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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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rheeyj (TinSoldier�)
날 짜 (Date): 1996년08월26일(월) 00시44분20초 KDT
제 목(Title): 덧없음.


오랫만에 집 앞까지 찾아 온 같은 과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밤 빗 속에서 친구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공허한 발걸음을 철퍽이며 집에 들어 선 순간

지나가는 말씀으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후배 XX란 애가 전화했더라."

"... XX요?"

그럴리가 없다. 잘 못 들으신 것이겠지.

"그렇다니까, XX."

그럴리가 없어. 그 애가 내게 전화를 할리 없어.

그러면서도 정말 그 애가 전화한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느낌이 나의 무의식을

움켜 쥐고 있음을 난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난 이 모양이구나...


수첩을 뒤적이며 그 이름과 비슷한 이름들을 훑었고

그리고 내게 가장 전화를 걸었을 법한 한 후배의 이름을 찾아냈다.

전화기의 단추를 천천히 누르면서 XX가 아닌 이 후배가 전화한 것이길 바라는 

마음을 먹으려 애썼다.

전화벨이 울리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 녀석이 건 것이 아닌가?

그러면... 누굴까...?

다시 한번  같은 번호를 눌렀다.

벨이 한번도 채 울리지 않았을 때 밝은 목소리로 녀석이 받는다.

"전화했었니?"

"예..." 

녀석의 밝은 목소리가 왠지 나의 기분을 어렵게 만들었다.

"내일 연극 구경 같이 갈래요?"

그리 내키지가 않아 이런 저런 핑계를 찾다가 

정말 내일 저녁에는 약속이 있음을 알고는 그 말을 했다.

대신 내일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서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

웬지 그냥 끊기에는 미안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던져 보았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재미있는 일은 없었는지...

철지난 농담도 썰렁하게 해대며 

나는 그렇게 수화기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조금만 마음을 모으면 곧 생각날 

XX의 삐삐 번호가 행여나 떠오를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실없는 이야기들로 나의 마음을 채웠다.

아니... 나의 마음을 지우고 있었다.


수화기를 올려 놓으며

내 마음에 지나가는 두 가닥의 느낌...

하나는 통화한 후배에 대한 미안함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이제 그리움이 내게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그 안도감은 바로 

덧없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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