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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vel ] in KIDS
글 쓴 이(By): Param (Param)
날 짜 (Date): 2007년 3월  9일 금요일 오전 11시 48분 35초
제 목(Title): 펌/ 바르셀로나와 모더니즘 


* 바르셀로나 한도시로 결정했습니다. 
저번에 런던 2박3일로 버스타고 스쳐지나가는 여행이 상기되어서..*

가우디, 구엘 공원, 라 페드레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바르셀로나의 모더니즘에 대해 약간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근대 사조로 프랑스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유입된 사상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당시 경제의 번영과 함께 새로 형성되기 시작한 중상층 
(부르주아)에 의해 오늘날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화려한 그라시아 거리를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된다.

바르셀로나 건축에 사용된 모더니즘의 기본 골격은 최대한 자연을 닮아가려는 
노력이다. 자연 그 자체야 말로 완벽함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연에 가까운 
건축물을 만들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모더니즘 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물에는 꽃이나 나뭇잎 등이 외벽을 장식하는 오브제로 많이 사용되었고 
직선 보다는 자연스런 곡선을 이용하는 예가 많다. 또한 경제 성장과 함께 특히 
많이 생산되던 벽돌과 철강, 그리고 까딸루냐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되던 타일이 모더니즘의 주재료로 건축 자재의 변화도 가져 왔다.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타일이 모더니즘에 의해 외벽 자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신흥 중상층들의 까딸루냐 지방에 대한 강력한 애정이 뒷받침된 것으로 
오늘날 스페인으로의 독립을 원하는 움직임과 같은 맥락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모더니즘을 감상할 수 있는 건물들을 따라가 보자. 바르셀로나 
관광 안내소에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약 2시간에 걸쳐 그라시아 
거리를 중심으로 하는 유료 워킹 투어 (약 13000원, 10.50 유로)를 운영하고 
있다. 그 첫번째 건물은 피카소에 의해 유명해진 <4마리의 고양이들이>란 
까페가 자리하고 있는 까사 마르띠 (마르띠의 집)이다. 외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꽃과 나뭇잎 문양이며 벽돌, 철강, 타일을 사용한 외벽 마감은 
전형적인 모더니즘 스타일의 건축물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신흥 중상층들은 
경제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돈으로 자신들의 집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들이 왕인 듯 성을 짓고 싶은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한 집안이 한 건물을 지으면 대개는 2층으로 보이는 프리메로 
피소에 거주하면서 3층 이상의 집들에 대해선 다른 사람들에게 세를 주는 
식이었다. 아무리 돈을 벌여 들여도 건물 한 채를 짓는 데는 상당한 자본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런 소비를 충당해 줄 다른 지원이 필요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따라서 프리메로 피소의 외관 및 실내홀은 어떤 층보다도 화려하고 
돋보이게 장식되어 있다. 

두번째로 감상할 수 있는 건물은 까딸루냐 음악당 건물이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건물로 가우디와 함께 모더니즘 건축가로 까딸루냐 
지방에서 유명한 몬따네르의 작품이다. 타일 모자이크로 장식된 외벽은 벽돌의 
적갈색과 어울려 화려함 그 자체를 보여 준다. 음악당은 원래 합창단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경제 번영과 함께 유입된 수많은 노동 계급에게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주기 위한 자본 계급의 노력이었다고 한다. 외벽에는 
또한 바그너, 베토벤 등 독일 작곡가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그 당시 
스페인은 쿠바, 코스타리카, 필리핀 등 마지막 식민지의 독립을 바라 보며 
패배감을 느꼈는데 이런 스페인 상황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근대 국가가 
성립되면서 민족주의가 꽃피우는 것을 보며 독일을 배우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독일 민족주의의 음악가로 알려진 바그너를 
비롯한 베토벤, 바흐 등의 얼굴상을 외벽 장식에 만들어 넣어 본보기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음악당 내부는 가이드 투어를 하거나 음악당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가하면 볼 수 있는데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는다. 외벽보다 더 화려하게 
장식된 타일이며 문양들로 웬만큼 좋은 콘서트가 아니고서는 음악당 자체를 
감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알차게 생각된다.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에 있는 두 건물을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그라시아 
거리로 나가 보자. 구 시가지의 좁은 거리와 달리 빠리의 샹젤리제를 닮은 넓고 
웅장한 거리를 따라 가며 감상하는 건물들과 화려한 명품 매장들은 걷는 걸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유혹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그 유혹의 
한가운데에 가우디가 있다. 그라시아 거리에서 제일 눈에 띄는 두 건물이 바로 
까사 바뜨요와 까사 밀라 (일명 라 페드레라)다. 바르셀로나 여행시 가장 많이 
자주 접하게 되는 이름이 아마 가우디가 아닐까 한다. 가우디를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렇게 가우디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전적으로 일본인들의 공이라 한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작품을 보고 
열광적으로 플래쉬를 터뜨리는 일본인 관광객들 덕에 가우디가 유명해졌다고 
말하는 가이드의 경우 일본인들이 왜 그렇게 가우디에게 열광하는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힐끔 나를 바라 봤다.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유럽의 
성이라고 상상하는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인들이 유독 프라하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거라 혼자 생각해 본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자신의 건축물에 기독교 사상을 구현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다가 성 가족 성당을 건축하는 중에 교통 사고로 외롭게 숨져간 천재 건축가. 
살아 있다면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바르셀로나의 모더니즘을 그 누구보다 
다양하게 펼쳐 보이며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까딸루냐, 더 나아가 스페인 
전역에 독특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바르셀로나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는 않은 것 같다. 라 페드레라가 건축되었을 당시 바르셀로나 시 
의원회는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아 파괴될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다른 
건축물들에 비해 어마한 규모가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건물 소유자였던 밀라씨의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 그 다음날로 까사 밀라를 
나와 다른 건물에 세를 들어 살았다고 한다. 라 페드레라의 특이하고 독창적인 
구조 때문에 가구며 생활 소품들을 전부다 모더니즘 스타일에 맞춰야 했기에 
그만큼 싫증도 많이 났기 때문이라. 잠깐 감상하는 것과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을 법도 하다. 현재는 까딸루냐 은행이 소유하여 
일부는 박물관으로, 일부는 사무실로 임대를 하고 있고 상층은 대중에게 
공개하여 20세기 초 중상층의 생활상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옥상에 위치한 
다양한 모양의 굴뚝과 옥탑방의 존재는 라 페드레라의 인상적인 감상 
포인트이다.

경제 성장과 함께 형성된 신층 중상층과 스페인 지배 하에 있던 식민지들의 
독립으로 식민 자본을 가지고 돌아온 인디오 (스페인 사람으로 스페인 
식민지에서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부르던 말이라고 한다)의 왕성한 후원 
아래 한 시대를 풍미한 모더니즘이 적극적으로 구현된 그라시아 거리의 많은 
건물들을 감상하는 건 바르셀로나에서 즐길 수 있는 여행 방법 중 최상의 것이 
아닐까 한다.



That old law about "an eye for an eye" leaves everybody blind. The time is 
always right to do the righ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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