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Gang ] in KIDS 글 쓴 이(By): giDArim (_기_다_림_) 날 짜 (Date): 2002년 3월 11일 월요일 오전 12시 45분 17초 제 목(Title): 베를린에서 살아가기 1. 이곳 베를린에 온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독어를 전혀 못해, 처음에 그렇게도 힘들던 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해지면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뭐라고 독어로 중얼거리며 말을 걸어도 이젠 눈치로 가볍게 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온지 꽤 되었지만 난 여전히 독어를 못한다. 기본적인 숫자도 제대로 못세어 3을 넘어가면 모든 게 헷갈리지만 물건을 살 때 삼 이상을 숫자를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독어가 가장 아쉬울 때는 역시 머리를 자르러 갈 때이다. 하지만 이것도 울리케에게 배운 'Ich haette gerne den selben shnitt.' 이란 문장 하나로 지난 6개월을 이쁜 독일 언니들에게 내 머리를 맡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사실, 독어를 무지 배우고 싶기는 하다. 독어를 하면 TV를 보는 것도 재미있을테고 한국에서처럼 연극보러 자주 가게도 될 것이다. 게다가 이쁜 우리 테크니션 언니들과도 농담도 하고... 한국처럼 학원에 주말 집중반이라도 있으면, 기초 회화라도 등록 하겠건만 유럽 사람들이 철/저/히/ 지키는 휴일엔 학원은 커녕 동네 구멍가게도 문을 열지 않는다. 2. 내 생활 형태는 한국에서나 별반 차이가 없다.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박물관이나 무슨 유적따위를 보러 돌아다니는 걸 워낙 좋아하지않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책이나 음악, 영화로 때우게 된다. Quasimodo같은 클럽에 가서 가벼운 락이나 재즈를 듣고, 가끔씩은 베를린 필을 보러 가기도 한다. 독일은 대부분의 극장이 모든 영화를 독어로 더빙해서 상영하기 때문에, 영화는 주로 인터넷으로 받아보게 되지만, 포츠담 광장에 있는 소니 센터에 영어 전용 상영관이 생긴 이후론 가끔씩 그 곳에 들린다. 하지만 역시 주말에 내가 가장 즐기는 건, 아마존에서 산 소설 한권 옆구리에 끼고 자전거로 공원에 가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자전거로 십오분 정도면 공원이 나온다. 공원이라고해서 한국 처럼 무슨 놀이 기구가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정말 영화에서나 보아왔던,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에 자리잡고 따뜻한 햇볕 속에서 나무에 기대 소설을 읽은 재미는 꽤 솔솔하다. 3. 살면서 가장 한국에 가고 싶을 때는 역시 만화가 보고 싶을때이다. 한국에선 일주일에 최소 두번을 만화방에 갔었다. 연구소 다닐때에도 가끔씩 땡땡이치며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사람들은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논문 찾으러 도서관에 가 있는 줄 알았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만화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들로, 여기 오기전 몬스터 14권, 20세기 소년 3권까지 보고 왔었는 데 궁금하던 스토리들을 얼마전 누군가가 몬스터 1-17권, 20세기 소년 1-7권을 스캔해 보내주어 다 볼 수 있었다. 4. 그제는 여성의 날이였단다. 이런 멍청해보이는 날을 누가, 왜 만들었 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성의 날' 덕분에, 난 그동안 그 이해가 안되던 놈의 그 미스테리한 동작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프랭키'라는 연구소에서 박사과정 중인 놈이 있다. 외모는 뽀빠이라는 만화에서 맨날 올리브를 납치하던 브루터스를 연상하면 된다. 진짜로 브루터스처럼 턱수염이 더부룩하다. 생긴건 이런게, 목소리... 열라 가냘프다. 웃는 건 더 가관이여 정말, '호-호-호' 거린다. 게다가 평소 대화할 때 하는 섬세한 손 동작 하나 하나는 정말 예술이다. 뭐, 저런게 다 있나 했는 데, 이런 그가 '여성의 날', '울리케'에게 찾아와서는, "여성의 날, 축하 해. 호-호-호." 하면서 노란 꽃 한송이을 건네주고 나갔다. 그가 나가자 마자, 울리케하는 말, 프랭키는 호모섹슈얼인데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여자 역할을 하고있고, 그렇게 때문에 진짜 여자들은 관심도 없는 여성의 날이면, 매년 연구소 여자들에게 꽃을 돌린단다. 개인적으로 동성연애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솔직히 아무 생각도 없다. 다만, 난 이쁜 언니들이 좋지 이쁜 오빠들에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음악은 좋아하지 않아도 SES, 핑클, 베이비복스 심지어는 모닝구무스메가 나오는 프로그램들을 죽어라하고 일부러 찾아서 보고 에치오티 따/위/가 나오면 사정없이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다.), 다만, 하리수같은 외모의 게이만 생각하다 브루터스 같은 놈이 그것도 잠자리에서 여자 역할을 한다는 데에 갑자기 몸서리가 쳐지며, 그동안 재숩게 여겨지던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이제, 그의 행동과 말투는, 내게 더 이상 재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니라 여/자/ 프랭키의 생활로 인식되기 시작되었다. --------------------------------------------------------------- 앞으로 1년 반... 내 계약은 1년 반이 남았다... 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