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Param (GoSeahawks) 날 짜 (Date): 2006년 6월 2일 금요일 오전 07시 39분 27초 제 목(Title): 펌/ 잉글랜드 구장의 생생한 풍경 출처: 오마이뉴스 꿈의 구장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경기를 보다 [김창남의 잉글랜드 통신] 잉글랜드 구장의 생생한 풍경 김창남(cnkim123) 기자 ▲ 맨유의 홈 경기장 올드 트래포트 ⓒ 김창남 영국 맨체스터 남단에 위치한 올드 트래포드 축구경기장의 별명은 '꿈의 극장(Theatre of Dreams)'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최고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에 걸맞은 별명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꿈이 거기에 있고 스타를 꿈꾸는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이 또한 거기에 있다. 그 꿈의 극장은 내가 사는 곳에서 약 180마일쯤 떨어져 있다. 고속도로로 달린다 해도 최소한 3시간 이상은 걸리는 거리. 게다가 초행길이니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주차장 사정은 어떤지, 표를 찾는데는 얼마나 걸릴지 등등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으니 일찌감치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5월말이라고 하지만 바람이 불고 게다가 늘 그렇듯 간간이 비까지 뿌리는 영국의 날씨는, 내 감각으로는 여전히 춥다. 두툼한 조끼에 잠바를 걸치고 모자까지 챙겼다. 영락없는 겨울 차림인데, 막상 밖으로 나가면 달랑 반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는 영국 친구들을 수없이 보게 된다. 도대체 그 친구들은 추위를 느끼는 감각 기제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건지, 아니면 속으로 추우면서도 겉멋으로 그러고 다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곳 시간으로 5월 31일에 열린 잉글랜드와 헝가리의 평가전 입장권은 전전날 인터넷으로 예약해 두었다. 잉글랜드 대표팀 공식 사이트이자 영국 축구협회 사이트였는데, 그 사이트에서 표를 사려면 잉글랜드 팬클럽에 가입해야만 한다. 게다가 매표 사이트에는 '이 사이트에서 사는 표는 잉글랜드 팬을 위한 것이며 만일 여기서 표를 사고 상대편을 응원하거나 상대편 유니폼을 입으면 경기장에서 쫓겨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문까지 올라가 있다. 입장권을 예매할 때 어느 편 좌석을 원하는지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선택 옵션 가운데 'Best Available'이란 게 있다. '현재 가능한 좌석 가운데 제일 좋은 곳'이란 뜻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나로선 당연히 이걸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에 나오자 여기 저기 잉글랜드 깃발을 꽂은 차들이 눈에 띈다. 휴게소에는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은 젊은 친구들로 북적댄다. 이들 모두 올드 트래포트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구쯤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기 위해 서울서 차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이야기다. 저녁 8시 경기이니 밤 10시나 되어야 끝날 테고 그 길로 다시 돌아가려면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맨체스터 시내에 주차를 하고 축구장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달 전 그 조그만 옥스퍼드 축구경기장에 갔을 때도 주차장 빠져 나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 경기장 주변의 노점상들 ⓒ 김창남 ▲ 잉글랜드 국기를 파는 노점상들 ⓒ 김창남 맨체스터 시내에서 레일 위를 달리는 트램을 타고 올드 트래포드 주변에 내려 약 10분쯤 걸으니 꿈의 극장 올드 트래포드 축구장이 나왔다.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만 쫓아가면 되니까. 아직 경기 시작하려면 두 시간 반이나 남았는데 이미 주변에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햄버거와 커피 등을 파는 노점상들도 진을 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잉글랜드 국기를 파는 노점상들. 잉글랜드 국기를 몸에 두르거나 얼굴에 그리거나, 머리에 색칠한 젊은이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잉글랜드 축구의 핵심은 물론 프로축구 리그다. 각 도시를 연고로 둔 프로축구 경기는 도시간의 피 터지는 경쟁이자 전쟁이다. 그러나 평소 프로축구 리그에서 원수처럼 싸우던 축구팬들도 국가대표 A매치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잉글랜드 서포터로 한 몸이 된다. 사람들의 정체성을 그때그때 서로 다른 카테고리로 순식간에 결집해내는 힘이야말로 스포츠가 가진 놀라운 힘이다. 내 좌석을 확인해 보니 이건 좀 심하다 싶을 만큼 꼭대기에 자리 잡은 최악의 자리이다. 아니, Best Available이라더니. 아래로 내려와 대강 빈자리에 앉았다가 주인이 오면 내주고 통로에서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가끔 극장에서도 그런 일이 있지만 이런 경우 끝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정말 기분 좋은 횡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 자꾸 입장객이 들어오면 초조해진다. 