도 정신에 의해 건국된 나라이기 때문 에 기독교 문화 환경이 바탕을 이루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불교와 유교의 영 향을 받아온 종교 다원 환경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CCM은 종교음악이라는 선입 견이 우선하였고, 게다가 세상과 종교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폐쇄적인 이 원논리에 의해 대중과 교회의 접촉점은 미약할 수 밖에 없었다. 1960년대 까지는 교회 문화가 대중 문화의 우위에 있었다. 먹고 살기에 바빴던 1950년 6.25동란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의 구호 물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던 이 시절 기독교적인 문화 배경을 바탕으로한 미국의 선구적인 문화를 앞장서서 도입해 보급한 것이 바로 교회였다. 교회가 사실상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구심점을 이룬 시절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970년대는 그 열매를 거둔 때였으니 많은 가수들이 교회문화 환경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당시 민주의 암흑시대에 교회가 권력의 횡포로부터의 우 산이 되어주어 사회 문제와 정의에 대한 노래가 탄생했다. "상록수" "금관의 예수"등이 바로 그러한 노래였다. 1970년대 미국포크의 가수 Bob Dylan이나, Joan Baes같은 이들의 노래가 교회 대학 청년부에서 불리기 시작했고 이 노래는 대학가로 깊이 파고 들어갔으며 이 당시 교회문화에 대한 대중의 종교적 반감은 적었다. 1980년대의 문화환경은 급격히 변화되기 시작하면서 교회문화의 영향력은 급격히 퇴조하기 시작한다. 1981년전국은 컬러TV시대로 접어 들었다. 본격적인 영상의 매 체력이 발휘되던 시대였다. 대중문화는 본격적인 궤도를 타기 시작했으며 대중에게 행사하던 그간 교회의 문화적 영향력은 더이상의 상향곡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당시에는 사명이나 목적의식에 의해 탄생한 CCM보다는 가수 개기인의 신앙양 심에 의해 만든 "찬송" "찬양"들이 대부분이었다. 쿠데타로 시작한 신군부 정권은 한국 교회의 거듭된 축복기도 속에 탄생했고 대중은 민주주의 좌절이라는 쓰라린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국교회는 사회정의는 간과한 채 수적 부흥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대중과 교회의 관계는 소원해지게 되었다. 문화적 편견은 더해지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은 철저히 사탄의 것"이라는 편견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로 들어와 대중음악의 신(SCENE)은 급격한 변화를 이루는데 아무래도 90년대 대중음악의 커다란 무게중심은 "서태지와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존의 음악적 장르와 관념을 과감히 떨쳐 냈으며 10대를 중심으로 하는 젊은이들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밀리언 셀러를 기록해 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교회 문화를 이끌어가는 문화 주도 세력들은 문화적 환경의 변화를 읽기보다는 "NEW KIDS ON THE BLOCK"사건 이후 대중문화에 대한 폐쇄적인 입장을 견지하다가 반 뉴에이지 운동으로 한데 집결하게 되었다. 1990년대 마녀사냥이 극성을 부리던 시절 이었다. ROCK은 무조건 위험한 것이며 잔잔한 명상음악들은 무조건 힌두이즘에 입각한 뉴 에이지 음악으로 몰려 배척당하던 문화적으로 참혹한 시절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구식논의-이미 미국에는 1970년대에 논쟁이 끝난 것임에도 불구하고-를 우 리나라에 재현한 사람들의 영향때문인지 당시 교회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던 세대들은 문화적 공황을 겪던 시절이었다. 