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ngShin ] in KIDS 글 쓴 이(By): ardor (@김이영@) 날 짜 (Date): 1993년11월02일(화) 14시07분11초 KST 제 목(Title): 수//채//화///// 하이텔의 저희학교 게시판에 어떤 이방인 한 분이 올려주신 글인데..혼자 읽기 아깝고 키즈의 우리학교 보드에도 올리고 싶은 생각에 올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 올려주신 이방인. 그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수 채 화 ----------------------------------------------------------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름 모를 꽃 하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꽃들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몸치장에 신경을 쓰고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고.... 매혹적인 눈길을 흘려보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반면, 이 이름없는 꽃은 자신의 모습에 전혀 자신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아름답고 향기로운데 자신만 초라하고 보잘것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어도 꽃봉오리를 터트릴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먼 하늘만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이름없는 꽃의 하루 일과는 바람불면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저녁노을 지면 조용히 눈물짓고 비가 내리면 그저 알수 없는 슬픔에 가슴한쪽이 무너저 내리고.... 이름없는 꽃에게 있어서 하루하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생명이 붙어 있기에 의무감으로 살아가고 있을뿐.... 그 런 데.. 햇빛이 비누거품처럼 투명하게 부서지던 어느날, 아주 키가 작고 못생긴 남자 하나가 우연히 그 이름없는 꽃이 살고 있는 길가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키가 작고 못생긴 그 남자는 처음에는 무심코 그 이름없는 꽃을 지나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그 이름없는 꽃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서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꽃이 당황하여 몸을 약간 움츠리자 키가 작고 못생긴 남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 혼자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 너 참 예쁘게 생겼다, 이름이 뭐니? 그런데...넌 참 이상하다. 다른 꽃들은 모두 꽃을 활짝 피웠는데 너는 왜 여지껏 꽃봉오리도 터트리지 않았니? 꽃봉오리를 터트리면 지금보다 훨씬 더 예쁠텐데.. 못생긴 남자의 혼자말을 듣고 있던 이름없는 꽃은 너무도 당황해서 조금 벌어져 있는 자신의 몸을 더욱더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그 못생긴 남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주자 부끄러워서.... 이름없는 꽃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못생긴 남자는 무슨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다시 이름없는 꽃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 너는 정말 예뻐. 그래서 ... 널 내가 가장 사람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 미안해 ... 미안해 ... 미안해... 너를 아프게 해서.... 못생긴 남자는 이름없는 꽃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 되풀이한 후 그 이름없는 꽃을 조심스럽게 꺾었습니다. ━━━ 아,아...아아아.... 아저씨, 아파요..아프다니까요, 아저씨.... 이름없는 꽃은 허리가 잘려 나가는 아픔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꺾어준 못생긴 아저씨께 감사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오직 슬픔뿐이고,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이름없는 꽃은 얼마 전부터 자살을 결심했지만 용기가 없어서 여지껏 미루어왔었기 때문입니다. 꽃을 꺾은 못생긴 남자는 그꽃이 다치지 않게 아주 예쁘게 포장해서 어느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커피늄 안으로 들어간 못생긴 남자는 몇 번을 두리번거리다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 아직 안 왔는지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커피늄 한모퉁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커피늄 안에서 못생긴 아저씨는 초조하고 불안한지 계속해서 담배만 피워댔고, 이름없는 꽃은 꽃봉오리 한번 제대로 터트려 보지도 못하고 한세상을 마감해야 하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이 서러웠던지 계속해서 눈물만 떨구고 있었습니다. ━━━ 아무리 세상을 무의미하게 살아왔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시들어버리는건 정말 싫어, 정말로.... 이때 무척이나 아름답고 도도하게 생긴 아가씨 한 명이 못생긴 남자가 앉아있는 테이블 맞은편에 나타났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못생긴 남자는 얼마나 기뻤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 도도씨 와주셨군요.... ♡♡♡ 제가 조금 늦었죠? ◇◇◇ 늦기는요, 겨우 한시간도 안 지난걸요... ♡♡♡ 그런데 무슨 일로...? 저는 지금 몹시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 사실은..... 