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RNB (rainbow) 날 짜 (Date): 1998년 9월 14일 월요일 오후 01시 45분 24초 제 목(Title): 자끄 엘룰과 도덕률 자끄 엘룰 이야기가 나와서 부연 설명 합니다. 작년에 '뒤틀린 기독교'를 읽으며 개신교보드에 정리해본적이 있었지요. 끝까지 진도 나가지 못했습니다만, 지적하신 도덕률에 대한 언급이 거의 주제인듯 했습니다. 엘룰의 입장을 전하면, 인간이 도덕률을 만들어 실제상황들을 판단하고 정죄 하면서 부터 기독교회는 뒤틀리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실제상황에 적용 (교우들끼리의 관계, 사도와 신도들의 관계 등등) 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교회가 대중화 되면서 통제를 위한 제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과정에서 신도들은 사제들과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만남보다는, 교리가 정하는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도덕률) 제도에따라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죠. 정해진 문서를 읽고 고백함으로써 신자가 됐음을 인정받고, 정해진 의식에 참석하고 정해진 생활 양식을 지킴으로써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거나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내려지게 된 것이죠. 이런 와중에 다양한 실제상황에 적합한 성령의 가르침이 누락되었죠. (이부분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도는 효율적인 통제라는 면에서는 힘이 있지만, 실제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고려할 수는 없습니다. 제도라는 것 안에 도덕률도 포함이 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제도, 도덕률은 폐기 되어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이대목이 엘룰의 주장에서 중요한 대목입니다. 엘룰은 초대 교회의 바울이 했던 모범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요약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성령"의 가르침을 실제 상황에 구현하는 부단한 노력을 신도들이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바울서신서는 각 교회마다 발생한 도덕적, 신앙적 문제들에 대한 성령의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들은 그당시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입니다. 엘룰이 했던 문학적인 표현을 빌리면, 실제상황은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어있는 제도 보다 살아서 숨쉬는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신도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도덕의 폐기가 아니라 도덕을 창출하고 그 의미를 시시각각으로 재발견하라고 합니다.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변치않는 성령의 관점을 적용하라는 말이죠. 엘룰은 이렇게 변증법적인 신앙을 가지라고 합니다. 과격함을 항상 배격해야한다 라던지, 과격함은 항상 존중 받아야 한다 라는 주장은 변함없는 도덕률이라는 점에서 차원이 같은 주장입니다. 또는 '항상' 옳고 그른 것은 없으니 아무말도 하지말라는 것도 항상 옳고 그른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원이 '비슷한' 주장입니다. (항상은 시간, 공간, 개개인 마다 다른 모든 상황을 말합니다.) 저는 엘룰의 주장을 수용합니다. 이시간, 이곳에서 누군가가 취해야할 행동이 올은지 그른지에 대해서 성령의 민감한 음성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달라진 상황에대해 성령의 가르침을 다시 물어야 합니다. 기도 속에서 성령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바울의 서신서에 담긴 몇가지 구체적인 내용들이 현대 교회에 그대로 적용하기 무리인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도들이 주의해 보아야 할 부분은 특정한 상황에서 성령은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에대한 성령의 일관된 관점입니다. 엘룰은 주장합니다. 성령의 민감한 음성을 듣는 것은 실패해 왔고, 앞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않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