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halee (아기도깨비) 날 짜 (Date): 2001년 5월 6일 일요일 오후 06시 11분 10초 제 목(Title):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 왜 갑자기 이런 글이 쓰고 싶어진 걸까? *---- 밤 꼴딱 새면서 데이타 작업을 하다 방에 들어갈려고 자리에 벌떡 일어났는데. 앗. 어찔하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진다. "늙었군" '내일 아침에 다시 서울로 출근을 해야 하니깐. 오늘은 일찌감치 자야 하는군. 지금이 9시 반이니깐, 1시에는 일어나야지 밤에 잠이 오겠지. 자명종 맞추자.' 그런데 벌떡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왜 2시 반이냔 말이야.. 큰일이다. 이러면 오늘 또 밤에 잠이 안 올테고.. 그럼 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속도로 운전을 해야 한단 말이야.... 우울하군. -_- 그러면서 방에서 밀린 일들을 좀 하고 연구실에 출근을 했다. 할일이 너무 많다. 어제 돌려둔 프로그램은 다 돌아가 있었고... 이제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해야 하는데... 오후 4시. 어디서 뭘 먹어야 하는 걸까. 늙어서 어지럽기까지 하는데. 그 시간에 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정되어 있다. 다른 거는 다 "혼자서도 잘 해요"이면서 학교 식당 외의 식당에서는 절대 혼자서 밥을 못 먹는 할리에게.. 그 시간에 가능성은 1. 빵 사서 먹는다. 2. 김밥이나 떡볶기 등을 포장해서 사다 먹는다. 3. 만화방에 간다. 그나마 이번 주에는 차를 가지고 내려왔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꼴딱 굶었을 것이 분명하다. (저번에 그랬다가 급성 위염이 와서.. 흑. 죽을 뻔 했다. 글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꽤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군." 헉.) 만화방으로 발길을 옮긴다. 예전에는 만화방은 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게 된 후에도 혼자서 간다는 건 상상도 못 했었는데.. 우와. 혼자 만화방에 가서 밥을 먹다니. 다 컸네, 다 컸어. 가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 본다. 뭘 먹지? *----- 막내인 할리는 하는 짓도 막내답게 영악스러울 때가 있다. (정말? 아닌 것 같애. -_-. 하여튼 딴 건 몰라도 먹는 것에는 그렇다.) 주변에 나름대로 "식도락"하는 사람들을 많이 둔 덕분에 남들이 다 하는 "try and and"를 별로 안 하고, 대학 시절부터 맛있는 음식만 골라골라 먹을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좋은 음식점"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잣대가 생겼는데. 하나. 비싸고, 써비스 무지 좋고, 분위기 무지 좋고, 맛도 무지 좋은 집. 둘. 싸고, 써비스, 분위기, 맛 모두 용서가 되는 수준인 집. 둘 중에 하나면 만족을 하는 편이다보니.. 당연히 비싸고 좋은 집들에 대해서 완벽하게 좋은 평가를 내려본 기억이... -_- (세종문화회관 근처의 "나무와 벽돌"에 갔을 때는 냉동실에서 그대로 꺼낸 듯한 버터가 나오길래 불러서 물어봤더니. "저희는 원래 버터를 이렇게 드립니다." 크하. 음식 맛은 기억도 안 난다. 워낙이 열 받아서서.. 난 그래도 왜 빡빡 따지지를 못 하는 걸까? T.T) 아.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어제인가 그제인가는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지?"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그 생각을 하게 됐는데.. 어버이날. 어버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3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딸기를 참 좋아하셨단다. 그래서 제사상에 원래는 오르지 않는 딸기를 울 아버지께서는 어떻게든 구하셔서 상에 올리고야 마신다. 어버이날. 갑자기 엄마아빠가 좋아하시는 음식이 뭐였더라..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근데 퍼뜩 떠오르는 음식이 몇개 없다. 아버지? 시래기 된장찌개. 엄마? 단감이랑 홍시. 아. 불효녀 같으니라구...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참으로 이런 순간 "궁금해진다"라는 표현이 머쓱하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궁.금.해.지.다. 니...... 주변에 식도락가들이 많은 반면에 나는 "살 만큼만 먹으면 되지"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 덕분에 입맛은 너무 까다로와져 버렸다. 