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vel ] in KIDS 글 쓴 이(By): charina (보잉~) 날 짜 (Date): 2001년 9월 25일 화요일 오전 11시 01분 45초 제 목(Title): [보잉~]러시아에서 보내는 편지-10 2001년 5월 4일(금) 하바롭스끄에서 한 7~80Km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나나이족은 정말이지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었어. 그래서인지 "드라스 찌쩨"가 아닌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먼저 나오게 되더라구. 작은 키에 검은 머리, 둥글 넙적한 얼굴형에 몽골의 눈매..이런 사람들이 러시아 말을 유창하게 하고 있으니 좀 이상하더라구..흐흐. 몽고 반점도 있다고 하는 거 보니, 우리와는 선조를 공유하는 사이임이 분명한 것 같아. 정말 특이한 것은 이 사람들은 어피를 옷감처럼 사용한다는 거야. 물고기 가죽 말야. 물론 지금 나나이 사람들은 운동화와 기성복을 입고 다니지만 이들이 소장하고 있는 전통 옷이나 신발 같은 것들은 분명 어피로 만들어져 있어. 이것이 과연 물고기 가죽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재질이 단단하더라구. 무슨 양가죽이나 소가죽처럼 말야. 그래서 이 어피로 만든 옷의 제작 과정을 알아 보고 싶었지. 그래서 백방으로 물어 봤지만 우리가 갔던 마을에는 어피 만드는 사람이 없었어. 이 곳에는 여러 지역에 나나이 마을이 분포 되어 있는데 다른 마을에 가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얘길 들었지. 우리 코디네이터인 이 선생님이 한 5년 전에 일본의 NHK방송 팀이 왔을 때, 그 어피 만드는 할머니를 촬영 했던 적이 있데. 그런데 그 마을은 이곳에서 4시간이나 떨어져 있다고 했어. '아, 오늘도 헛탕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완전히 헛탕 친 것만은 아니었어. 다행히 아무르 강에 고기 잡이를 나가는 나나이 아저씨들을 만났거든. 고기를 잡는 것이 어피를 만드는 제일 처음 과정이자나. 이곳에서 고기 잡는 것을 촬영 하고, 다른 마을에 가서 물고기 껍질을 벗기고, 가공을 하고, 완제품을 만드는 촬영을 하면 일단 방송할 수 있는 한 꼭지는 완성이 된다는 계산이 섰지. 아흐..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니 강바람이 너무나 차갑게 몰아쳤어. 꼭 한 겨울처럼 온몸이 덜덜 떨려왔어. 그렇게 추울 줄 알았으면 옷을 좀 더 두껍게 입고 갈 껄 그랬어. 여기는 도시와 시골의 기온 차가 많이 나는 것 같아. 물론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여기는 정말이니 차이가 너무 심해. 그리고 이곳은 봄, 가을이 없데. 여름과 겨울 뿐이라는 거야. 갑자기 추워졌다, 갑자기 더워졌다 한다는 군. 그래서 사람들은 계절이 바뀔 때쯤 되면 여벌의 옷을 꼭 가지고 다닌대. 나도 그랬어야 했는데…끙. 하여튼 우리는 허술하기 그지 없는 작은 보트에다가 모터를 달고 쌩하니 출발했지. 보트가 작아서 어부 두 명과 나, 카메라감독. 이렇게 네 사람만 타고 갔어. 신피디와 이선생님은 그냥 남고 말야. 통역을 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땠겠니? 어부들이랑 인터뷰는 해야겠고 해서 내가 알고 있는 러시아 말을 총동원해서 대충 물었지? "얼마나 갑니까?" "고기는 많습니까?" "고기들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뭐 등등.. 아웅.. 나중에 편집할 때 이 화면을 보면 이 상황을 모르는 작가 언니는 무진장 웃을 거야..끙. "노래 해 주세요." 라고 청을 했지. 러시아 어부들은 어떤 노동요를 부르는지 궁금했어. 우리나라엔 사공의 노래가 있잖아. 이곳에도 그같은 노래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청했던 거야. 그러자 아저씨가 드디어 웃었어! 도무지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인가 보다 싶은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번지더니 노래를 잘 못한다며 고개를 저으셨지. 결국은 노래는 하지 않으셨지만, 아저씨랑 나랑 조금 친해 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 한 10분쯤 달렸을까. 출발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아저씨가 배를 멈췄어. 어제 이곳에 그물을 드리워 놓으셨다는 거야. 부표로 사용한 패트 병을 갈고리 막대로 잡으시고는 그물을 올리기 시작했지. 솔직히 난 이 흙탕물에 고기가 살면 얼마나 살까 의심스러웠어. 아무르 강이 풍요롭다는 얘기는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닐까 하고 말야. 그런데 웬걸. 그물을 걷기 시작하자 마자 큰 물고기 들이 따라 올라오는데.. '이거 내가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온 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물고기 들이 크기가 장난이 아니더라구. 민물고기라고는 상상이 안 갈 정도의 크기들 말야. 어떤 것들은 길이가 내 어깨까지 오는 데다 이빨도 날카롭고 외모가 꼭 철갑상어처럼 생긴 물고기도 있더라니까. 만약에 서울 한강에서 이만한 고기가 잡혔으면 아마 9시 뉴스에 났을 거야. 하하.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런데 아저씨들은 고기를 큰 놈으로 여덟 마리만 배에 올려 놓고 나머지를 그냥 놓아 주셨어. 그리고는 그물을 다 올리지도 않고 다니 내려 놓으셨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한 어부가 하루에 네 마리만 잡을 수 있도록 시에서 정해 놓았다는 거야. 오라.. 아무르 강에 고기가 많이 사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지. 뭐든 거져 얻어지는 건 없는 것 같아. 아무리 시에서 그러한 규정을 정해 놓았다 해도 어부들이 몰래 몰래 고기를 잡아 버리면 그만이었을 텐데 이들은 별로 그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아둥 바둥 욕심 부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과연 그들을 '못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어. 애니 웨이. 우리는 오늘 그리 많은 촬영을 하진 못했어. 여기 저기 좀 더 알아 보고 어피를 만드는 나나이 마을을 찾아서 나중에 다시 떠나야 할거야. 일단은 오늘은 좀 자야겠어. 고기잡이 가서 추위에 좀 떨어서 그런지 잠이 솔솔 쏟아 지네. 러시아 속담에 이런 게 있대. '자고 일어나면 뾰죽한 수가 생긴다'고. 내일은 하바롭스끄에서 네시간 떨어진 유태인 자치구로 촬영을 갈 거야. 내일은 오늘보다 뾰죽한 수가 있길 바라면서 잠이 들련다. 오늘은 이만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