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SSman (inigo) 날 짜 (Date): 1998년03월23일(월) 09시24분57초 ROK 제 목(Title): 스테어님께 요즘같은 분위기에 입에 풀칠 하는데 지장 있을까봐 글쓰기를 자제하고 있는데, 스테어님 글에서 제 이름이 자꾸 거론되니 가만 있는것이 도리가 아닌것 같아서 다시 몇자 끄적여 볼까 합니다. >그렇지만 SSman님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반기독교적인 입장 역시 하나의 진리를 지향하는 >움직임이며 포용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도 '다 같은 진리' 중 한 가지로 취급될 >법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만큼은 날카롭게 반응하시는군요. 반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논의를 펼치기만 하면 그것은 '잘못된 시각'이며 '어설프게 해석한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그것은 SSman님의 '포용적인' 관점이 알고보면 '마음에 >드는 것'과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스테어님께서 그러하시듯이 저역시 제 입장에서 그것이 잘못된 혹은 짧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반기독교도 진리를 추구하는 하나의 움직임임을 부인 한 적은 없습니다. 반기독교는 기독교를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기 보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리가 기독교에만 혹은 어떤 특정 종교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저역시 그렇게 생각함은 누차 말씀 드렸습니다. 또하나.. 불교 보드에서 종교에 대한 혹은 불교에 대한 이러한 논쟁을 저는 본적이 없습니다. 불교도 종교이고 보면 종교 자체에 대한 논쟁이 구지 기독교에 국한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러한 논쟁의 요지는 종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라는 종교에 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보드의 논쟁에서 종교라 이름한 것이 주로 기독교를 지칭하는 감을 받은 것도 그러한 이유이겠지요. 아마 여기 가톨릭 보드에서의 논쟁도 가톨릭 자체 보다는 기독교 (주로 개신교) 에 대한 논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반기독교로 나타나고 그것이 반종교로 까지 확대 되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도 이분들의 생각은 위에 어느분이 쓰셨듯이 종교는 있는듯 없는듯 우리의 아픈 부분만을 조용히 어루만져 주기나 하고 쓸데 없이 나서지 말았으면 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포교보다는 개인의 수양이나 깨우침을 강조하는 불교에 대한 반감이 전교를 중요시하는 기독교 보다 덜하지 않나 생각되는군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로 시작해서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이하 생략)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집장만해서 적당히 자식 키우며 살면 그런데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몫은 다 한거라고 생각하신다면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깨달음이라는 말에서 약간의 갈증이라도 느끼신다면, 종교가 그런 편리한 것이 될수 없다는 데 동의 하셔야 할 것입니다. 포교 혹은 전교(선교)는 모든 종교에서 기본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이 진리라면 그것을 특정인만 소유한다는 것은 진리의 속성상 도저히 참을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전교의 방법이 문제일 수도 있겠군요. 비교적 개인적인 깨우침이 중요시되는 불교에 비해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의 특성 상 그것이 적극적인 방식을 취하게 되는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저는 '진정한 카톨릭'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SSman님과 같은 >입장이 과연 천주교의 입장에서 용납될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라면 이미 다른 분들이 >의문을 표시하신 바 있습니다.) “진정한 가톨릭”이라는 말은 우습게 들리는 군요. 저는 가톨릭이라는 이름의 기독교를 믿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가톨릭이 진정한 기독교와 다른 그 부엇이 있다손 치더라도 저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이 기독교의 가르침을 그래도 가장 낫게 가르쳐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고정된 “진정한 가톨릭“적인 것이 있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저는 가톨릭의 발전(진화)하는 모습을 (그것이 아주 느릿느릿하다 해도) 좋아합니다. 진리는 변할수 없다해도 그것을 담는 그릇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1000년전 혹은 500년 전 가톨릭을 보고 오늘을 가톨릭을 판단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제 입장이 천주교에서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물론 한국 개신교에선 어떨지 자명하지만요. 천주교의 많은 수도자들이 선불교의 수행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스님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것일 수는 만부당 합니다. 그리고...스테어님, 유야 세례를 받으신 분들의 신앙에 대한 제 생각인데요, 크게 세부류인것 같습니다. 하나는 커가면서 독실한 신앙을 계속 유지하시는 분들. 수도자나 사제의 길을 택하시는 분들 중엔 이런 분들이 많은것 같더군요. 그들은 아마 우리 모두가 한때 가지고 있었던 하늘나라를 계속 잃지 않은 복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커가면서 자신의 가치관이 형성되면서 자신의 신앙에 대해 회의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죠. 아마 스테어 님께서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을지 모르겠군요. 세번째는 그냥 습관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신자라는 특별한 의식도 이들에겐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저는 이 세번째 부류가 가장 심각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 중 대부분은 결국 어느때인가 자신의 신앙을 다시 찾게 된다는게 제 견해입니다. 제가 전에 내기를 건 이유도 이런 자신감 때문이었죠:) 저는 이 세 부류중 두번째를 가장 바람직한 경우로 생각합니다. 한번의 방황도 없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어지는 상은 없는 것이니까요. 스테어님의 철저한 자기 분석과 문제 의식이 님의 신앙을 어느 정도로 두텁께 해 줄지 기대가 되고, 또 부럽습니다. 저는 반(비)기독교인들의 이런 문제 제기를 아주 고맙게 생각 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기독교가 얼마나 자만과 권위에 물들어서 잘못되어 질까를 생각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기독교의 존재를 고맙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역사에 많은 오점을 남겼다 해도 그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야기될수 있는 문제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이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 신앙이 기여한 바가 그러한 오류들을 상쇄하고도 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하나의 중요한 가치들 중 하나가 아니라 최고의 가치로 가르치는 종교가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기독교가 유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독교와 반기독교는 서로 타파해야할 적이 아니라 친교를 주고 받아야할 동반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족하다고 봅니다. 그런 가운데서 자신에 대한 성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침 불교보드에 예리큰아빠께서 쓰신 글이 있군요. 예리 큰아빠께 양해를 구하진 않았지만, 잠깐 옮겨 보겠습니다.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군요.: ------(여기서 부터) 진리 자체가 사람마다 틀려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틀릴수 있을 것입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라고 할까요. 어떤 사람은 다리를 만지면서 굵고 둥그런 기둥같다고 하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둥글지만 기둥보다는 막대기 같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귀를 만지고 나서 기둥같다기 보다 널판지같다고 하고, 배를 만진 사람은 널판지처럼 얇지는 않다고 할것입니다. 그럼 코끼리를 다 본 사람은 있느냐하면 그건 아닌것 같습니다. 부처님도 생로병사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생명의 탄생에 대해(생명현상, 우주의 탄생 등등), 살아가는 과정에 대해서(사회현상, 정치, 경제현상 등등), 수 많은 질병에 대해서(암, AIDS 등등), 그리고 죽음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들이 이러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행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