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YonSei ] in KIDS 글 쓴 이(By): Music (니꼴리오?~翕) 날 짜 (Date): 1994년11월09일(수) 12시15분09초 KST 제 목(Title): [니꼴라오의 향수] 쓴 추억의 문화센터... npark님, 제 글을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글 칭찬을 들으니 글짓기에 관련된 가슴 아픈 추억이 하나 생각나네요.. 부끄럽기도 한 기억이지만 지금은 그때의 일을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국민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도 매년 개최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김천시내 모든 국민학교를 대상으로한 '매개백일장'이 매년 열었다. 김천서는 가장 권위있는 대회로 각 국민학교는 글재주가 있어보이는 얘들을 대표로 5,6명을 내보냈다. 우리반에서는 내가 뽑혔다. 그러나, 사실 주위의 선생님들은 나보고 글재주가 있다고 그러셨지만 나는 글짓기가 싫었다. 운동을 좋아해 그때도 학교 배구부에 막 들어 연습을 하고 있었던 터인데 백일장에 나가면 당장 그만두어야 되었기 때문에 제발 안 나갔으면 했는데 어쩔수 있나 시키는대로 해야지... 지금 생각이지만 그때 나를 추천한 선생님은 6학년 담임선생님이 아니라 5학년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오신 여자선생님이었는데... 우리가 그 선생님의 첫제자였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의 특활활동에 남다른 관심이 있으셨다. 방과후면 항상 반전체 아이이들에게 크로키와 하모니카를 가르치셨다. 크로키의 모델은 주로 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했고 아이들은 5분만에 그 아이의 얼굴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잘된 작품은 다음날 뒷벽에 전시를 했다. 하모니카도 매일 한두곡씩 배워나가서 학년말에는 우리반 아이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한두곡 정도는 불 수 있게 되었다. 이것 외에 반아이들 중에서 무슨 자질이 보이면 그것을 키워주려고 하셨다. 그때 그 선생님은 나에게 글짓기 재주가 있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때아닌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다. 방과후 매일 글짓기 한편씩 짓고 집에 가라는 것이다. '왜 나만 가지고 그러지?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그때 들었던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맨날 땡땡이를 쳤다.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고 요리조리 빠져서 거의 선생으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드는... 어쨌든, 나는 백일장에 참가 했고 그 일이 있은 후 한참 뒤에 백일장 입상자를 교내 방송으로 발표하고 김천 문화센터에서 시상식이 있으니 참가하라고 했다. 문제는 여기다. 내이름 같기도 하고 안같기도 한 이름이 방송에서 불렸다. 나는 긴가 민가 해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아이들도 긴가 민가다. 애라모르겠다. 따라 나섰지 뭐.. 우연하게도 그때 인솔 선생님이 5학년때 담임 선생님이었다. 문화센터에서의 시상식이 한참이나 진행되고서도 내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서서히 불안했다. '이러다가 안불리면 어떻하지?' 조마조마해서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도 수상자 호명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아까 학교방송에서 들었던 긴가 민가한 이름이 불리지 않겠는가? 아뿔싸.. 이게 왠일 단상으로는 벌써 다른애가 조르르 달려나가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 그때의 그 당혹감이란..... 시상식을 마친후.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옆의 아이들은 다 상장이다 트로피다 가지고 가는데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빨리 오늘이 갔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5학년때 조금만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서도.... 철지난 후회가 머리속을 뱅뱅 돌고 있었다. ~~~~~~~~~~~~~~~~~~~~~~~~~~~~~~~~~~~~~~~~~~~~~~~~~~~~~~~~~~~~~~~~~~~~~~~~~~ 세월은 나를 꿈꾸게 한다..고 한 사람은 누구인가? 니꼴라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