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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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pipiband (감성지수99)
날 짜 (Date): 1996년02월29일(목) 08시17분06초 KST
제 목(Title): 나를 만든 사람 - Hermann Hesse




 내 생애 최초이자 유일했던 '질투'의 대상은 전혜린이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그녀에 대해 쓴 평전을 읽고 그녀가 헤르만 헷세의 팬

이었고, 그에게서 답장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 바

로 부러움이 가득한 질투였던 것이다.
 

 내가 헤르만 헷세를 처음 알게 된건 중학교 2학년, '데미안'을 읽었을 때

이다. 교실 뒤 학급문고에 꽂혀 있던 작은 소설책 '데미안'이 내 관심을 끈
 
이유는 단순히 내가 'Demian'이라는 이름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내용은 충분히 나를 만족시켰고, 나는 헤르만 헷세에게 희미한 존경심과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헷세의 다른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샀고, 헷세의 연보가 적힌

마지막 페이지까지 빠짐없이 읽어내려간 후, 난 28년 전 사망한 헷세에게 

매혹당해 있었다. 


 헷세는 1877년 7월 2일에 태어나서 1962년 8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그를 알게 되고 흠모하게 되었을 때 이미 이 세상에 그가 없었던 것은 나에

게 1977년에 태어난 것을 통탄할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난 헷세가 태

어나고 자랐던 독일 남부의 칼브를 언젠가 꼭 가보려고 결심했고, 헷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었다. 헷세의 작품들은 읽을수록 그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게 했다. 더구나 놀라웠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들 속에는

공허하게 그러나 나름대로 힘들여서 끄집어낸 나의 악필 노트들과 일치하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감추어온 나의 내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주인공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난 헷세를 숭배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헷세의 영향으로 나는 다른 독일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독일
 
과 독일어에도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중 3때는 독일 소녀와 펜팔을
 
하기까지 했다. 그 친구와는 꽤 오랫동안 우정을 지속했다. 그리고 진학을

결정하는 시기에 난 당연히 외국어 고등학교의 독일어과를 선택했다. 평범

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외국어 수업은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어는 발음이 딱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독일어
 
를 직접 대하기 전까지는 그런 편견에 빠져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

등학교에 입학해서 회화시간에 독일인의 말을 들었을 때, 난 Hesse의 작품

에 매혹당하듯이 독일어의 매력에 끌려들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없는

독일어에 대한 사랑은 말로 꺼내기 싫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간직하는 소중

한 감정이다. 꿈같은 고등학교 생활을 끝내고 난 역시 독문과를 선택했다.

독일어와 독일문학을 배운다는 이 과에 왔을 때 처음엔 고등학교 수업보다

체계가 비합리적인 듯하여 실망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대학 1학년 생활을 정리하며 돌아보니 난 그동안 Hermann Hesse를 
  
잊은채 살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결코 멈출수 없던 방황의 시간들과 모범생

들에게 거부당하고 낯설게 여겨지는 'X'(차마 밝힐 수 없음)로 일관한 나의 

학점들은 모두 내가 Hesse 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생긴 것들이다.  

Hesse 를 잊어버림과 동시에 내 삶을 끌어주는 열정까지 잃어버렸던 것이다.



겨울방학이 끝나가는 지금, 첫만남처럼 우연히 기억해낸 헷세에 대한 사랑

이 나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줄지 알 수 없지만 다시 가슴에 뜨거움을 안고 

살 수 있을거라고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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