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vel ] in KIDS 글 쓴 이(By): charina (보잉~) 날 짜 (Date):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오전 11시 54분 36초 제 목(Title): [보잉~]러시아에서 보내는 편지-09 2001년 5월 3일(목) 나는 하바롭스크가 좋다. 블라디와는 다른 밝은 기운이 흐르고 있는 이 도시가 좋다. 반듯하고 깨끗한 거리와 고풍스런 건물들. 스퀘어에 있는 분수와 그곳에 모여든 형형색색의 젊은이들. 재즈 선율이 흐르는 노천 까페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어린이들. 눈이 마추치면 슬며시 눈웃음을 짓는 어린 처녀들. 나는 조금씩 유럽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보다. 원래는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하바의 시내 촬영을 할 계획이었는데 우리는 일단 숙소에 먼저 와서 한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 오후부터 시내를 좀 돌아 다녔지. 어제 밤에 기차에서 마신 보드카 때문에 신피디가 술병이 났지 뭐야.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약국에 들러서 술 깨는 약을 샀지. 이곳 코디네이터인 이선생님의 말로는 가짜 보드카들이 많데. 메틸 알코올을 물에 타서 술병에 담아 판다는 구나. 그 술을 마시면 바로 신피디처럼 된다는데.. 증상이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눈이 쑥 빠져버릴 것 같이 고통스럽단다. 약을 먹고 낮잠을 자고 나니 좀 괜찮아 진 듯 보이긴 했는데.. 글쎄,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구. 아침에 기차에서 내려 이곳 코디네이터인 이선생님을 만나 아무르 호텔에 도착해서 여권과 거주허가서-러시아에서는 이 허가서가 없으면 아무데서도 숙박을 할 수가 없단다. 외국인들에겐 꼭 지니고 다녀야 하는.. 일종의 여권 같은 거야-를 내고 숙박계를 쓰고 이선생님께 진행비로 일단 미화400불을 맡겼던 것.. 그 와중에서도 신피디가 중간중간 아무데서나 누워 잤다는 것.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구. 하여간 이 곳에선 술도 맘대로 먹으면 안 되는가 보다. 나는 어젯밤에 보드카냄새가 좀 역겨워서 그냥 맥주만 나셨거든. 카메라맨 용택오빠도 그리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신피디 혼자서 보드카 한 병을 다 마신 셈이지. 아니.. 메틸 알콜 한 병을 혼자 다 마신 셈이지. 쩝. 얼마나 속이 아팠을까 생각하니.. 좀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안하지만 좀 고소하기도 하네.. 힛. 하지만 나도 어제 밤은 정말 힘들었어.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있지? 언제 부딪혔는지 옆구리 갈비뼈가 심하게 아팠어. 지난 번 제주도에서 전복 진주 촬영 하려고 스쿠브 다이빙했었을 때 허리에 찬 웨이트에 눌려 갈비뼈 연골이 휘었던 적 있었잖아. 바로 그 자리야. 한 달 동안 물리치료 받고 겨우 괜찮아 졌었는데, 같은 곳을 다쳤는지 너무나 아프다. 기침을 할 때마다 찌르는 듯한 고통이 날 잠들지 못하게 했단다. 흔들리는 열차에, 좁은 침대 칸, 메케한 냄새, 곳곳에 숨은 먼지가 많았던지 더욱 심해진 기침은 계속해서 옆구리에 악마를 찔러 넣고 있었지. 오전에 호텔에 도착해서 한 두어 시간 정도 낮잠을 자두지 않았더라면 난 이렇게 글씨를 쓸 수도 없었을 거야. 그리고 여유로운 오후의 시내 촬영을 했던 거지. 하바롭스크는 참 밝은 도시야. 시 전체가 평지 위에 지어져 있어 분위기가 블라디보다 한 결 밝아. 반듯반듯한 도로변에는 풍성한 가로수들이 줄 지어 있고, 블라디에서는 한명도 볼 수 없었던 조깅족들을 간혹 만났단다. 서울에 한강 같은 아무르강이-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불러. 왜냐면 강이 점토질이 많아서 맑지가 않고 좀 검붉거든. 중국과는 이 아무르강을 둘러싸고 아직도 영토 갈등이 계속되고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이 강은 아주 비옥한 강이거든.-흐르면서 사람들에게 물고기도 나누어 주고, 가뭄에 단물을 주고, 여유로운 휴식공간도 제공해 주고 있지. 어딘가에선 재즈 선율이 간간히 들려오고. 사람들은 활기차 보여. 블라디에서도 그렇고 하바롭스끄도 그렇고 이곳은 큰 도시마다 한국 식당이 있단다. 한국 사람보다 러시아 사람이 더 많아. 그리고 이곳 인투어리스트 호텔 (외국인 관광호텔)에 있는 한국식당은 참 고급스럽단다. 보기만 해도 부잣집 아들, 딸들인 것처럼 보이는 한 떼의 무리들이 누군가의 생일 파티를 하러 한국식당에 모일 정도지. 덕분에 우리 고려인들의 생계수단이 확고해진 셈이야. 중국 사람들은 세계 어디엘 가도 중국식당만 하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런 날이 올 거야. 나 러시아에 오기 전에 동경에 촬영 갔었잖아. '일본 속의 한국 음식' 취재하러 말야. 난 그때 깜짝 놀랐었어. 우리 음식을 일본 사람들이 그 정도로 좋아 하는지 미처 몰랐었지. 한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한국인의 위상으로 마음이 참 든든해 지는 촬영이었단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진 것 같아. 하나 둘 씩 한국음식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 그들은 중국이나, 일본음식점처럼 자리를 굳히게 될 거야. 그럼 우리는 세계 어딜 가나 구수한 된장찌개와 얼큰한 김치찌개로 아침 공복을 달랠 수 있겠지..하하.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 오는데 어디선가 섹소폰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귀를 쫑끗하고 들어 보니 베이트기타, 피아노, 드럼과 함께 하는 쿼텟밴드더라구. 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갔어. 우리가 묵는 호텔 1층 레스토랑 겸 바에서 공연하는 재즈밴드였어. 난 들어가지는 않고 문 앞에 한참이나 서서 섹소폰 연주를 들었어. 악기도 내 것과 같은 소프라노 섹소폰이었지. 그는 Kenny G 의 'Going Home'을 연주했어.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얼른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고 객실로 올라 왔지. 그리고 네가 사준 미니 스피커에 엠디를 연결해서 Sonny Rollins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를 들으며 네게 편지를 쓰고 있어. ..또 다시 '돌아 가고 싶다'고 쓸 것만 같아서 여기까지 쓸래. 내일은 나나이족 소수민족 촬영을 갈거래. 과연 촬영이 허가가 될 지 모르겠지만 말야. 내일 보자꾸나. 잘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