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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jusamos (주세이모스�@)
날 짜 (Date): 1994년09월09일(금) 09시50분53초 KDT
제 목(Title): [백과사전2] 때가되면 숙명적으로...





이 글을 읽을 때, 백과 사전임을 상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소설에서 그대로

발췌한 것이므로, 다소 컴과 맞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나름대로

컴에 맞게 고쳐볼까..하다가...원문을 훼손시키는 것보단 그냥 놔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어 그대로 올립니다. 그럼....생각해 봅시다.


때가 되면 숙명적으로, 손가락이 이 지면들 위에 놓일 것이고, 눈이 이 단어들을

핥을 것이며, 뇌가 단어들의 의미를 해석할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빨리 도래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결과가 끔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엇는지를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깊은

곳에 감추어둔 비밀이라도 끝내는 호수의 수면으로 떠오르고 마는 법이다. 시간

이야 말로 비밀의 가장 나쁜 적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먼저 당신에게 인사를 해야 겠다. 당신

이 내 글을 읽고 있을 때쯤이면, 나는 아마 죽은 지 10년 아니면 100년쯤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나는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이 백과 사전에 담으려는 지식에 도달하게 된 것을 이따금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한 인간이며, 비록 지금은 인류에 대한 나의 연대 의식이 가장 밑바

닥에 와 있지만, 그래도 당신들 속에 세계 인류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내가 인류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겪은 일들을 전해주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모든 이야기들은 좀더 가까이에서 보면 결국 서로 비슷비슷하다. 먼저 <그래서

어찌어찌 되었다>로 발전할 씨앗을 가진 하나의 소재가 있다. 그 소재가 어떤

위기를 겪는다. 그 위기가 소재에 반전을 불러오고, 소재의 성격에 따라 소재가

소멸하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먼저 당신에게 ㄷㄹ려주려는 이야기는 우리의 우주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그 세계의 내부에 살고있고, 삼라 만상은 크건 작건 모두 똑같은 법칙을

따르고 있고 똑같은 상호 의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당신이 이 지면을 넘길 때, 당신의 손가락이 어느 지점에선가 종이의

섬유소와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그 접촉으로 극미한 마찰열이 생긴다. 지극히

적기는 해도 마찰열은 실재한다. 이 마찰열 때문에 어떤 전자의 방출이 일어나고

그 전자는 원자를 벗어나 다른 입자와 충돌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작은 알갱이지만, 사실 그 입자도 저 나름으로는 거대한 세계

이다. 따라서 전자와의 충돌이 입자에게는 말 그대로 하나의 대격변이다. 충돌이

있기 전만 해도 입자는 움직임 없이 고요했고 차가운 상태에 있었다. 당신이 책

장을 <넘김으로써> 입자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거대한 불꽃이 일면서 입자에

번개 무늬가 생긴다. 책장을 넘기는 동작 하나로 당신은 어떤 일을 일으킨 것이

고 그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어떤 세계가 생겨나고 그

위에 사람들과 같은 거주자들이 나타나 야금술이며 프로방스 요리, 별나라 여행

같은 것을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영리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당신이 손에 이 책을 쥐지 않았던들, 그리고 당신의 손가락이 바로 종이의

그 자리에 마찰열을 일으키지 않았던들,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처럼 우리의 우주는 책장 한 귀퉁이, 구두의 밑바닥, 맥주병의 거품에도 다른

종류의 어떤 거대한 문명이 깃들 자리를 분명히 마련해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는 아마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오랜 옛날,

우리의 우주, 아니 우리의 우주를 담고 있던 입자는 텅 빈 채, 차갑고, 캄캄하고,

고요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아니면 무엇인가가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가 책장을 넘기고, 돌 위를 밟고, 맥주병의 거품을 걷어냈던 것이다. 하여튼 어떤

외부 충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우리 입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

우리는 그 외부의 충격을 거대한 폭발이었다고 알고 있으며, 그래서 빅뱅이라

이름을 붙였다.

150억 년 이상 전에 우리 우주가 태어난 것처럼, 어쩌면 매 순간, 무한히 큰 곳

에서, 무한히 작은 곳에서, 무한히 먼 곳에서 우주가 태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다른 우주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 우주가, 수소라고 하는 가장

<작고> 가장 <간단한> 원자가 폭발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대한 폭발로 돌연 잠에서 깨어난 그 거대한 침묵의 공간을 상상해 보라. 저

높은 곳에서 왜 책장을 넘겼을까? 왜 맥주 거품을 걷어냈을까? 그건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수소가 타고, 폭발하고, 더워진다는 것이다. 한 줄기

거대한 빛이 순결한 공간에 비친다. 위기, 꼼짝 않던 것들이 움직인다. 차가웠던

것들이 더워진다. 잠잠하던 것들이 소리를 낸다.

최초의 폭발 과정에서 수소는 헬륨으로 바뀐다. 헬륨은 수소보다 겨우 조금 더

복잡한 원자일 뿐이지만, 그런 사소한 변화에서도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위대한

제 1 법칙을 연역해 낼 수 있다. 그 법칙은 바로 <끊임없이 더 복잡하게>라는

것이다.

우리 우주에 그 법칙이 관통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우주에도

그 법칙이 적용되는 지를 증명할 길은 없다. 다른 우주에서는 어쩌면 <끊임없이

더 뜨겁게>라든가, <끊임없이 더 단단하게>, 또는 <끊임없이 더 재미있게>라는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 우주에서도 사물이 더 뜨거워진다든가, 더 단단해진다든가, 더 재미있어지는

일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제 1 법칙이 될 수가 없다. 그것들은 부차적인

법칙일 뿐이다. 다른 모든 법칙의 토대가 되는 우리 우주의 근본 법칙은 바로

<끊임없이 더 복잡하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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