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6년09월05일(목) 08시47분07초 KDT 제 목(Title): 영호남의 야구명문들 고교야구의 [명문]은 야구사에 남을 [명승부]와 [기록]을 남기거나 [스타]선수를 꾸준히 배출하는 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종목의 [명문]의 개념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최초의 [명승부]를 남긴 학교가 바로 일제시대하의 광주서중(지금의 광주일고)과 경상중학(지금의 경남고)이었다. 일제시대하에서 벌어진 지금의 청룡기대회의 전신 이었던 [전국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맡붙은 두 학교는 야구사에 영원히 남을 명승부를 펼치게 된다. 당시 경상중에는 김양중이라는 걸출한 투수 가 있었고, 광주서중에도 그에 필적하는 투수가 있었다한다. 그 둘이 9회까지 서로 한점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투수전을 펼친 것이다. 운명 의 9회초에, 광주서중이 천신만고끝에 선취점을 올린다. 그리고 9회말 경상중의 마지막 공격. 투 아웃까지 간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평범한 내야 땅볼을 유격수가 어처구니없는 에러를 범해서 동점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결국 연장전까지 간 승부에서 경상중은 2:1 의 [기적의 역전승]을 이루어낸다. 이때의 상황을 당시 주최였던 [조선일 보]의 기사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정말 [경천동지]할 대사건이었던 모양이다. 이후 광주일고와 경남고는 한국고교야구의 대표적인 [명문] 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다. 경남고출신들이 지금은 한국정치를 주무르고 있지만, 고교야구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이다. 경북고 다음가는 전국대회 우승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선수는 물론 최동원이다. 경북고 또한 정치에서 세력이 막강한 학교이지만, 고교야구에서는 [최고의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60, 70년대에 우승을 [밥먹듯이] 했고,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전관왕]을 이루어냈던 [전설]의 주인공이다. 당시의 감독은 [고교야구 최고의 명장] 고 서영무감독이다. 그는 영남야구의 [대부]이다. [대부]로서 그는 프로야구출범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감독으로 영입되어 그가 배출한 경북고선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스타군단]을 거느리게 되는 것이다. 영남야구의 르네상스는 70년대이다. [불세출의 타자] 장효조와 [고교 특급투수] 권기홍을 배출한 대구상고. 양상문을 배출한 부산고. [황태 자] 윤학길의 부산상고. (해태 김응룡감독도 부산상고 출신이다) 그 후 80년대 들어와서는 막강한 타력을 앞세운 [신흥명문]들이 영남 야구를 평정하게 된다. 강기웅의 대구고, 정성룡의 포철공고, 임현택 의 마산고 등이 그들이다. 광주일고와 함께 호남야구의 부흥을 이룬 학교는 역시 [역전의 명수]인 군산상고이다. 1974년인가에 김봉연과 김일권을 앞세워 [대역전] 승부를 이루면서 고교야구정상에 오른 이래, 지금까지 부동의 [명문]을 고수하게 된다. 군산상고출신의 대스타들이 정말 많이 있다. [최고의 타자]였던 김성한, 최동원 김시진과 더불어 [3인방투수]의 하나였던 김용남 등. 고교평준화 이전에 경기고와 함께 서울대입시에서 한 해에 수백명을 합격 시키면서 [입시판을 주물렀던] 명문사학 전주고도 80년대에 [강상진]이라는 걸출한 투수를 배출했다. 광주일고는 달리 설명이 필요없는 명문. 사상 첫 3연타석 홈런의 주인공 김윤환, 1976년 세계청소년선수권전에서 우승과 더불어 [최우수선수]로 뽑 힌 [고교특급투수] 이상윤 등을 배출했다. 광주일고는 1980년도 대통령배 결승에서 동향의 또다른 명문 광주상고와 결승에서 만난다. 선동열이 이끄는 광주일고의 승리. 광주상고 역시 [쟁쟁한] 스타들의 산실이다. 70년대 말 이순철과 김종모 등을 배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