못생긴 남자의 얼굴은 갑자기 빠알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 이름없는 꽃은 순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못생긴 남자가 아름답고 도도하게 생긴 아가씨에게 사랑을 고백하려고 한다는 것을.... 못생긴 남자는 아주 힘겹게.. 아름답고 도도하게 생긴 아가씨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우연히 들판을 지나다 이 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꽃인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이꽃을 도도씨에게 드리려고 이렇게.... 못생긴 남자는 부끄러운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때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슬프게 생각하고 있던 이름없는 꽃은 못생긴 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그르 돌았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려고 그 아름답고 향기로운 다른 꽃들을 모두 외면하고 자신을 선택해 준 그 못생긴 남자가 너무 고마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구에겐가 선택을 받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 꽃은 그 숱한 꽃들 중에서 자신을 가장 예쁘게 보아준 못생긴 남자가 너무 고마와서 허리가 잘려나간 아픔도 잊은 채 행복한 눈물을 계속해서 떨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답고 도도하게 생긴 아가씨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못생긴 남자를 향하여 톡 쏘아 붙였습니다. ♡♡♡ 세상에.... 향기롭고 매혹적인 꽃들이 천지에 널려 있는데 왜 하필 이런 잡풀꽃을 저에게 주시는 거에요 ?!! 그러자 그 못생긴 남자는 무슨 죄인이라도 된 듯 몹시 당황하여 아주 작은 소리로 대꾸했습니다. ◇◇◇ 물론 ...장미꽃이나 튤립,백합,아이리스.... 모두 아름답고 매혹적인 꽃입니다. 그러나... 그 꽃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기에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꽃은 비록 꽃봉오리를 터트리지 않아서 아직 외적인 아름다움과 향기가 다른꽃에 비해 덜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다른꽃에 비해 훨씬 더 순수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러자 그 아름답고 도도하게 생긴 아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한마디 더 쏘아 붙였습니다. ♡♡♡ 내가 왜 추남씨를 싫어하는줄 아세요? 그건 추남씨의 외모도 외모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건 언제나 현실적이지 못하고 보잘것 없고 게다가 촌스러운 모습으로만 내게 다가오는 거에요. 남들이 많이 사고 많이 선물하는 장미꽃이면 어때요. 보기 좋고 향기만 짙으면 그만이지.... 그 아름답고 도도하게 생긴 아가씨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냉정하게 그 커피늄을 나가버렸습니다. 그 도도하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냉정하게 나가버리자, 못생긴 남자는 담배만 깊게 빨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습니다. 꽃은 못생긴 남자가 갑자기 가엾고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어떻게 해줄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못생긴 남자의 슬픔을 달랠 수 없다고 생각한 꽃은 그저 못생긴 남자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만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이상하게도 ...그 남자의 눈물에서는 생전 처음으로 맡아보는 달콤한 향기가 나는 거였습니다. 꽃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향기가 바로 진실의 향기라고... 담배를 계속 피우던 못생긴 남자는 갑자기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꽃을 선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꽃은 두려워졌습니다. 만약에... 아저씨가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자신을 화난 표정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릴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휴지통에 버려지거나 혹은 길거리에 던져져 짓밟히는 것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자신을 최초로 선택해 준 그 고마운 아저씨에게 미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러나 아저씨는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온화한 표정을 지으면서 꽃을 쓰다듬어주기 시작했습니다. ◇◇◇ 꽃아, 미안하다. 괜히 너까지 아프게 만들어서.... 도도씨도 너를 자세히 지켜봤으면 네가 이세상 그 어느꽃보다도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도도씨는 원래 그래....그러니 너도 너무 슬퍼하지 마. ━━━ 아저씨 ....고마와요.됐어요, 이젠 됐다니까요. 이제부터는 슬퍼하지 않을거에요. 이제부턴 울지도 않을거고요.. 아저씨같이 좋은 분을 만났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너무 행복해서 자꾸만 눈물이 나와요. 아저씨 손이 너무 따스해요.... 아저씨 바보..... 아저씨 바보... 이름없는 꽃은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슬픔이 아닌 타인의 슬픔을 위하여 는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꽃을 들고 커피늄을 나온 못생긴 남자는 어느 외지고 낡은 선술집에 들어가서는 밤이 깊을 때까지 계속해서 술을 마셨습니다. 