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8년03월14일(토) 20시26분02초 ROK 제 목(Title): 포용 포용은 요즘의 유행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sexlife 보드에 넘쳐나던, 동성애자들을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또한 '경계'하고 '우려'하던 조건부 휴머니스트들...) 그래서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Symond나 hbh, beegee등의 소신파들이 차라리 돋보이는 것이겠지요. 자신의 세계관을 버릴 수 있음을 각오하지 않는 배부른 포용은 포용이 아닙니다. '당신의 세계관은 나의 것과 다르지만 알고보면 같은 것'이라는 어정쩡한 변명은 '당신의 세계관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입장보다는 약간 향상된 것이지만 결국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의 세계관은 나의 것과 격하게 충돌하지만 당신의 입장을 인정한다'라는 정도라면 그것을 '포용'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이 보드에서 읽을 수 있는 포용, 특히 '모든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라는 부류의 포용은 여전히 '나의 입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나는 너그럽다'는 자기최면의 꿀맛까지 즐기려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성 바돌로뮤의 학살이야말로 카톨릭다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학살을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시절의 엄한 모습을 잃었기 때문에 개신교인들이 오늘날의 천주교를 비난할 여지를 남기는 것입니다. '포용'은 세속화된 오늘날의 천주교에 썩 잘 어울리지만 카톨릭답지 않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