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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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vel ] in KIDS
글 쓴 이(By): Param (GoSeahawks)
날 짜 (Date): 2006년 6월  4일 일요일 오후 05시 14분 28초
제 목(Title): 펌/ 난 아름다운 축구를 상상하러 떠난다 


출처: 오마이뉴스..
스포츠보드에 퍼오려고 했었는데, 여행에 관한 (유명한 분들) 코멘트가 
인상깊어서 여기로 퍼옵니다. 
폼페이,소렌토,아말피 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가이드 해주신 분이 생각이 
나는군요.
그분도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에서 가이드일 하시다가 
월드컵 기간에는 독일여행겸 토고전에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응원하신다고 
했었는데,,
좋아하는 것 찾아다니며 여행하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저도 미술사수업시간에 슬라이드를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납니다. 
컴컴한 교실이 복숭아빛 핑크색으로 환하게 비출정도로 채색이 인상적이었는데, 
비단에다 그린 조선시대 최고의 걸작품이죠. 
몽유도원도.. 꿈을 꾸었는데, 도가적 이상형인 도원, 복숭아 정원을 
돌아다니며 유유히 노닐었다는 뜻이죠. 
그림안에 안평대군의 서체도 볼수있구요.(그림을 평한)..

이런 작품이 해외에 있습니다. 그것도 일본에.. 쩝. 

 
난 아름다운 축구를 상상하러 떠난다 
[정윤수의 월드컵 기행 1] 인천공항 12시 40분 
    정윤수(jys2003) 기자     
 
 
  
 
▲ 인천국제공항에서  
 
ⓒ 오마이뉴스 이종호 
6월 2일 낮 12시 40분, 나는 지금 인천공항에 있다. 잠시 후 1시 25분이면 런던 
히드로공항을 향하여 출발할 터인데, 겨우 50여 분이 남아 있다. 장거리 
유럽여행의 경험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 주어진 50분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른다. 그래서 공항 구석의 인터넷 카페에서 취재기의 첫 원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건 연습이다. 아마도 에든버러와 생 테티엔에서의 며칠은 한가롭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6월 9일 밤 이후의 독일은 가히 미증유의 에너지로 차고 넘칠 
터인데 그동안 익숙했던 바와 같은 글쓰기는 허락되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지금 
출국신고서도 쓰지 않은 채 촉박한 시간을 빌려 취재기를 쓰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어쨌거나 여행이다. <오마이뉴스>의 많은 독자들 그리고 몇 달 동안 
스포츠면을 함께 만들었던 기자들로서는 매우 섭섭한 표현이겠지만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시베리아 유형지로 추방당하면서도 기록을 남긴 19세기의 작가에 
비한다면 그래도 축구고 월드컵 아닌가. 이 드라마틱한 장관에 대하여 
<오마이뉴스> 월드컵 취재단 1진으로 먼저 떠나는 것이지만 이를 여행이라고 
부른다 해서 타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행이란 과연 무엇인가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렇게 말한다. 

"여행이 의식을 깨우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보고 있지 
않는 사물들 때문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사물들을 보지 않는다.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이용할 따름이다. 사물들은 도구성, 쓰임새에 국한되어, 그 
쓰임새 밖의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행은 때로 그 쓰임새를 지운다. 그래서 
새롭게 보인다. 일 때문에 떠나는 여행은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여행이 아니다.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만이 여행이다."

그의 말처럼 이번의 여정에서 축구와 월드컵이 내 눈의 새로운 물질로 다가오길 
기대한다. 

불문학자 김화영은 말한다. 

"우리들이 참으로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떠나는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다. 수없이 떠나 본 사람에게도 모든 '떠남'은 항상 최초의 
경험이다. 떠나는 방법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교육할 수 없는 것이다. '미지의 
것', '다른 것, '다른 곳'이 감추고 있는 '새로움'은 참으로 우리들의 모든 
유익하였던 경험들을 무용하게 하는 데 그것의 힘이 있다."

어쩌면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축구와 월드컵에 대해 믿었던 신뢰를 악착같이 
견지해야 할지 모른다. 견고한 시스템으로 정교하게 움직이는 이 거대한 이벤트 
속에서 축구의 원시성, 그 경이로움,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마자 살아 있는 
유기체로 펄펄 뛰어다니는 선수들의 상상력에 대하여 믿고 또 믿어야 한다. 

