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4일 수요일 오전 11시 26분 36초 제 목(Title): 중앙/분수대 종교재판에 대한 사죄 [분수대]종교재판에 대한 사죄 ------------------------------------------------------------------------------- - 지난 92년 10월 3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교황청 아카데미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3백60여년전 교황청이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내린 선고가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교황의 이같은 언급은 교회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은 한 인간에 대한 복권 (復權) 이자 사죄 (謝罪) 였다. 1633년 로마 종교재판소에 소환된 70세의 갈릴레이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地動說) 을 부정하라고 강요받았다. 갈릴레이는 "과거의 잘못을 맹세코 포기하며 저주하고 혐오한다" 고 선언함으로써 목숨을 구했지만, 그 뒤 78세로 죽을 때까지 자택에 연금됐다. 종교재판의 마지막 대목에서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중세시대교회는 절대적이었다. 교회의 권한은 세속에까지 확대, 교회가 모든 것을 지배했다. 이 무렵 교회가 벌인 주요 사업중 하나가 이단 (異端) 추방이었다. 이를 위해 종교재판이란 무시무시한 장치가 마련됐다. 123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종교재판소를 설립하고, 그 운영을 도미니쿠스수도회에 맡겼다. 그후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종교재판이 열렸으며, 숱한 사람들이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화형 (火刑)에 처해졌다. 그중에서 가장 가혹했던 것이 스페인이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몰아낸 뒤 종교와 정치의 통일을 위해 이슬람교.유대교.기독교 이단세력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다. 초대 종교재판소장이었던 도미니쿠스 수도회 수도사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는 재임중 2천명을 화형에 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스페인 왕마저도 두려워한 무서운 존재였다. 그후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과학의 발달로 자연현상에 대한 해석에서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면서 종교재판소는 신자의 신앙적 순수성과 교회의 질서와 관습을 유지하는 평범한 기구로 변했다. 마침내 1908년 피우스 10세에 의한 로마 교황청의 대대적 기구개편때 종교재판소란 용어는 사라져버렸다. 로마 교황청은 오는 2000년 대희년 (大禧年) 을 맞아 교회가 안고 있는 과거의 '괴로운 유산' 을 청산하는 사업을 추진중이다. 그중 하나로 올해초 종교재판 관련기록을 공개했으며, 최근 종교재판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 위한 심포지엄을 갖는 등 과거의 잘못을 참회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새로운 천년을 맞아 새롭게 태어나려는 교회의 모습을 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