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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holic ] in KIDS
글 쓴 이(By): sca (----용----맧)
날 짜 (Date): 1997년11월14일(금) 16시41분44초 ROK
제 목(Title): 박노해 문화제.. 化石?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박노해, '아직'과 '이미' 사이-


<사람만이 희망이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고

박노해 문화제가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후원으로 열린다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이 당연히 생긴다.

이제 박노해라는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어,

영원히 격리해 버려야 할 '사형에 처해 마땅한 자'(검찰의 당시 구형)이 아니라,

'치열한 바깥과의 싸움에서 이제 안과도 그런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성숙한 사람'(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을 요약한 것임)이라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어.


그러나....


전쟁 같은 밤일을/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서른 세 그릇 짬밥으로/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 다해 바둥치는 전쟁 같은 노동일/아..

오래 못 가도 어쩔 수 없지/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이 절망벽 깨뜨려 솟구칠/

거친 땀방울 피눈물 속에서/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우리들의 분노/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오를 때까지

-박노해 시, 김용수 곡, 안치환 노래(노동가요 공식음반), <노동의 새벽>-


박노해,

박'노'(동)'해'(방),


일요일이면 아들 손 잡고 

공원에라도 가야겠다고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는데,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차도, 공장장 차도, 도통 태워주질 않아,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더니,

이미 때는 늦어 봉합수술은 되지도 않고,

알리러 간 집의 천진한 아이 웃음에,

차마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종로서적, 산재관계 책을 아무리 찾아봐야,

엠병할, 수없이 쌓인 책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강변 둔덕에서 정형과 함께 소주를 마시며,

이미 식어 푸르뎅뎅하게 되어 버린 손을 묻는다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장들의 햐얀 손을

프레스로 짓짤라

묻고 또 묻는다고

절규했던 그.(<손무덤>, 시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80년대 한국 땅에서 가장 과격했던,

폭력을 휘두른 적은 없지만 사상의 과격함으론 한총련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2인 영수 중의 하나였던 그.


물론 <'아직'과 '이미' 사이> 같은 

그의 인격의 성숙은 

백배 치하해 마지 않을 일이다.

그리고, 과거의 그의 투쟁 중

잘못한 일, 적당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숙한 그를 기뻐하는 말들 속에,

과거를 '해 볼 수 있는 방황'으로 여기는 듯한,

수상한 낌새를 읽어 내는 것은 

나 하나 뿐일까?


노(동)해(방)인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도 그의 것이지만,

'노동의 새벽'도 그의 것이다.

'경주교도소의 성숙한 카톨릭 신자'도 그지만,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영수도 그이다.


이제 '노동의 새벽'은,

'사람만이 희망이다' 없이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어 버렸는가?


이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영수는,

'경주교도소의 '성숙'한 카톨릭 신자' 앞에서,

한 때의 '미성숙'의 한 모습으로만 치부되게 되어 버렸는가?


'박노해 문화제,

주최 : 천주교 인권위원회'

물론 이에 항의할 천주교 신자도 상당수 있겠지만,

그런 점에서 천주교 인권위원회 분들을 존경하지만,

그분들의 박노해는 누구인가?

사노맹 영수인 양심수 박노해인가?

'성숙'한 카톨릭 신자인 좋은 사람 박노해인가?


박노해 개인은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통해서,

새로운 '노동의 새벽'을 만들고 있다고 믿고 싶다.

과거의 '노동의 새벽'을 다시 반복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노동의 새벽'이 없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만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는 

化石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천주교의 좋은 분들의 좋은 마음을 너무 비뚤게 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개신교 신자가 천주교 보드에서...


그러나, 박노해 문화제의 기쁨 못지 않게,

웬일인지 느껴지는 답답함에 이 글을 쓴다.


박노해 문화제가 성공하기를...

하루바삐 박노해의 얼굴을 옥 밖에서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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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도 살아가고
하나님도 살아가고. 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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