그러니깐.. 위의 이중적 잣대 덕분에, 평소에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먹지 못할 정도만 아니고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남들이 말하는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까다로운 것이다. (이건 영화나.. 사람들의 외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외모 평가는 상당히 후한 편이지만, 연애인들에 대해서는... -_-)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 김치찌개. 한국인에게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아닌가. 평소에는 가능한 가볍게 참치를 기본으로 한 것이 좋다. 하지만 가끔씩 돼지고기를 넣은 것으로 강하고 진한 맛을 느껴봐야 한다. 학부시절, 시골분식-맬깁슨 등등으로 잦은 이름 변화를 추구하던 그 분식집의 "김치전골". 커다란 뚝배기 하나에 1인분에 3000원이었었는데... 고춧가루를 더 넣어 만든 빨간 김치찌개에, 떡, 당면, 쑹쑹썬 파와 양파... 그 뜨겁고 매콤한 맛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한동안 아주 우울할 때는 그 전골만 먹어도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처럼 무지무지 즐거워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먹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음식이 있다는 건 참.. 정말로 큰~~ 행복인데.. 지금 내 주변에는 그럼 음식을 갖춘 음식점이 없다. 아.. 나에게 김치찌개는 이렇게 중요한 음식이란 말인가? 다른 음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길게 적을 것이 없어. 갑자기 말문. 글문이 막힌다. 비빔밥. 대학4학년 겨울방학. 대학원에 가면 무슨 철창 신세라고 생각을 했었는지 "남은 청춘을 불태운다"는 거창한 목적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짠돌이 할리. 정말 식빵에 쨈만, 그것도 동네에서 제일 싼 슈퍼를 찾아찾아 사 가지고는.. 그것만 가지고 1달간을 연명했다. (맥도날드? 딱 한번 갔다. 현지 식당 음식? 먹어봤나.. 아.. 한 3번 정도 먹은 것 같다. 가끔 같이 출발했던 친구들을 만나면 그네들의 배낭에서 나오는 고추장을 기본으로 한 찌개 같은 걸 얻어먹기도 했다. 큭큭. 돌아와서 반년간 식빵은 쳐다도 안 봤다.) 돌아오기 한주 전부터 "들어가서 제일 먼저 뭘 먹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선택한 메뉴는 비빔밥. 얼마나 멋진 메뉴인가? 밥에 나물. 거기에 곁들여져 나오는 국물. 그리고 고추장. 우리 나라 음식의 모든 요소가 하나로 집결된 음식이 아닌가? 사실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의 샐리처럼 여러 음식 섞어서 나오는 거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지만.. 비빔밥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매운 음식을 상당히 좋아하는 할리. 하지만... 비빔밥은 뭐라고 해도 음식점에서 나오는 고추장 넣어 먹는 거 말구, 집에 남은 나물들에다가 된장찌개를 푹푹 넣어서 쓱쓱쓱쓱 비벼먹는 게 제~~~~~일 맛있다. 아.. 집에 가고파... 탕수육. 난 아무리 비싼 집에서 좋은 중국음식을 먹어도.. 탕수육이 제일 좋다. 큭큭. 너무 두껍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튀김옷에 달달~~~한 탕수육 소스. 거기에 중요한 건.. 채소들이다. 적당한 크기에 잘 익혀져서 소스맛이 어우러진 야채까지... 스파게티. 스파게티아라고.. 체인점이 날로 늘어가는, 짬뽕그릇에 스파게티를 담뿍 담아주는 집이 있다. (크하. 나같이 스파게티아를 한 문장에 이렇게 촌스럽게 표현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봐. - 아시다시피 그렇게 촌스런 집은 아닙니다. ^^) 맛있고 비싸고 양 작은 집들도 많지만... 나는 스파게티아처럼 적당한 가격대 성능비를 자랑하는 집들이 좋다. 하여간. 친한 친구들이 주말이면 데이트다 시댁 나들이다 바빠진 이후에 같이 스파게티 먹으러 갈 사람이 없어진 할리는 작은 오빠를 살살 꼬드겨서 스파게티아에 가서 까르보나라를 시켰다. 울 작은 오빠. 정말. 딱. 두 포크만에 나한테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현아야. 집에 가서 김치 팍팍 넣어서 라면 끓여주면 용서해주께." 덕분에 할리는 그 많이 스파게티아의 스파게티를 혼자서 기분 좋게 다 먹을 수 있었다. 큭큭. 나무와 벽돌을 갔던 그 날. 원래는 원조 포모도로를 가려고 하였으나 시간이 늦어서인지 벌써 문이 닫혔었다. 언제 꼭 가서 그집 화이트소스를 꼭 먹어봐야 하는데... 라면. 라면.. 아.. 라면.. 개인적으로 치즈 등의 텁텁한 것들이 라면에 추가된 걸 아주 싫어한다. 라면은 자고로 라면다워야 한다.