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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aDA ] in KIDS
글 쓴 이(By): Dooly (Pillar Man)
날 짜 (Date): 2003년 10월 28일 화요일 오전 01시 48분 39초
제 목(Title): 마가린 열덩어리???


이젠 마가린 덩어리와 비교하기에는 아기가 많이 커버렸다. 정상분만아들에 
비해 아직은 몸무게가 약 1킬로가량은 덜 나가지만, 이젠 제법 얼굴에 살도 
붙고, 팔다리도 통통하다. 

병원에서 집에 온후, 너무 고생한 아이라서, 지 엄마나 나나 틈나는대로 
안아주었더니 이젠 손을타서, 안고있다가 내려만 놓기 무섭게 빽빽 울어댄다.
어떤때는 그게 너무 힘들어 밉기도(?) 하지만, 한때 성대가 젖혀저 목소리를 
잃을까 염려했던 때를 생각하면, 우렁차게 울어대는 녀석을 다시 한번 
보다듬으며 달래곤 한다. 조산도 여간한 조산이 아니기때문에, 녀석에게서 
조금만 이상이생기면 담당의사에게 전화를 돌려대곤 하는데, 전문의 만나기 
힘든 캐나다지만, 이녀석은 언제나 일순위로 전화를 내려놓기 무섭게 바로 
병원에 갈수있도록 조치를 취해준다. 집에 온이후로 비교적 별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녀석이 고맙기만하다. 아직은 폐기능이 정상적이지 못해 
산소를 24시간 공급받고있지만, 이젠 서서히 산소공급을 줄이고, 스스로 숨을
쉬는 연습을 하라니, 감사할따름이다.

어제는 녀석이 태어나면서 부터 디지탈 카메라로 찍어놓았던 사진들을 
컴퓨터에서 쭉 정리를 했다. 처음 태어났을때 사진을 보니, 마치 털뽑힌 
마른참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는 투명하며 발그스름한 빛을 띄어 그안에 
온갖 혈관들이 보이고, 뼈와 가죽밖에 없는 팔다리, 그리고 온몸에 원숭이와 
같이 난 털, 퉁퉁 부은눈등...무엇하나 이아이가 살아남을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는 참 힘들었을거란 생각이 들었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잘 
넘겨주어 비교적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보통 조산아들이 가질수있는 문제들이 크게 나누어서 약 18-20가지 정도가 
되는데,이녀석은 그중에서도 심각한 문제들만 골라 약 16가지 문제들을 거쳤다.
하나하나의 문제들이 결국은 이아이의 삶의 질을 결정지을수 있는 것들이어서,
부모된 우리로서 지난 6개월동안은 정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삶 그자체였다.
팔다리를 못쓰게 될 가능성, 귀가 안들릴 가능성, 목소리를 가질수 없을 
가능성, 그리고 가장최근까지 심각하게 의심되었던 실명가능성까지. 결국 눈도
기적적으로 괜찮아 졌지만, 그 모든과정을 겪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후 아동병원 안과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것저것 진단을 
해보더니, 시력을 잃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말했었다. 그때까지 다른 모든 
문제들을 잘 견디며 이젠 거의 끝에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눈이 문제라니, 청천 
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날 조용히 눈물흘리는 아내를 아이와 함께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사무실로 오는길에 차안에서 참 많이 울었다. 신호대기할때
옆차선에서 같이 신호를 기다리던 어떤 젊은 여자가 내게 괜찮냐며 손을 
흔드는것도 의식하지 않고 소리내어 엉엉 울어 버렸다. 아무리 사지가 멀쩡한들 
앞을 볼수없다면, 결국 평생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할텐데...그리고 무엇보다
큰애한테 앞못보는 동생으 그 짐을 떠맞겨야 하는것등, 너무 많은 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의 그런 절망감 또는 슬픔에 나의 이기심도 배어있음을 
느꼈다. 결국 아이가 앞을 못보게 되면, 나와 내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거란 생각도 배어있다라는것이다. 과연 내가 부모로서 자격이 있는걸까?
난 뭣때문에 그리고 슬퍼하고 절망하는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부모로서의 절망감보다는 나 자신이 겪을수있는 삶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그런 나의 울음에 한몫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내자신이 한없이 추해 보였다.

