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iLeen ( _jette_ ) 날 짜 (Date): 1996년05월26일(일) 01시47분17초 KDT 제 목(Title): 짧고 길었던 하루.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질 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숨을 고르듯 쓰려한다. 온라인이 아닌 에디터에서. ......... 어제 가서 뵈려했었던 외할머니를.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늦게 학교에 들러 수업거부에 대한 회의를 마치고, 딴 때보다는 덜 네모난 얼굴의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을 타고, - 토요일이 묻어있는 사람들의 얼굴 - 마른 공기로 몰려오는 비교적 쾌적한 바람을 담은 버스를 타고, 그리고 아주 조금 걸어가서, 뵈었다. 할머니는 기다리고 계셨다. 새하얗게 빛나는 짧은머리, 늘어진 가슴. 이십삼년동안 수없이 많은 풍경과 사연을 담아왔던 나의 두 눈을 헤치고 들어선 할머니의 모습. 분명 처음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까 본 'The Sheltering Sky' 의 마지막 읊조림처럼, 내 인생에서 보게 되는 몇 안되는 '그림' 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엄마의 어린시절로 날아갔고, 연애사도 훔쳐보았으며, 내 '연애사업'에서 써먹어야할 strategies 를 주섬주섬 주웠고, 심지어는 할머니 당신의 애틋한 첫사랑까지 마치 내것인 양 맛보았으니. 코쟁이들 나오는 외화는 싫으시다고 하셨었는데, 외손녀가 넋을 빼고 보는 바보같은 Betty-Lou 인가 뭔가하는 여자의 답답한 이야기를 따라 보시다가 설핏 잠이 드셨다. " 할머니, 주무세요. 저 이만 갈께요... 나중에 엄마 아빠 한국에 오면 함께 뵈러 올께요.. 그냥 누워계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따스한 손에 잠긴 손을 살짝 빼며, 나는 말했다. " ...그래.. 가려구. 할미보러 바쁜데 왔지.. 응 안나가마... 너, 할미가 얼마나 보고싶은 줄 알아? " 나는 그저 할머니의 까칠하고 골진 손가락을 만졌을 뿐. 밖으로 나온 나는 불과 두시간 반 전에 무얼 사갈까 하다가 그냥 들어섰던 것을, 수퍼마켓의 가장 떳떳한 그늘을 차지하고 있는 갖가지 과일들을 보며 무척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서 차도를 등지고 전화를 걸어야하는, 어설픈 작자의 성급함으로 놓여진 지난번 그 전화 부스를 다시 눈으로 누르면서 다가갔다. - 당신이 반대편에서 전화를 걸려고 걸어오고 있었더라도 이미 난 그에게 전화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구 - 안좋은 감에, 차소리까지 보너스로, 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그도 내 목소리를 잘 못알아들었다. 신경질적인 톤으로 변하면 안되는데. - 이 전화기는 하면 꼭 이래. 징크스를 깨야하는데 - 이번 주말의 명화 소개글을 읽으며 플랫폼에 앉아있다가 만났다. 그리고 최근에 물이 많이 좋아졌다는 경희대 앞으로 갔다. 내가 얘기를 많이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비자발적 벙어리일 수 밖에 없어서였나. 요즘 내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 아닌 현실'에서 오갔던 상념들을 그에게 말해줌으로써 그 상황과 잡념들을 내스스로 현실화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새로운 사람들과의 첫모임에 가는 그를 10분 늦게 보내고, 주말의 명화 소개글을 마저 읽으며 지루하지 않게 집으로 왔다. 바짝 마른 화초들에 물을 주었다. 그동안 못 주었던 것이 미안해서, 보상하듯 모자라지 않게 듬뿍. 방과 마루를 쓸고 닦았다. 몇번씩 걸레를 빨고, 또 걸레질. 쓰레기통들을 비우고. 밀린 설겆이를 하고. 디디와 미미, 루루의 깔짚을 갈아주고. 폴 밥그릇을 새로 다 씻었다. 식탁과 마루의 탁자, 책상의 유리를 몇번이고 닦았다. - 허리가 아프다. 고개를 들었더니 어지럽고. 기분좋은 피로감이 감싼다. ... .., ...., ...., .., .. * 사람이새벽다섯시에일어나밤열시에 : : :.., :.., :. : 잔다면지금내삶은이른열한시십오분쯤 : : : : : : : --- 난저녁때고운노을을만들수있을까 .:. .:..; .:..; .:..; .: :: E-mail_ ileen@chol.dacom.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