자정 무렵이 다 되어서야 술집에서 나온 못생긴 남자는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이끌고 자신이 살고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로 와서는 그때까지 계속 한 손에 들고 있던 꽃을 유리병 속에 조심스럽게 꽂은후 이내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못난이 아저씨의 잠자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고 있던 꽃은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그 아저씨를 위해, 자신을 최초로 선택해준 그 아저씨를 위해 무엇인가 기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꽃은 갑자기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건 바로 여지껏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자신의 꽃 봉오리를 터트려 봐야 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 아저씨, 이제는 내가 아저씨를 기쁘게 해드릴께요. 아저씨의 웃는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요.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나의 아저씨..... 아저씨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못하고 죽는다 해도 후회 같은건 하지 않을래요. 아저씨를 위하여 죽을수만 있다면 죽음조차도 이젠 저에게 행복이 될 거에요. 아저씨... 아저씨...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의 아저씨...바보 같은 나의 아저씨.... 꽃은 아저씨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유리병 속에 담겨진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어느덧 커튼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술을 마신 탓인지 갈증을 느꼈는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던 못난이 아저씨는 햇빛에 반쯤 비쳐진 한송이 꽃을 발견하고는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못난이 아저씨는 유리병에 꽂혀 있는 한송이 꽃을 보는 순간 감탄과 환희로 말조차 잃어버린 듯 했습니다. ━━━ 아저씨, 저에요... 아저씨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여지껏 삶과 죽음 사이에서 헤메고 있었는데. 이제야... 일어나면.... 어떻해요...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요.. 잠이 와요...자꾸만 눈이 감겨요.... 꽃은 너무나 지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못난이 아저씨가 너무 기뻐하자 한줄기 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행복의 눈물이...감사의 눈물이... ◇◇◇ 꽃아, 난 네가 꽃봉오리를 터트리면 이토록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될거라고 믿고 있었어. 너를 처음 본 그 순간 부터.. 못난이 아저씨는 허리를 약간 굽혀 꽃에게 살짝 키스를 했습니다. ━━━ 아저씨 이러면 안 돼요. 아저씨가 자꾸만 이러시면....전.. 떠날 수가 없어요. 가슴이 너무 아프단 말에요. 자꾸만 눈물이 나온단 말에요... 꽃은 죽는다는 사실보다 사랑하는 아저씨 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두렵고 서글프기만 했습니다. ◇◇◇ 참...그러고 보니 너에겐 이름이 없구나. 너의 이 아름다움과 향기에 걸맞는 이름을 지어줘야 겠어. 음......무슨 이름이 좋을까 ? 그래 ! 수채화..수채화가 좋겠다. 너를 처음 볼 때 이상하게도 한폭의 예쁜 수채화가 생각났었어. 맑고 투명한 수채화... 수채화....어때 맘에 드니 ? ━━━ 예뻐요.... 아저씨, 너무 예뻐요. 그리고 ...기뻐요. 아저씨에게 하나의 의미로 기억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그래요, 이제부터 제 이름은 수채화 ...수채화에요. 꽃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꽃은 갑자기 시들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못난이 아저씨는 너무 당황하여 유리병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병속에는 한 방울의 물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꽃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바닥에 남아 있는 한 방울의 물까지 모두 빨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 결국 죽는다는 것을.. 그러나 자신을 선택해 준 그 아저씨의 웃는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렇게 밤새껏 죽음과 맞서 싸웠던 것입니다. 꽃은 시들어 가면서 마지막으로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 아저씨 ......고마와요.. 저도 노력하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수 있다는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셔서요. 그러나 ...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었어요. 그건 뭍 ...향기를 만드는 거에요. 내 몸에서 나던 그 향기...그건.. 바로 아저씨가 저에게 베풀어준 사랑이었어요 그 향기는 바로 아저씨의 사랑..이었어요 이젠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어요. 아저씨를.. 영원히.. 잊지 못할거에요. 아저씨도....이 못난... 수채화를 .. 영원히 잊지 마세요. 아...저..씨, 사....랑....해....요... 안....녕..... --------------------------------------------------------- 너무나도 뻔하고 유치함직도 한 이야기지만.. 이런 얘기에 잠시라도 눈물을 글썽일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좋은 날입니다.......... ardor 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