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halee (아기도깨비) 날 짜 (Date): 2002년 5월 8일 수요일 오전 08시 54분 15초 제 목(Title): 어버이날 기념 2000년도에 올렸던 글입니다. ^^ *-- [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halee (아기도깨비) 날 짜 (Date): 2000년 5월 9일 화요일 오전 12시 53분 24초 제 목(Title): 어버이날 기념. 하루 지났지만 ^^. 어버이날 기념 뽀스팅. 성석제라는 소설가. 정말 좋다. 구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은 다 구해서, 아니 다 사서 읽은 것 같다. 정말 기발하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그를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식어구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걸 글이라고 쓰나?"하는 생각을 할 사람들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깨는 그의 다른 점이. 더 좋다. 특히 뒤통수를 치는 듯한 그의 기발한 생각들이. 너무 좋다. 한동안 그의 글을 올리리라.. 올리리라.. 하다가 못 올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감동했던 글을 다시 읽으면서 "이걸 올리면 좋을까?" "이걸 편지로 보내주면 이 친구가 좋아할까?" 하는 입장에서 새로 읽어보면.. 영 아니다 싶다. 흠.. 애석하게도 성석제의 글을. 적어도 서너개는 한꺼번에 읽어야 그 맛이 느껴질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오랜 타이핑시간이 지겨웠던가? 흠.. 사실은 "저작권" 문제까지도 얼마전에는 생각을 했었다. 얼마전에 탐독하던 통신사연재글에 "모씨께서 저한테 허락 안 받고, 모 통신에 글을 펐더라. 기분 나빴다" 하는 글을 보고 좀 무서웠거덩. 서론이 너무 길었다. 성석제 소설, 아니다, 이건 수필이구나. 그 중에 하나를 옮겨본다. 가능한 원본의 띄어쓰기와 줄나누기를 그대로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 성석제에 대한 소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생각난 것이. "학교 선배라고 처음으로 자부심을 느껴본 사람"이라는 거였다. ^^ @ 글을 쓰다가 생각난 거. 성석제의 "자존망대형 조발성 천재증후군"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성석제의 신간 "홀림"의 몇편, 특히 '스승들'을 참조바란다. (맞나? 가물가물 ^^ 가물가물해서 방에 가서 찾아봤더니, "홀림"이 아니라, "홀림" 이전에 나온 "새가 되었네"에 있다. ^^) 그러고 보니.. 성석제는 참 자전적인 소설을 많이, 노골적으로 쓰나보다. ^^ @ 내글 스타일도 성석제 따라가는 거 가터.. 걱정됨. -_- *--------------- 젊은 아버지의 추억 [성석제의 "쏘가리"의 산문편 중에서] 내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는 늘 중년이다. 아버지는 환갑의 나이에 돌아가셨는데도 지금도 나는 아버지, 하면 반사적으로 중년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중년을 나이로 환산하면 서른 살에서 쉰 살 정도일까. 연부연강(年富力强), 사나이로서는 알맞은 경륜에 자신감있는 행동이 조화를 이루는 황금기다. 그렇지만 내가 아버지를 중년으로만 기억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열세 살이 되기 직전의 겨울, 나는 전형적인 사춘기적 증상과 맞부닥쳤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주제 파악 불량에서 기인하는 자존망대형(自尊妄大形) 조발성(早發性) 천재증후군'이라 하겠는데, 그 증상은 먼저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는 일단 그 증상에 관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인 이상, 아버지도 나와 같은 나이에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했을 게 아닌가. 천재는 유전이니까. 나는 평소에 비해 숙제를 충실히 했고 어둡기 전에 집으로 들어왔으며 모든 식구들에게 경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제가 요즈음 왠일이야'라는 찬사가 우리집 지붕을 뚫고 하늘에 이르렀다가 다시 땅으로 떨어져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이 원리는 라디오에서 배운 것임).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이 될 즈음, 아버지와 독대할 기회를 맞았다. 식구들과 함께 밤에 읍내 성당에 갔다가(이런 일은 일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했다) 술집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오라는 어머니의 지시를 받은 것이다(이런 일은 평생 한번뿐이었다). 