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parkeb () 날 짜 (Date): 1997년11월12일(수) 00시59분14초 ROK 제 목(Title): 비쇼베츠.. 이제 월드컵 예선이 끝나가는 시점에 난 유독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아나톨리 비쇼베츠.. 그와 우리나라 축구의 인연은 94년 미국월드컵부터 시작된다. 당시 김호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예선전에서 일본에게 패하고 이라크의 선전으로 간신히 미국행 막차를 탔다. 따라서 축구협회에서는 본선에서의 좋은 성적을 반드시 올려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고자 했고 여기에 기술고문의 자격으로 우리 대표팀의 전술을 지휘했다. 당시 그의 전술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홍명보의 수비형 미드필더 변신이었고 이 전술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것이 스페인과의 예선전이었다. 후반에 수비형미드필더로 올라온 홍명보가 찔러준 한방의 패스가 서정원으로 하여금 동점골을 넣게 해준 것. 그러나 한국팀은 그때 2무1패로 예선을 탈락했고, 축구협회는 비쇼베츠를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다. 한국으로서는 크라머감독이후 두번째 외인 올림픽대표팀 감독. 그리고 그가 키워낸 선수들.. 최용수,윤정환,이기형,서동명,박충균,이상헌,최성용.. 도대체 어떻게 이런 선수들을 발굴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의 눈은 탁월했다. 그의 능력이 가장 돗보인 것은 올림픽축구 예선전. 이미 진출권을 따고 일본과 붙은 결승전은 그의 능력이 어느정도였는지 그대로 보여줬다. 일본의 게임메이커였던 마에조노를 공격수인 최성용으로 하여금 1대1 마크를 하게 했고, 수비에서는 최종은 대인방어 미드필드에선 지역방어를 혼용하게 했다. 예선에서 펄펄 날던 마에조노는 잠들고 오히려 최성용이 이리저리 뛰다니면서 다니면서 엄청난 체력을 보여줬고 우리의 수비는 페널티박스안에 공이 들어오는 것을 거의 못보게 해줬다. 아직도 내 생각에는 현재 대표팀의 수비보다 그때의 수비가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봐온 우리나라 축구에서 그런 수비는 처음봤다. 완벽함이었으니까.. 그가 보여준 또 하나의 능력은 바로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였다. 그게임에선 한가지 재밌는 것이 있다. 바로 홍명보가 빠져있었다. :) 비쇼베츠감독이 일부러 제외했던 것으로 안다. 그날의 히어로는 황선홍이었고 축구에서 가장 재밌다는 3대2 펠레스코어로 일본의 관중을 침묵에 잠기게 했다. 그는 국가대표팀을 아시안게임때 한번 지휘햇다. 비록 운이 없어서 4강전에 골키퍼의 실수로 우즈벡에 졌지만, 그가 지휘했던 국가대표팀은 최근의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과 마찬가지로 활기가 넘치고 자신감에 차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에 대한 비판도 많다. 키만 큰 선수만 선호하는 것. 수비에 너무 중점을 두어서 재미가 없다는 것등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 우리의 어린 선수들이었던 최용수,윤정환등은 차세대 한국축구를 이끌 주역으로 성장했고 그가 보여준 수비는 우리 축구를 한단계 더 올려준 것이라고 생각한다.어설픈 대인방어와 비조직적이던 지역 방어를 구현하던 90년대 초의 한국축구는 그의 지도로 인해 강력한 수비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올림픽 본선에서 우리가 목말라했던 1승을 거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운이 없어서 16강에 나가지 못했고, 그후 바로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잊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공로를 결코 잊으면 안된다. 그는 우리 축구를 사랑했고, 선수들을 길러냈다. 그가 없었다면 최용수가 있었을까? 윤정환이 그 놀라운 패스웍을 가질 수 있었을까? 월드컵을 너무나 쉽게 나간 이 시점에서 그가 키워준 선수들이 얼마나 우리 국가대표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지 한번더 생각해보면서 그런 지도자를 놓친 아쉬움을 느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