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rheeyj (TinSoldier�) 날 짜 (Date): 1996년09월03일(화) 20시40분58초 KDT 제 목(Title): Forget Paris... 그냥 한번 그 번호를 눌러 보았다. 가끔 그냥 그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면, 난 도둑같이, 그 번호를 누른 뒤 들려오는 인사말만 듣고 수화기를 내려 놓곤 했다.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며 수화기를 내려 놓은 적도 있었고, 2번을 누르고 무슨 말을 남기려다가... 결국은 끊어 버린 적도 많았다. 어제도 그렇게 그냥 그 번호를 눌러 보았다. 너무나 많이 들어서, 그래서 내가 외워버린 그 인사말은 나오지 않았다. 2, 3초의 침묵이 흐른 뒤... 귀에 익은, 그런데 왠지 다른 때와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한 달도 더 전에 녹음된 그 인사말에는, <목소리>의 주인이 외국으로 갔음을 알려 주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일 년후에는 돌아온다는, 그래서 그때 다시 연락해 달라고 하는 그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읊쪼리듯 답했다. “... 그 땐... 이미 난 여기 없어...” 잘 다녀 오겠다는 <목소리>의 마지막 인사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움직이질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 안녕하십니까? 삐삐 호출은 1번, 음성 녹음은 2번을 눌러 주십시요.... 안녕하십니까? 삐삐 호출은...” 반복되는 메마른 안내를 들으며 나는 그냥 그렇게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5월말이었다. 그 날 내게 다가 왔을 때, 아니 다가오려는 것 처럼 보였을 때... 난 애써 외면허고 말았다. 언제나 내가 외면 당했던 것 처럼... 떠날 때 내게 연락을 할 생각은 있었을까... 그때 난 서울에 있지도 않았다. 어쩌면 내 호출 번호에 남겨 놓은, 여행중이므로 다음에 다시 연락하라고 했던 내 인사말을 듣진 않았을까... 꿈깨라, TinSoldier! 그렇게 아프고도 아직 정신 못 차리다니... 오늘 나는 “텅빈” 학교 교정을 무감한 몸짓으로 오갔다. 말할 수 없이 편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애써 지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낯익은 뒷모습에, 낯익은 걸음거리에, 하다 못해 낯익은 가방에 놀랄 일이 없어졌다. 이제 더 이상 갑작스런 마주침으로인해 내 마음에 쏟아지는 그 수많은 감정들을 애써 숨길 필요도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중도를 이유없이 둘러 볼 일도 없어졌다. "Out of sight, out of mind"란 구절에 마지막 희망이나 걸어 볼까나... 나는 오늘 말할 수 없이 편했다. 너무나 편해서... 내가 살아있는 것인지조차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Forget Paris, TinSoldier. Forget it... dam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