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X-FiLe (비밀덩가리맧) 날 짜 (Date): 1997년09월26일(금) 08시00분29초 ROK 제 목(Title): 최동원 선수 말이 나온김에 저도 한마디 덧붙이죠. 최동원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 였다는데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는 그의 전성기가 지난 83년에 가서야 프로로 입단했음에도 그가 프로야구사에 남긴 발자취는 대단합니다. 특히 그가 84년 이룩한 한국시리즈 4승의 기록은 아마 앞으로 깨지기 힘든 기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그해의 정규리그에서 27승을 거뒀습니다.) 그 다음해에 그 후유증을 예상한 전문가들을 비웃듯, 그는 가볍게 다시 20승을 넘습니다. 그리고 그다음해는 19승. 불같은 강속구와 예리한 변화구를 에다, 지금의 선동렬이나 박찬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오기'와 배짱이 있었습니다. 앞타석에서 안타나 홈련을 맞은 선수일수록 그 다음타석에서 '칠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강속구를 뿌려대던 그였습니다. 그가 프로에서 보인 그런 모습들이 그가 전성기가 지난 이후라는게 더욱 그의 투지와 근성을 실감케 합니다. 내가 가장 기억나는 그의 경기는 87년인가 있었던 선동렬과의 맞대결이었습니다. 선동렬은 당시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각종 투수부문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키던 젊고 싱싱한 투수였고, 최동원은 이미 서른을 훨씬 넘긴 나이에다 지난 몇년간 혹사당한 후유증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잇던 차였기에 누구나 선동렬의 낙승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15회까지 두 선수다 완투한 가운데 2-2 무승부. 나는 지금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명경기가 이경기라고 주저하지 않고 꼽습니다. 선동렬의 광속피칭에 헛방망이질을 거듭하던 롯데 타자들. 그러나 자존심강한 최동원은 혼신의 힘을 다해 투구했습니다. 그 경기를 티브이로 지켜본 저는, 지금도 그당시 연장 13회인가 최동원이 정말로 이를 악물고 던지는 얼굴이 클로즈업 된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당시의 저에겐 감동이었습니다. 그 이후 최동원은 선수 노조 사건과 혹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삼성으로 트레이드 된채 쓸쓸히 은퇴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의 주먹구구식 행정과 투수 로테이션따위는 생각치도 않았던 경기 운영방식이 그를 더욱 오랫동안 볼 수있는 기회를 단축시켜 버린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를 생각하자면 항상 불꽃같은 투지를 불태우던 한국최고의 투수였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