그날 퇴근후, 난 큰애를 불러놓고 동생이 어쩌면 힘들게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완곡하게 얘기했다. 아직 국민학교 1학년밖에 안되서인지, 
자기가 동생을 열심히 도와주면 되니까 아빠는 걱정안해도 된다면 비장함을 
보였다. 아빠인 나보다 순수하고 낮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아들에게 하는 소리를 듣고있던 아내가 이윽고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는 
의사에게 물어봐사 가능하다면 자기눈 하나를 아이에게 주고싶다고 했다. 만일
내눈이 맞으면 내눈을 줄수있냐는 말과 함께. 글쎄...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의학적으로 그것이 가능한지는 차후문제라쳐도, 내눈을 줄수 있겠냐는 말에
난 애비로서 그러겠노라 선뜻 대답하지 못한것이다. 난 자격이 없다, 난 자격이 
없어라고 되뇌이며 그날밤도 뜬눈으로 지세웠다.

아이의 눈발당상황을 점검하기위해 그후로 일주일 간격으로 안과전문의를 
만나러 다녔다. 일주일 간격으로 한달이상을 다녔는데, 갈때마다 의사의 표정이
좋아지지가 않는다. 그때마다 절망이었다. 나와 아내가 할수있는일을 기도밖에
없었다. 병원에 다녀올때마다, 아이와 아내를 집에 내려놓곤, 사무실로 향하는 
차안에서 울었다. 어찌해야 좋을까...하나님 지금까지 지켜주셨는데, 눈도 
보이게 해주세요!!! 난 이 기도 밖에 할수 없었다. 

집에서 아이를 안고 얼려도 보고, 또 혹시 명암이라도 구분할까 싶어 카메라 
후라쉬도 터뜨려보고...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벌써 퇴원한지 한달 반이나 
지났는데....나나 아내나 이젠 슬픔보다는 앞으로의 생각을 해야 했다. 이젠 
아내도 슬픔보다는 시력없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를 걱정하는듯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는 호들갑이다. "여보, 여보, 
애기가 카메라 후레쉬에 눈을 깜빡거려!!! 정말이야!!" "그래? 여러번 해봤어?"
"응, 한 열번쯤 해봤는데, 그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깜빡거리다가 하두 
여러번 하니까 울기 시작하더라구!!" "정말? 알았어 곧갈께..."

난 보스에게 집에좀 다녀오겠다고 얘길하곤, 자동차로 30분거리에 있는 집을
약 18분만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 보니 녀석이 자고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붙잡고 울어댔다. 아이를 흔들어깨웠다. 녀석이
눈을 뜨더니 울어대기 시작했다. 난 디지탈 카메라를 녀석에게 들이대곤 셨터를 
눌렀는데, 마침때가 늦은 아침이라 남향집인 우리집 거실 안으로 많은 빛이 
들어와 후라쉬가 터지질 않았다. 그래서 커튼을 내리고, 어둡게 만든다음에 
셔터를 눌렀더니, 후랏쉬가 터지고, 녀석이 우는중에도 눈을 깜짝이는게 
아닌가... 순간 너무 기뻐 아내와 얼싸안고 한 대여섯번은 더 셔터를 눌러댔다.

며칠후 다신 안과의사를 만나러가서 검진하지전에 그 얘기를 했더니, 별로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검사후 지난번보다는 나빠지지 않고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고했다. 결국 시간이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나빠지지 않았다는것은 희망을 
가질수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희망을 가질수있다는것은 참 가슴 벅찬 일이다.
결국 그 후 몇번의 검진끝에, 눈안의 혈관이 제대로 형성되기 시작했고, 또 
제대로 된 방향으로 자라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주엔, 안과의사가 이젠 정상적으로 볼수있을거란 얘기를 했다. 검사를 마친
의사가 축하한다며 내어깨를 두드린다. 너무 고마워서 몇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의사에게 하곤, 집으로 돌아왔다. 이전과는 달리 집에서 사무실로 오는 
차안에서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나왔다. 

요즘은 녀석이 볼수있다는것에 감사하며 살고있다. 이젠 손을 재빨리 눈앞에서 
낙아채면 눈도 껌뻑인다. 유난이 눈이 크고 뚱그런녀석이 웬지 얄밉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젠 좀 가슴졸이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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