이런 문화적 편견의 불똥이 옮겨진 복음성가계에는 조금만 비트(BEAT)가 있거나 스타일이 진보하면 뉴에이지 복음성가로까지 몰리던 문화적 혐오증세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92년 말 일부 사이비 교파에 의한 극단적인 종말론 사건으로 한국교계는 도덕적인 치명상을 입었고(정통과 사이 비를 구별할 수 없는 대중에 의해) 대중과 교회의 거리는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 나 이러한 가운데에서 당시 선구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과감히 CCM을 도입해 이제는 한국 크리스천 음악의 주류를 형성한 프로그램이 CBS를 통해 "가스펠 아워" "CCM 캠프"가 생겨나기 시작했고(당시 프로듀서 양동복씨, 진행자 하덕규씨) 이런 프로그 램들을 통해 대중과 복음을 연결하려는 노력들이 결실을 맺었다. 1991년, 1992년을 통해 미국의 대표적 CCM 아티스트 AMY GRANT가 미국 팝계의 정상에 오르기도 한 시점이어서 일반 대중들이 한국 CCM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다. (2) 1990년 초반이후 지금까지 대중음악속의 CCM 고찰 가스펠 아워를 통해 CCM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한국 CCM은 그야말로 싹을 트고 꽃이 피어나가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의 오도와 한국교회의 폐쇄성을 일대 쇄신할 작 업이 전개되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바로 CCM운동이다. 교회안에서만 머물렀던 기독교 음악, 그리고 갈수록 감각과 퇴행적인 분위기로만 달리는 대중음악, CCM은 이 두가 지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문화적 양극을 하나로 엮는 문화적 접촉점이 되었다. 그 작업이 상징적인 결실로 맺어진 것이 바로 1993년초에 발표된 것이 바로 "빛으로 모 두 함께" 앨범이었다. 당시 그야말로 가요계의 최정상에 올랐단 실력파 가수들이 하 나의 빛, 하나의 지향점으로 모여 영속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노래로 표현한 앨범이었 다. ROCK으로 BLUES로 FOLK로 REGGAE로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형 태를 동원해 만든 이 앨범이 당시로서는 너무 빨리 발표되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앨범을 통해 대중음악 가수들의 본격적으로 크리스천 음악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참여 아티스트로는 한동준, 박학기, 김도균, 김목경, 이정란 등이 있었 고 이들은 당시 대중음악계에서 그야말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대중음악가수들의 CCM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일반 대중음악 앨범 속에서도 CCM이 실리기 시작했는데 손지창, 솔리드, 김성호, 박정운 같은 아티스트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제 CCM이란 용어는 비단 기독교 세계에서만 머물르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속에 도 보통명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더욱 바람직한 것은 이 일을 통해 문화의 역 크로 스오버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CCM 아티스트들의 일반 대중음악계로의 진출 이었다. 1994년 복음성가 가수 이성균의 가요 앨범을 시작으로 최근 제일 잘 나간다는 HOT의 앨범에 참여한 곽상엽이 앨범을 준비하고 있으며 신세대 CCM 그룹 아가파 오가 가요계 진출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상호 교류와 커뮤니케이션 속에 대중음악과 CCM이 교류되고 있는 가운데 보다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이 필요한 시점으로 떠오르 고 있다. 1997년 여름 미국 POP계와 CCM계를 흥분시킨 사건이 있으니 바로 BOB CARLISLE의 미국 팝계 평정이다. "BUTTERFLY KISSES"라는 곡으로 빌보드 앨 범챠트 정상에 오른 BOB CARLISLE의 소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는 한국 CCM계도 대중속에 올라가 최고가 되야할 시점이 도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최고의 CHRISTIAN ROCK 그룹이 올해 1월 내한 공연을 가졌는데 이 공연에서 한국 최고의 ROCK GUITARIST 김도균이 협연 공연을 가졌으며 그의 뛰어난 연주 실력은 PETRA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탁월한 대중음악인의 CCM진출과 더불어 신실한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의 예술적 역량강화의 오묘한 조화만이 한국 대중음악계 와 CCM계를 꽃 피우게 할 초석이라는 대범한 인식이 21세기를 3년 앞둔 요즘 우리 음악계의 과제라 생각한다. 한용길(CBS FM 프로듀서) CCM잡지 LOOK 1997년 11, 12월호 중에서 To Be Announc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