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스프는 1/4만 넣구요.. 고추가루와 마늘로 맛을 내 보세요." 하는 내용을 보고 "음. 이렇게 해 먹어도 맛있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라면은 라면다워야 한다. 새로 나온 라면은. 라면과 스프만으로 맛을 느껴봐야 한다. 할리의 라면 끓이는 법. 재료 : 안성탕면. (이것보다는 예전의 그 빨간 봉지의 5개들이 농심라면과 삼양라면이 최고였다. 근데. 요즘에는. 안성탕면이 제일 싼 라면이다. -_-) 파. 잘 익은 김치. 있으면 계란 하나. 물 두대접. 라면은 물이 넉넉해야 한다. 자작하게 물을 잡으면 녹말 빠져나온 양이 국물에 비해 너무 많아서 국물이 텁텁해지고 면마저도 불은 느낌이 온다. 넉넉히 물을 넣고 끓도록 기다리면서 계란을 풀어 놓는다. 물이 끓으면 면이랑 스프를 넣는다. 단. 스프는 물에 풀지 않고 면 위에 놓이도록 한다. 왜냐? 스프가 면에 스며들게 할려구? 아니. 그냥 울 큰오빠가 그렇게 하면 맛있다고 했거덩. (울 오빠는 라면 끓이는 동안 애국가를 몇절까지 부르면 적당히 잘 익는다고 했는데.. 애국가를 2절 중간까지 밖에 못 외워서 시간은 나의 감각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라면이 끓는다 싶으면 계란을 끓어오르는 냄비 둘레 가깝게 쭉 부어준다. 그리고 절대 젓지 않는다. 텁텁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인이 워낙이 텁텁함을 싫어하므로, 늦게 끓는 냄비 중심부를 피해, 냄비 주변에 계란을 둘러, 가능한 빨리 그리고 풀어지지 않게 계란을 익힌다. 그러고 다시 끓어오르면 김치를 넣고 또 끓으면 파를 넣어준다. 고등학교 가정 교과서를 되돌이켜 보면 "면을 끓일 때는 한소끔 끓을 때 찬물을 약간 넣으면 면이 탄력있게 잘 익는다"라고 되어 있으나, 라면에는 이렇게 중간중간에 부가재료들을 넣어줌으로써 찬물 넣어 물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신라면이 아무리 우리나라 라면 판매량의 40%네 어쩝네 해도, 왕라면이라는 둥 면빨이 어떻다는 둥둥 비싼 라면이 많이 나온다 해다. 나는 이렇게 김치 팍팍 넣어 내 방법으로 끓인 값싼 라면이 최고로 맛있다. 또 뭐가 있을까? 풋고추. 상추쌈. 호박잎이랑 양배추 쪄서 간장에 찍어먹기. 고사리 나물. 회냉면. 쫄면. 우동. 왕만두. 수제비. 꿀떡.... 과일은 딸기, 참외. 쥬스는 사과쥬스,키위쥬스 (좋아하는 과일이랑 쥬스는 다르네.. 그렇군.) ... 세상에 음식만큼 입맛만큼 주관적인 것이 뭐가 있을까? 한동안 패밀리 레스토랑입네... 하고 좋아했지만. 확실히. 우리 입맛에는. 우리 꺼이. 최.고.다. 여름이 온다. 여름에는 울 엄마가 해 주시는. 시원하게 식히 멸치장국에. 잘 삶아낸 소면에. 쏭쏭 썬 김치. 맛있게 무친 부추나물. 얇게 채썬 오이. 달짝지근한 호박나물에 풋고추랑 깨소금이랑 고춧가루 약간에 참기름 한방울 똑. 떨어뜨린 간장양념. 이게 최고다. *------- 무지무지 고민하면서 만화방에 들어가서 결국에는 비빔밥을 시켰다. 일요일이라 원래 먹던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비빔밥이 배달되는 바람에 옆 테이블의 커플들이 먹고 있는 라면을 무지무지 부러워하면서 맛없는 내 비빔밥을 투덜투덜 먹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너무 좋았다. 황사입네, 꽃가루입네... 해도 귓가를 스치는 시원한 해질녘의 바람은 사는 것도 가끔 즐겁다고 생각하게 해 주는 활력소가 된다. 그러면 뭐하나.. 이렇게 즐겁게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쌓여있는 일들은 나를 목메고 기다리고 있는 걸. 흑.흑. @ 흑흑. 근데 방금 읽고 온 "맛의 달인"에서는 "면 끓을 때 찬물 부어주라는 건 틀린 말이다"라고 했다. 흑흑. 뭐가 맞는거야? @ 음식 관련 만화나 글들을 너무 많이 봤나보다. 다른 사람들처럼 무지하게 음식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아서.. 민망하다. @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싸구려 동그랑 쏘세지랑 김을 좋아하는 내 연구실 동기녀석과 "닭은 목이 젤 맛있어"하는 연구실 선배오빠와 ... 길거리에 먹는 호떡과 붕어빵을 좋아하던 kjk오빠의 그녀, 하영이의 엄마도... 음식만큼 사람의 원초적인 기억과 그리움을 자극하는 것도 드물지 않을까? @ 며칠 전 tV 보드에서 어떤 게스트께서 "저 할리님 팬이에요"하는 글을 보고 극도로 민망하고 상당히 당황스러웠었다. (흑. 그 글 좀 지워주세요.) 그래도 기분은 무지 좋았다. (guest(asdf)님 감사합니다. 글에 대한 칭찬은 살아오면서 딱. 두번째 들어보는 것이다.. 황공할 따름입니다. ^^) 칭찬은 약도 되고 병도 된다. 오늘은 좀 오바한 것 같다. 300줄에 육박하는 글이라니.. 누가 이 맺음말까지 읽을 수는 있을까? @ 그래도 한마디 덧붙이면. 또비오빠.. 맛있는 거 사 주세요... :) -------- 뭐가잘사는거고,뭐가제대로사는거고,뭐가바르게사는건지. 뭐가이시대가원하는건지,뭐가이사회가원하는건지,뭐가이시대와사회를위하는건지. 혼란스럽고.가끔은.짜증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