포연처럼 연기가 자욱하나 대포(大砲)는 없는 대포(大匏)집에 가보니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함께 가운데 연탄을 넣을 수 있게 만든 동그란 식탁을 둘러싸고 박격포와 자주포와 곡사포의 차이점, 잦은 정전과 월남전, 지역 출신의 역사적인 인물과 공과에 대해 엄숙하면서도 치열한 논정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연기로 눈물을 쏟으며 한동안 서 있다가 "아부지요, 어머니가 약주 조금만 더 드시고 빨리 오시랍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의 친구분이 "아이가 어쩌면 이렇게 의젓한가"고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열광적으로 칭찬을 하며 내게 친구처럼 술잔까지 내밀었다. 아이라도 어른이 주는 술은 마셔도 괜찮으며 어른 앞에서 술을 배워야 한다면서. 나는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경솔하게 그 잔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미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서 조금씩 훔쳐먹는 술에 중독이 될 지경인지라 새삼 술에 대해 배울 것도 없었다. 이윽고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분들은 가까운 데에 살았지만 우리집은 십 리에서 조금 모자라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겨울인데다 밤길이었던 고로 쉬운 길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휘파람으로 애마(愛馬)를 불러, 아니다, 술집 바깥에 세워두었던 자전거에 타고 나를 뒷자리에 앉게 하셨다. 그리곤 휘파람을 불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아버지의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등에 기대야 했다. 그 등은 알맞게 따뜻했고 어느 때보다 넓고 관대하게 느껴졌다. 인적이 드문 신작로에 들어선 뒤 나는 조심스럽게 "아부지"하고 불렀다. "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아버지는 그날 마신 술로 기분이 좋았다. "싸나아이? 어디 한 번 해보니라." "저 학교에 안 가면 안 되겠습니까? 배울 것도 없는 것 같고 애들도 너무 유치해서 사귈 마음이 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자연과 라디오를 스승삼고 주경야독으로 제 수순에 맞는 진학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이 씨익씨익, 하고 페달만 밟으셨다. 나는 얼씨구, 내 말이 먹혀드는구나 싶어 주마가편(走馬加鞭) 격으로 말을 쏟아냈다. "실은 제 정신 수준은 보통 사람의 서른 살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지 어언 두 달이 넘었습니다. 어쩌면 대학도 갈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싼 학비를 안 대주셔도 되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아버지는 자전거를 세우고는 거의 표준말과 가까운 억양과 어휘로 말했다. "고맙다. 내 걱정까지 해주다니.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아라. 시간을 줄 테니." 그리고는 달빛 비치는 서산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자전거를 세워두고는 신작로 아래 냇가로 내려갔다. 나는 아버지가 오줌을 누러 가시나 보다, 생각하고는 자전거 위에 앉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오시지 않았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자전거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지만 자칫 잘못 내리다가는 자전거와 함께 신작로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 같아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한 채 떨면서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버지가 앉았던 안장을 움켜지고 내가 하느님을 서너 번은 족히 불렀을 때 비로서 아버지가 올라왔다. "달밤에 신작로 위에 자전가 타고 혼자 있으니깐 세상이 다 니 아래로 보이더냐?" 아버지는 자전거를 끌면서 말씀하셨다. 그 물음에는 천재인 나도 대답할 말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아버지 나이가 사십대 초입이었다. 나는 내 아이가 내게 그렇게 말해온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본다. 준비되지 않은 채 몸과 마음만 들뜰 아이를 마음으로 감복시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세상의 틀에 우겨넣으려는 한 내 중년은 아버지의 중년에 비할 수 없이 유치하다. -------- 성석제 소설의 한 구절로 시그를 바꿉니다. ^^ 요컨데 나는 '넌 뭐냐'의 '뭐'가 되고 싶다. '뭐가 뭐냐'고 물으면 더 이상 가르쳐줄 생각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