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ac0033) 날 짜 (Date): 2013년 01월 16일 (수) 오후 07시 49분 48초 제 목(Title): Re: 쓰레기 영화 밀양.. 함께한 첫번째 추수감사절 생각나는 대로 2008/12/02 01:49 http://darianvalley.blog.me/140058917346 전용뷰어 보기 미국의 할러데이 중에서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웬지 한국의 추석 명절과 비슷한 생각이 들어 친근감이 간다. 흐터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라든지, 터키, 크랜베리 소스, 펌프킨파이, 매쉬드 포테이토 등 풍성한 음식을 들며 정을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은 한국의 추석과 흡사하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고향을 다녀오는 차량행렬의 모습도 한국 추석의 귀성행렬을 연상케 한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지금으로부터 388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20년, 종교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의 플리무스 항을 출발한 102명의 청교도들은 3000여마일을 항해한 끝에 두달여만에 지금의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도착한다. 당초 버지니아를 목적지로 삼았으나 거센 풍랑으로 더 이상 남쪽으로 항해를 계속할 수 없게되자 그보다 훨씬 북쪽인 매사추세츠 해안에 닻을 내린 것이다. 원래 연안 화물 수송용으로 건조된 소형선박인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작은 배에 많은 인원이 타다보니 식량과 보급품을 충분히 실을 수 없어 이들이 매사츄세츠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는 식량이 완전히 바닥 나 있는 상태였다. 빈손으로 초겨울의 돌투성이 해안가에 내뎐져진 이들 중 절반 가량이 두달을 채 못넘기고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절망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 때 구세주처럼 이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바로 ‘왐파노악(Wampanoag)’이라는 인디언 부족이었다. ‘동쪽사람’ 이란 뜻인 ‘왐파노악’ 인디언들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과 신발을 신고 있었으며 땋아 내린 머리 뒤에는 한개의 깃털을 꼽고 있었다. 그들은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던 이방인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추위를 피할 수있는 움막을 지어 주었으며 옥수수와 호박, 감자 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필그림들이 영국에서 올 때 가져온 밀 씨앗은 돌이 많은 매사추세츠 땅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인디언들은 거북과 사슴과 물고기를 형제라 불렀으며 숲을 존경하여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사람과 동일하게 존중하였다. 또한 사냥을 한 후에는 반드시 짐승의 뼈나 고기 일부를 숲에 남겨놓아 다른 짐승들도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음식과 예의로 극진히 대접하는 이들의 풍속에 따라 인디언들은 이상한 배를 타고 나타난 백인들을 두팔 벌려 환영한 것이다.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겨울을 난 필그림들은 봄에 씨를뿌려 농사를 짓고 사슴과 토끼를 사냥하였으며 물고기를 잡아 식량으로 썼다. 가을이 되자 옥수수와 감자 등을 거둬들였으며 첫해 수확량이 겨울을 날 수있을만큼 넉넉하였다. 이들이 떠나온 영국의 플리무스를 본따 플리머스라 이름을 부친 작은 마을에는 여덟채의 인디언식 움막집이 지어졌으며 통나무를 잘라 서양식 건물인 교회당도 지었다. 충분한 식량과 거처가 마련되자 필그림들은 신천지에서 첫해를 무사히 보낸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자신들을 도와준 인디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이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다. ‘왐파노악’ 부족의 추장인 ‘마사소이트’를 비롯하여 90여명이나 되는 많은 인디언들이 참석하였다. ‘매사추세츠’라는 주 이름은 추장의 이름 ‘마사소이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디언들은 사슴을 잡아오고 터키와 옥수수 감자 등 자신들의 식량을 가져와서 필그림들과 여러날 동안 함께 먹고 마시고 즐겼다. 이것이 최초의 추수감사절 잔치로 기록되고 있다. 백인들은 더 이상 인디언들의 도움이 필요 없어지자 인디언들에게 기독교신앙을 강요하기 시작하였으며 인디언들의 자연숭배 신앙을 미개하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하였다. 점차 백인과 인디언들간에는 불신과 반목의 골이 깊어졌고 급기야 서로를 원수로 여겨 전투를 하기에 이른다. 총칼로 무장한 백인들에게 인디언들의 활과 창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많은 인디언들이 살해되거나 내륙 먼 곳으로 피해 달아나 버렸다. 백인과 인디언들이 형제처럼 한 테이블에서 잔치를 벌이던 추수감사절은 이렇게 단 한번으로 끝이 나 버렸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당시 백인들을 생각하니 추수감사절 터키 맛이 어쩐지 씁쓸해지는 것 같다. [출처] 인디언과 함께한 첫번째 추수감사절|작성자 소백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