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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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rheeyj (TinSoldier()
날 짜 (Date): 1996년04월24일(수) 11시57분03초 KST
제 목(Title): 본능에 대해 생각하다가...


원래는 “성욕에 대해 생각하다가...”란 제목을 붙이려고 했지만, ILEEN님이

또 조회수에 영합(?)하는 제목을 붙였다고 할까봐...

이 글은 논리적이지도, 설득적이지도 않은 그저 한 사람의 꼬리를 무는(?) 

생각을 쓴 것이므로 가볍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한 사건으로 인해 kids 게시판 여러 곳이 시끄러운 것을 보고 

떠오른 생각중의 하나가 바로 이 성욕에 대한 것이었다.

ILEEN님이 글 중에서 잠시 언급하셨다시피, 남녀간의 문제에서 성 내지는 

성욕에 대한 것은 아주 근본적인 것이라서 결코 가볍게 보거나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이성의 지배를 받는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본능으로 지워진 성욕을 

완전히 억누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떨쳐 버릴 수 없는 이 욕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꽤 오래 전에, 나는 고백성사를 하게 되었다. (요즘도 하지만)

그 때 고백성사를 봐 주신 신부님은 젊은 서양 신부님이셨는데, 

억양은 다소 재미있지만 우리말을 잘 하셨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쥬캐사 욜라붕가 함캐...”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는 미사중에 신부님께서
    
    하시는 말씀임).

그런 신부님께 고백을 드리는 것은 사실 즐거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잘못을 빨리 고백하면, 잘 못 알아들으실 것이므로 가벼운 보속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났고 (보속이란 죄를 용서받는 대신에 행해야 하는 일이다.

기도든, 실제적인 선행이든...), 그리고 무엇보다 왠지 우리 나라 신부님들과

사고방식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 번 성욕에 대한 고백을 해 보리라고 마음먹었다.

이야기를 꺼냈다가, 노발대말하시면 뭐 “식욕이라고 했는데 잘 못 

들으셨군요?”하고 시치미 떼면 되니까.  :P  (사실 이런 자세로 고백성사를 

보면 안됨.)

그러나 그 때 나에게 성욕의 문제는 사실 중요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런데 연세 많으신 본당신부님께는 차마 고백하기 여려웠고, 아마 보속도 

‘저녁은 굶고 자기전 까지 기도하기’같은 것을 주실 것만 같았다. 게다가 만약 

고백했다가, 갑자기 신부님께서“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호통이라도 치신다면 

그게 무슨 낭패이겠는가.

그리해서 나는 서양 신부님이 계신 고백소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신부님: 어턴 재르 지셔소우요우? (어떤 죄를 지셨어요? - 동시통역)

작은 악마: 성욕 때문에 괴롭습니다. (여기서 ‘성’자는 거의 안 들리게...)

신부님: ...

작은 악마: ‘(속으로) 음... 불안하군.’

신부님: You mean, sexual desire, my son? 

작은 악마: ‘이런!!! 영어를 쓰실 줄이야!!!  망했다!’

                ... Yeah.  (우리말로 ‘예’라고 대답한 것임.)

신부님: ...

작은 악마: ‘<사탄아, 물러가라>를 영어로 하면 <Get lost, you Satan!> 쯤 

                되려나?’

신부님: 구건 나도우 토카치 누켜요우. (그건 나도 똑같이 느껴요.)

작은 악마: (뒤로 넘어지며) 윽!

    동시통역(?)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그 후에 신부님이 하신 말씀을 그냥 

써보면, 배고픈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은 것과 같이, 건강한 남자가 

젊고 예쁜 여자를 보면 성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이 비유가 

마음에 안 들 여성분들이 많을 것 같군요.)

문제는 그것을 잘 조절할 수 있는가에 있다는 말씀이셨다.

이 날 작은 악마는 들어 갈 때보다 좀 덜 악해져서(?) 고백소를 나섰다.



성욕을 보는 시각은 참 다양하다.

지저분하게 이따위 글을 올렸냐고 생각하신 분도 있었을 것이고, 무슨 흥미있는 

이야기일까 하는 기대로 이 글을 읽는 분도 있었을 것이다.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누구든지 함께“그때그때마다 풀어 줘야 한다 

(무슨 약 광고 같군)”는 free sex 주창자들도 있고,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비정상적인 성욕구를 가진 사람도 

있고, 과거의 좋지 않은 일로 인해 성에 대해 극단적인 두려움을 갖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배고프면 (또 이 비유!) 밥을 먹고 싶듯이, 인간이 사실상 

성욕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지기는 어렵다는 것은 모두 인정할 것이다.



내가 인간에 대해 생각할 때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인간의 바람직스럽지 못해 

보이는 면들을 부정한데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인간을 너무나 이상적인 존재로

보려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인간의 바람직스럽지 못한 면들을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이것도 방법인가?)

인간이 동물적인 욕구에서 벗어날 때만 인간은 자유로와질 수 있고, 그래야 

진정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인간이 자기의 것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도, 남들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것도, 성욕을 느끼는 것도... 모두가 인간의 본질적인 면들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욕구를 조절할 수 있으려면 , 그 욕구의 실체를 파악해야 하고, 그 

욕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실체 파악의 첫 걸음임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물론, 이런 인간의 욕구들을 완전히 조절하고 더 나아가 초월했던 훌륭한 

사람들을 본받아 마땅하다. (간디는 세번의 실패 끝에 비로소 성욕으로 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보통 사람으로서 받아 들여져야한다.

공자는 국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웬 고리타분한 

글들이 이렇게 계속되나?), 그것은 임금에 대한 백성의 믿음, 쌀, 그리고 군대

라고 말했다고 한다. 셋 중에 부득이 하게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군대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다음에 또 버려야 한다면? “그럼, 그때는 쌀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쌀이 있어도 임금에 대한 믿음이 없는 나라는 곧 망할 운명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충 대답했던 것 같다.

이 말은 듣고 나중에 또 한 성현이 (노자인가, 장자인가? 하여간) 같은 질문에

대해 다르게 대답했다. 그는 맨 처음 버릴 것은 군대라는 것에 동의를 했으나

그 다음에 버려야 할 것은 쌀이 아니라 임금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백성은 굶주리면서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군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말대로 모든 백성들이 믿음을 밥(?)보다 중요시 한다면 그것은 참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백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던 사람은 나중 사람이다.

이상적이지 못한 인간의 본질은 무시한다고 사라지진 않는다.

무시했다가 오히려 더 큰 그림자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공자나, 그 뒤의 사람이나 모두 백성을 사랑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 뒤의 사람의 사랑이 더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단점까지도 끌어 안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내 생각)


이상에 집착하다가 자신도 파멸하고 나라도 망하게 한 사람들이 참 많다.


이상이라는 (혹은 이데올로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시대 그 

곳에서의 부당함에 대한 반동일 수는 있지만, 시공을 뛰어넘는 완전한 것일 수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나중에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해 글을 올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좌절한 이상주의자 TinSold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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