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10월19일(수) 21시20분49초 KST 제 목(Title): 기막히게 육감이 잘 들어 맞는 날. 그런 날이 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놀라울 만큼 금방 현실로 나타나는 날. 나에게는 그저께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가을이라서 그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보고 싶어졌다. 얼마전에 얼핏 스쳐 가면서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만난지가 한참 된 사람이...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날 따라 그 사람이 무척이나 보고 싶었는데, 문제는 어딜 가야 볼 수 있을지 막마가하다는 사실이었다. 학교내에 어디에 붙 박혀 있는 사람도 아니고 다니는 길이 일정한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점심을 억지로 집어 넣고 연구실로 가다가 공연히 수족관 (중앙도서관 학위논문열람실의 별명) 에 가서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 번 그곳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래서 그냥 수족관으로 향했다. 그 시간에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수업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수업이 없어도 다른 열람실에서 공부할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아예 오늘은 학교에 안나왔을 수도 있는데 나는 순전히 느낌 하나만 믿고 수족관으로 향한 것이다. (흠... 이런 나를 아시는 우리 어머니는 가끔 " 다우 너는 말하는 거 보면 아주 논리적인데 하는 짓은 완전히 무대뽀야." 하신다.) 넓지 않은 수족관을 한 번 빙 둘러 보니 눈에 띄지 않는다. 헷.. 그럼 그렇지 공연히 가을이 돼서 나도 사람이 이상해졌나 보다. 이 넓은 학교에서 어떻게 사람을 찾아.? 쓴웃음을 지으면서 출구쪽으로 나오는데.... 앗~! 그 사람이 수족관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하니 그쪽도 약간 놀랐나 보다. 반년전에 여기서 마주친 일을 기억하는 걸까? 몇마디 인사를 나누고 수족관을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하하.. 이거 육감이 너무 잘 맞았는 걸.... 하고 감탄을 했다. 육감 덕에 보고 싶던 사람 얼굴을 보게 되다니.후후... 그러고 나서 오후3시 경이 되었을 때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 나서 키즈에 접속을 했는데 시험때라 그런지 글도 별로 없고 유저란도 썰렁하기 그지없다. 갑자기 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나는 톡 체질이 아니라서 평소에는 톡을 잘 안한다. 주로 글 읽고 채팅하고...그게 다인데 (물론 아는 사람하고는 가끔 한다.) 그날따라 톡이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누구랑 할까.... 이왕이면 평소에 날 내가 잘 모르던 사람하고 하는 것이 좋겠다. 유저란을 뒤지다가 보니까 April 이라는 아이디가 눈에 들어 온다. 에이프릴.... 아이디가 참 예쁘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월이라는 것이 뭐가 이쁘냐고? 여러분은 혹시 '서커스의 소녀' 라는 동화 내지는 소설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다우가 어렸을 때 어느 아동문학전집에 끼어 있어서 읽었던 이야기인데 그 책의 주인공 이름이 바로 에이프릴 이었다. 지금은 줄거리는 다 잊어버렸지만 주인공의 이미지 만큼은 여전히 생생한데 적어도 어린 나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귀엽고 이쁜 여자주인공이었다. 에이프릴 아이디를 본 것만으로 나의 상상은 여기까지 비약을 해버렸다. 흠...이것도 가을 탓인가... 그래 에이프릴하고 톡을 해보자. 그래서 나는 에이프릴을 초청했고... 다행히 에이프릴 님이 나의 초대에 응해 주어서 그렇게 예쁜 아이디를 가진 분하고 가을 오후에 한담을 나눌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갑자기 질문했다. landau: 근데...에이프릴 이란 아이디는 어떻게 만드신 거여요? April: 별 거 없어요. 들으시면 실망하실텐데......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의 주인공이에요. landau: 그 책 제목이 혹시 '서커스의 소녀' 가 아닌가요? April: '서커스의 소녀' 라는 동화책이었는데.... 두 사람에게서 같은 책의 이름이 거의 동시에 튀어 나왔다. 아니 참 타이핑 되었다. 으으악~~ 놀라운 일이야... 아닌 척 했지만 난 진짜 놀랬다. 어쩌면 내가 톡 걸기 전에 생각한 것이랑 꼭 같은 생각을 상대가 가지고 있다니? 나는 잘해야 누가 이렇게 아이디를 만들어 줬어요 내지는 4월달에 태어났기 때문에요 정도의 대답을 생각했었는데! 상대편의 에이프릴님은 더 놀라신 것 같았다. 통신 경력이 상당히 오래 되셨다는데 그 동안 아이디의 기원을 이야기 하면서 '서커스의 소녀' 를 기억하는 사람을 처음 처음 만나셨다면서 무척이나 놀라와 하셨다. 하..... 톡을 하다가 보면 이런 일치도 생기는 구나..... 그것이 그날 두번째로 나의 육감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아니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하나? 세번째는 저녁 먹을 무렵에 생겼다. 연구실에서 단체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는 데 그날은 왠일인지 나에게 전화가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전화가 오기를 바랬다고 할 수도 있겠다. 6시가 넘어서도 전화기가 잠잠 하길래 밥줄 끊어지기 전에 헛공상은 그만두고 밥이나 먹으러 갈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키즈 유저 몇이 모여 있으니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내가 평소에 '처제' 라고 애칭하면서 귀여워(?) 하는 후배였다. 평소에도 목소리가 예쁜 아이인데 전화를 타니까 목소리가 더 좋다. 크으~~ 오늘은 정말 예감이 너무 잘 맞는다. *) ( 해명: 이 '처제' 라는 애칭 때문에 간간히 기혼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데 이것은 스테아 선배님이 아끼는 후배를 '딸' 로 삼듯이 그냥 애칭일 뿐이다. 다우가 솔로라는 것은 2+2=4 라는 것처럼 자명하다.) 마지막 육감은 저녁 퇴근 길에 발휘되었다. 10시가 다 되어서 교문을 향해 내려 가다가 괜히 전산소에 가서 통신을 잠깐 하고 가고 싶어진다. 거기에 가면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날것 같은 느낌...사실 그 시간이면 사람이 거의 없을 시간인데 말이다. 터미날실에 들어가니 모르는 사람 두엇을 빼고는 아무도 없다. 에고고고... 오늘의 재수를 너무 믿은 건가? 온 김에 잠깐 하고서 키즈에 접속을 한다음 한바퀴 보드들을 순례하고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 정말 오늘은 끝내주는 날이야......:0 얼마전에 알게 된 친구 한 사람.. (흠...친구라는 호칭이 적절한가 모르겠군...) 마침 쓸쓸한 가을 밤에 교문까지 그 먼 길을 혼자 내려가기가 싫었는데 참으로 잘 된 일이었다. 그 친구가 자기 할 일을 끝내기를 기다려 함께 이야기 하면서 걸어내려왔다. 역시 가을은 이상한 계절이야.... 혼자 걸어가면 더 스산한 느낌을 주는 길이 둘이 이야기 하면서 걸으면 청신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길로 탈바꿈 하니까 말이야.... 가을이 아니면 이렇게 두 경우의 느낌이 다르지는 않거든... 이런 날은 일년에 한번도 있기 어렵다. 이제 즐거운 날이 지나갔으니 당분간은 또 괴로운 나날의 연속 이겠군. 그래도 가끔은 이런 유쾌한 날이 있다는 것이 늘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얼마나 좋은 자극제가 되는지 말로 형용하기가 어렵다.......... --- landau (fermi@power1.snu.ac.kr) It's an ID of kids user who has strong tee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