오늘의 축구를 막강한 파워집단과 거대 기업과 미디어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이 그라운드에 들어오는 순간은 오로지 경기 직전에 사진을 찍을 
때뿐이다. 그 다음은 오로지 선수들의 영토다. 

그리고 김윤식의 언급이 있다. 

"한파가 몰아닥친 1979년 한겨울, 푸생과 로랭의 그림 앞에 섰을 때의 그 가슴 
설레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82년 한여름 아프리카 사막을 
헤매고 쪽빛 지중해를 넘어 마침내 다시 푸생과 로댕의 그 그림 앞에 섰을 때의 
가슴 설레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러한 황홀경의 환각이 어찌 
드레스덴이나 루브르에만 있겠는가. 일본의 천리대학 중앙도서관에서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며 가슴 설레던 1980년 초가을의 어느 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바로 그러한 환각을 위하여 나는 떠난다. 

이를테면 지난 2002년의 기억이 그렇다. 광장? 거리? 그것이야말로 좀처럼 잊을 
수 없는 기억이겠으나 '애국심' 타령에 따라 온갖 미디어에서 차고 넘치는 
바이니 지금 이 순간에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4년 전의 결승을 기억하고 
싶다. 

축구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결정적인 것은 역시 개인기. 체력과 조직력은 
월드컵 본선 무대의 팀에는 기본적인 조건일 뿐, 결국 황금사과를 따먹는 
최고의 사나이들은 통달의 경지에 이른 개인기로 판가름난다. 

그 점에서 4년 전의 독일은 브라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독일이 결승전 
전까지 여섯 경기 동안 보여준 그들만의 '독창적'인 전술은 일단 수비에 
치중하면서 좌우 센터링을 날리는 '독보적이지만 단조로운'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것뿐이었다. 독일의 리얼리즘은 브라질의 쉬르-리얼리즘을 넘어설 수 없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공이 자기 발에 올 때마다 단 한 번도 똑같은 방식으로 취급한 
일이 없었다. 그들은 볼 보이가 공을 던져줄 때도 마치 수십 년 동안 그래야만 
하는 전통을 이어가듯 가슴으로 받았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 전반 13분경. 코너킥을 차기 위해 호나우지뉴는 자기에게 
굴러오는 공을 두 발의 신묘한 기술로 단번에 손으로 잡았다. 그러니 굳은 
표정으로 돌진해 오는 독일 선수들을 피해 동료에게 패스할 때는 어떠했겠는가. 
더욱이 브라질 선수들은 상대 선수를 향해 욕설을 퍼붓거나 심판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겨우 두 팔을 벌리며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전부였다. 

  
 
▲ 박주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그러한 팀이 우승을 해야 한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나만의 의견이 
아니다. 패배했던 독일의 감독 푀일러도 "브라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개인기를 선보였다. 그들은 빠르고 강했으며 놀라운 볼 컨트롤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뛰어난 선수들의 재치 있는 플레이에 대해서는 정말 칭찬을 아낄 
수 없다. 브라질은 멋진 팀이다"고 극찬했다. 

나는 그러한 환상을 보러 나간다. 일컬어 아름다운 축구! 뭐라고? 축구가 
아름답다고? 그라운드의 함성이 욕설로 바뀌고 태클이 끔찍한 부상으로 
이어지는 축구가 아름답다고? 

그렇다면 박주영을 상상하자. 호나우지뉴를 상상하자. 지네딘 지단을 상상하자. 
그들은 골키퍼가 막기 어렵다는 각도, 골포스트와 크로스바가 만나는 골문의 
가장 높은 구석자리, 이른바 '탑 코너'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공을 빚어내는 선수들이다. 그들의 그라운드는 휘슬을 든 사나이 말고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 

갑자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꽤 
늦었다. 연습치고는 적절히 타이밍을 맞춘 듯싶은데, 독자들이여, 기필코 
날마다 유럽의 공기를 전하도록 하겠으니 우리 새로운 축구를 상상해 보자. '더 
많은' 월드컵을 상상해 보자.  







That old law about "an eye for an eye" leaves everybody blind. The time is 
always right to do the righ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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