아니, 왜 자꾸 입장시키는 거야. 그만 들여보내지. 그런데, 오늘은 운이 좋았다. 경기 시작할 때까지 내 자리를 내놓으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뜻밖의 명당자리에서 끝까지 구경할 수 있었으니까. ▲ 경기 전 의례식 ⓒ 김창남 오늘의 선발 출전 멤버는 그야말로 잉글랜드의 베스트팀이다. 경기 전 신문 기사에 따르면 오늘 에릭손 감독은 웨인 루니가 빠질 경우 잉글랜드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의 시스템을 실험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실 웨인 루니의 부상은 잉글랜드팀엔 엄청난 재앙이다. 요즘 루니의 발뼈 상태는 매일 매일 뉴스의 주요 아이템 가운데 하나다. 꼭 잉글랜드팬이 아니더라도 축구를 즐기는 팬으로서 루니가 끝내 결장해 그 야생마 같은 플레이를 볼 수 없다면 정말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는데 어쨌든 잉글랜드는 지금 루니의 부재에 대비한 전략을 수립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에릭손 감독의 새 구상은 마이클 오웬 뒤에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제라드가 서고, 리버풀의 제이미 캐러거가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는 형태인데 그것이 얼마나 잘 먹혀들어갈지가 오늘 게임의 초점이란 이야기다. 전반전 초반은 어쩐지 잉글랜드의 플레이가 잘 살아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특히 제라드와 램파드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아 경기를 원활히 풀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게다가 골운도 따르지 않았다. ▲ 램파드의 패널티킥 직전(근데 골키퍼는 어디로 간 거야?) ⓒ 김창남 전반 42분쯤 베컴의 정확한 크로스를 받은 오웬의 헤딩 슛이 헝가리 골키퍼 키랄리의 선방에 가로 막힌 것이 첫 번째 불운. 제라드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램파드가 찾지만 역시 골키퍼에게 가로 막혔고 뒤이은 오웬의 헤딩이 크로스바에 맞은 것이 두 번째 불운. 다시 베컴의 크로스에 이은 조 콜의 헤딩이 반대편 골 포스트에 맞고 나오면서 수비수가 걷어낸 것이 세 번째 불운이었다. 그런데 후반전에 들어오면서 상황은 갑자기 바뀌었다. 후반 시작 2분 만에 베컴의 크로스를 받은 스티븐 제라드가 헤딩으로 첫 골을 성공시킨 순간 올드 트래포드 구장을 꽉 메운 관중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그로부터 다시 6분 쯤 후, 이번엔 존 테리의 헤딩 슛이 터져 나왔고 다시 몇 분 후, 이번엔 헝가리 팔 다다이의 기막힌 롱슛이 성공하면서 스코어는 2-1. 경기장 분위기는 아연 활기가 돌았고 박진감이 넘쳐 났다. 후반 65분쯤, 제라드와 오웬이 나가고 크라우치와 월컷이 들어오면서 경기장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관중들은 리버풀의 2m 장신 스트라이커가 긴 몸을 휘청거리듯 질주하는 모습에 웃음과 박수를 보냈고 17살짜리 어린 국가대표에게는 '테오, 테오'하는 함성을 연호하며 뜨거운 애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크라우치는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켜 에릭손 감독에게 자신의 존재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번 경기는 잉글랜드팀과 에릭손 감독에게 대체로 만족스러운 결과였지 싶다. 제이미 캐리거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충분히 임무를 수행해냈고 존 테리는 국가대표로서 첫 골을 성공시켰으며 테오 월컷은 17세 75일로 국가대표 경기에 나서면서 루니의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크라우치는 스트라이커로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면서 루니의 부재를 메울 수 있는 카드로 떠올랐다. ▲ 잉글랜드 국기를 걸친 팬들 ⓒ 김창남 그러나 오늘 경기는 무엇보다도 바로 데이비드 베컴이란 선수의 진가를 새롭게 보게 한 경기였다. 베컴에 대해서는 실력보다 잘 생긴 외모로 한 몫 보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많고 나 역시 그런 평가에 적지 않게 경도되어 있던 편인데 오늘 경기는 베컴이 왜 대단한 선수일 수밖에 없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단 한 번의 패스로 순식간에 위험상황을 만들어버리는 능력, 주장으로서 경기의 흐름을 조율하는 능력,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공격수의 머리끝과 발끝에 가져다주는 크로스 능력은 그가 그저 잘 생긴 외모만으로 이름을 올리는 선수가 아님을 분명하게 알게 해 주었다. 밤 10시, 떠나갈듯 노래를 부르고 경적을 울려대는 영국인들 틈을 비집고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밤 바람이 찼지만 사람들의 열기는 그것을 뒤덮고도 남을 만큼 여전히 뜨거웠다. 북새통 속에서 간신히 트램을 잡아 타고 시내로 돌아오니 11시. 맨체스터 시내에서 고속도로로 나오는 길은 꽉 막혀 있다. 모두 축구경기를 보고 돌아가는 타지 사람들이다. 나야 길지 않은 외국 생활에서 한번 마음먹고 시도해 본 호사라 치지만 이 사람들 정말 징하구나 싶었다. 밤길을 마구 달려 집에 돌아오니 새벽 3시. 오자마자 인터넷을 켜고 잉글랜드팀 홈피에 들어가 보니 오늘 입장객 수가 떠 있다. 5만6323명. 그 가운데 하나가 나였다. That old law about "an eye for an eye" leaves everybody blind. The time is always right to do the right th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