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ravel ] in KIDS 글 쓴 이(By): charina (보잉~) 날 짜 (Date): 2001년 8월 11일 토요일 오전 01시 57분 31초 제 목(Title): [보잉~]러시아에서 보내는 편지-03 2001년 4월 27일(금) 광야. 평원.. 시베리아 대 평원. 내가 가 본 여러 나라의 평원들 중에 이곳 시베리아의 평원이 가장 황량하다. 산 여기저기에 나는 산불은 진화되지 않는 상태로 경작지와 삼림을 초토화 시키고 있었고 푸른 색이라고는 자작나무 가지 끝에 달린 겨울나기 뿐이었다. 왜 산불을 진화하지 않느냐구? 불로 인해 나는 재산피해보다 진화하는데 드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래. 좀 궁색맞지?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서커스 학교에서도 내가 개입될 일은 전혀 없었다. 서커스 학교로 들어 가는 문 앞에서 인트로 맨트를 한 것 빼고는 거의 촬영하는 거 구경만 한 셈이지. 다른 사람이 봤으면 날 촬영지에 따라 온 작가라고 생각했을 거다 아마. 카메라 감독과 피디는 연습에 열중하는 학생들만 줄기차게 찍어대고 있었지. 신피디에게 나도 학생들과 함께 서커스 묘기들을 한 번 배워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그는 내게 그냥 있으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다. 난 어딜 가나 주인공이었고, 모든 것은 내가 체험해보며 시청자들에게 느낌을 전달해주었는데 신피디는 그저 줄기차게 스케치만 해 대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날 왜 데리고 온 걸까. 리포터를 어디에 쓰려고 데리고 온 거냐구. 왜 날 써먹지 못하는 거냐구. 내가 개입하면 훨씬 더 재밌어 질 것이 뻔한 일인데 말야. 우리나라 리포터에게 서커스를 가르쳐주는 러시아 선생님. 버벅대는 리포터. 그 광경을 보며 웃음짓는 어린 학생들.. 바로 이런 것들이 살아있는 그림인데 말야. 그리고 나는 SBS[출발!모닝 와이드]일요특집 사상 최고의 시청률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리포터라구. 왜 나를 써먹지 못하는 거지? 정말 알 수가 없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내게 일을 시키지 않는 걸. 인트로 맨트나 하는 게 리포터의 할 일은 아니라구. 중요한 건 현장성이야. 그 현장에 얼마나 많이 녹아 드느냐 하는 것이지. 나는 그런 점에선 최고라구. 도대체 신피디는 나의 어떤 점을 보고 내게 이번 촬영을 의뢰했던 거지? 이렇게 써먹지도 못할 거면서 말야. 정말 무기력한 날들이야. 답답해. 매일매일의 나의 힘겨운 몸짓들. 그것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는데.. 난 지금 이곳에서 몸도 마음도 자유롭지 못해. 아.. 한 달이나 남을 촬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걱정이다. 한글로 된 노선 안내를 그대로 달고 있는 블라디 보스톡의 시내 버스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된 버스들인데 배를 타고 이곳으로 건너와 다시 힘차게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지. 블라디 보스톡 역 앞에서 버스를 타면 시청도 가고, 안양도 가고.. 부산도 갈 수 있는 걸. 아..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벌써부터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젖으면 안되는데.. 지금은, 아직은,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득 하여야 할 때자나. 어제도 밤새도록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쳤어. 오늘은 제발 푹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날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겠니? 꿋꿋하게 일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것으로 견뎌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2001년 4월 28일(토) 토요일 오후 9시. 지금 서울은 Burning Saturday night!이겠구나. 툐요일 오후 11시. 나는 블라디 보스톡 호텔방에서 KBS9시 뉴스를 보며 그나마 고향 소식을 전한다. 한국과 가까워서 위성이 잘 잡히네. 내일 서울엔 비가 온단다. 일요일에 내리는 비라. 난 아마도 성당 4층 연습실 창가에서 비소리를 들으며 섹소폰을 연습했겠지. 시베리아 호랑이 촬영을 위해 4시간 30분 차를 달려 도착한 곳에는 잘생긴 호랑이 다섯 마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생 호랑인데 사람들에게 잡혀서 이곳 연구소로 오게 되었다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일이 전혀 없지만 이 곳에서는 한적한 산길에서 가끔씩 호랑이를 만나고는 한다는 군.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달라 들어 해치거나 하지는 않는데. 배가 고파 탈진 상태가 되었거나 치명적인 상처가 생겼을 때 사람들이 이 호랑이들을 보호하고 있지. 중국의 웅호산장 호랑이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야생 호랑이들. 내겐 뭐 별다른 놀랄 일도 아니었다. 난 이미 중국에서 호랑이 조련을 경험 했었자나. 마우스 투 마우스로 먹이도 주었는걸. 무엇이든지 아껴 써야 하는 내가 슬슬 비참해진다. 크리넷스 티슈 한 장이 이렇게 금쪽같이 느껴 질 줄이야.-이곳엔 이렇게 부드러운 티슈가 없다.- 아침에 중국인 시장에서 샀던 쉰 내가 폴폴 나는 떡 한 덩이도. 칼로리가 높아 처다 보지도 않았던 초컬릿 조각도. 전엔 한 모금 빨고 생각 없이 버렸던 담배 한 개피도.. 하찮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예사롭지 않은 이곳이 싫다. 도시가 아닌 곳은 무조건 재래식 화장실이고-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알지?- 아무리 번화한 도시라 해도 양변기 시트가 없기 일수다. 남자들이야 괜찮겠지만, 도대체 여자들은 어떻게 일들 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위에 올라가 앉나? .. 난 살아 남아야 할 것이다. 일이란 인생을 건 게임이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싫어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일이란 것이지. 불편한 환경도. 맘에 맞지 않는 상사도. 일을 위해서라면 사랑해야지. 과연..?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이 모든 것들이 마법에 걸린 듯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다. 수리수리 마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