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g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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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gShin ] in KIDS
글 쓴 이(By): styi (이 승택)
날 짜 (Date): 1994년05월25일(수) 08시53분49초 KDT
제 목(Title): 추억 만들기



비가 어제부터 부슬부슬 내리더니 이제는
아주 제 철 만난듯이 쏟아지고 있다.

어제 밤 늦게 집으로 달려가면서
빗발이 떨어지는 밤 하늘을 쳐다보니
저 멀리에 존재하고 있는 알 수 없는
세계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마치
그쪽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대학 1학년 12월 30일 저녁, 그때도 비가 왔다.
우산이 없는 게 더 좋았다. 아니, 있어도 펴지 않았을
것이다. 테헤란로를 따라 혼자 걸으며 감상적인 젊음을
즐기고 있었다.

하늘은 칠흙같이 어두웠지만 가로등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자꾸
나의 시선을 끈다.

머리를 적시는 빗물은 또 어디론가 흘러 가버린다.
바지는 젖어도 말리면 그만이리라. 그보다 아무도
걷지 않는 길, 거의 기억나지 않는 길을 나만의
상념 속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기에 행복했다.

김 현식의 '사랑했어요'. 그 명곡을 들으면서 걸었기에
더 행복했던 거 같다. 그때까지 '비처럼 음악처럼'은
나오지 않았기에 들을 수 없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건대
못내 아쉽지만.

개포동으로 한참을 걸어가다 넓은 밭가를 지나게
되었고 그 한 구석에 있는 작은 집을 보았다. 불이
켜져있었다. 저 안에서는 한 어머니와 국민학생 아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겠지 ... 나도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더 걸어서 양재역에 도달했다.

그리고 들어가서 비를 조금 피한 뒤, 거울을 보았다.
젖은 머리를 젖히며 거울을 보았을 때, 거기 비춰진
사람은 전의 내가 아니었다.

야생에서 돌아다니다 비를 잠깐 피하러 동굴로 들어온
한마리의 늑대 같다고나 할까.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저런 모습일 수 있다니. 그러나 얼굴은
감상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거울 속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 더 사랑스럽다.

젊기에 고민이 많다고 하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아마
그것은 차라리 번민이리라.

맞다. 나이들어 생기는 고민이야 내용이 뻔할 것이다.
어떤 것을 해도 아쉬운 20대의 나날들.

시간이 지나 기억에 남는 것은 추억뿐이라고 하던데,
그 추억에는 항상 사람이 남아있다. 우리 스스로 사람이기에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피할 수 없다.

추억 만들기.

우리 모두 하루하루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가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게 아름다울수록 곱게 간직하도록 하고요.
서로 아름다운 친구들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비가 오니 가슴아프게 자유롭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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