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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seagull (갈매기)
날 짜 (Date): 1994년09월04일(일) 07시07분54초 KDT
제 목(Title): 졸업을 하고 나면...


이제 나의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다.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 대학원 2년...

총 18년의 세월을 학교에 적을 두면 살았다.

앞으로 5개월 후면 완전히 학교를 떠나겠지!

실제로는 3개월후쯤이면 학교와는 멀어진다.

아쉬움은 그리 남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취직을 해서 사회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

대학원에서의 전공을 살려서 취직할 생각은 별로 없다.

어쩌면 대학원 경력은 인정을 받지 못할 지도모른다.

그렇다고 대학원에 진학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졸업할 때 처음 대학원시험을 쳤을 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대학 3학년때에야 전공에서 마음에 드는 분야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교수님께서는 넌 연구보다는 그냥 취직하는 것이 적성에 맞을 것이다라고 하셨었다.

그 말에는 나도 공감을 했었지만...

타고난 성격에서 오는 것보다는 후천적으로 노력에 의해서도 될 수 있다고 생각

했었다. 

너무 늦게 공부에 취미를 느꼈기때문인지 떨어졌고...

방위로 군대를 갔었다.

말년이 되니깐 다시 대학원을 가고 싶었었다.

어쩌면 그때는 오기도 있었던 듯하다.

다행히 그때는 용케 붙었고, 

지금 난 그때 그 교수님의 연구실에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무기화학분야였고... 지금도 만족한다.

대학원생활은 나에게 적지않은 선물들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공학을 떠나지는 않을 나에게 과학적인 기초를 좀 더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연구실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연구는 지고지순한 것이고 생산은 허접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의 적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쩌면 졸업후, 또는 제대후 바로 취직을 했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내가 의욕적으로 신나데 일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의 내 각오가 바래질 지도 모르지만...

정말 열심히 일할 생각이다.

평생의 직업으로...

십년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할 때...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나를 생각할 때보다는,

푸른 작업복이나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비스듬히 맨 나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학교가 그리울 것 같다.

학생으로 다시 오고 싶을 것 같다는 뜻은 아니다.

나의 젊음의 한시절을 보내었던, 젊은 시적의 6년이 배어있는 모교가,

그 시절이 그리울 것 같다.

아마... 학부시절이 더욱 그리울 것 같다.

지금의 기준으론 낭만적이지도 못한 시절을 산 것 같지만...

나에겐 그 시절이, 그 때의 친구들과 그 때의 이름모를 학우들과의 삶이 더욱

낭만적이었다고 생각된다.

탁자위엔 몇병의 소주가 있고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소리높여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안주는 찌게 하나 둘 놓여 있었지만...

우리가 국물만 후루룩거릴 양이면...

주인 아주머니는 찌게국물이나 짬뽕국물이라도 계속 가져다주셨었다.

노래소리에 목청을 높여서 옆에 앉은 친구와 얘기하고,

그래서 더욱 바짝붙어서 얘기하던 시절...

서로의 생각과 감정들을 나누고, 때론 싸우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서로를 이해하고...

배고프면서도 술고플 때...

그러나 돈이 없을 때는...

서너명이 일이천원씩 주머니를 털어 신림사거리까지 걸어가서는 

순대에 막걸리를 마셨었다.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해 조그맣게 노래도 부르고...

아주머니는 크게 노래하면 하루 영업중지 당한다며 주의를 주고...

취해서는...

비틀거리며...  어깨동무를 하고...

고래고래 소리도 치고 노래도 하며...

때론 왠지모를 울분에 울기도 하며...

다시 학교까지 걸어오던 일...



우리끼리 술먹다 돈떨어지면...

선배의 하숙짚앞에서 고래고래 교가를 부르기도 하고...

그럼 선배는 놀래서 튀어나와서는


남들 다 자는 밤에 떠들면 어떡하느냐고 하면서도...

기분좋게 녹두거리로 데려다 주었다.

그 돈 만원이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빌린 돈이란 걸...

그 형에게도 작은 돈이 아니란 걸 우린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싸랑하는 후배들한테 이 정도도 못 쓰겠냐고 호기를 부리고...

우리도 모르는 척, 선배는 후배의 밥임을 외치며 날을 새우고...

돈이 떨어지면 리버싸이드클럽에 내려가 깡소주에 새우깡으로...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때...

마찬가지로 술마시다 돈 떨어지니까 나에게 전화한 후배들에게...

역시 하숙집 아주머니한테 빌린 돈을 가지고...

이 밤에 전화하면 어떡하냐라고 속에도 없는 야단을 치고...

마치 일이만원은 돈도 아니라는 듯이 호기를 부리며...

하긴 그 때, 학교안이라면 만원이면 무적이었다.

열명의 후배를 데리고 가 공대식당에서 밥을 사주고 음료수까지 한잔씩 돌려도

남았으니깐...


정말로 후배는 돈이 없고 선배는 돈이 많아 그랬을까...

오히려 그때도 보통은 후배들이 넉넉했다, 돈 들 일이 없었으니까...

내가 선배에게 바랬던 건, 후배들이 나에게 바랬던 건...

술이나 밥이 아니고 정이었다.

그래서 지방에서 올라온 선후배간이 더 잘 어울렸는지도...


작년에 학부애들이랑 얘기하다가...

내 돈 내고 사먹지 왜 선배보고 밥, 술 사달라고 하느냐는 말에...

자꾸 밥 사달라고 하는 웃기는 후배들이 있단 그래도 선배란 놈의 말에...

왜 제대후 다시 돌아온 학교가 서먹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 친구중에는 후배들이 둘이 같이 있어도 나에게만 밥사달라는 말을 한다고

화를 내는 녀석도 있었는데...

억지로 후배놈들을 집합시켜서는 쐬주와 맥주를 사주면서... 

취한 목소리로 "용환아! 나 한달간 굶어야 겠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쟤들이 내 후배 맞지! 너 나 밥사주라 한달간..."하면서 웃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혹시나 선배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가면...

"얌마! 넌 선배보고 인사도 않냐?"라고 말할 수 있었던 때!

"앗! 형, 못 봤어요. 근데 죄송하지만 형 성함이?  에구 잘 됐다. 저 밥 사줘요.

오늘은 내 돈으로 밥먹는 불상사가 생길 뻔 했네."라고 답할 수 있었던 때...

밥먹고 나면 "내 전화번호가 ***-****인데 술먹고 싶으면 전화해라"라고 얘기해

주던 선배가 그리도 많을 그 때!

그 때가 그리울 것 같다.



지금처럼 우아한 맥주집에서 분위기있게 낭만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이차, 삼차까지 가면 스페이스에서 맥주맛을 볼 수 있었고...

선배들이 돈이라도 있을 때면 목화장에서 밤새며 술을 마시고...

생을 얘기하며 정을 나눌 수 있었다.



지금은 받지도 않는다지만...

그 때 과선배나 공대에 다니는 선배들은 돈이 없어도...

계산기만 있으면 무적이었다...   :P

이젠 포장마차마저 없어져버린 관악에서, 녹두에서...

나에겐 그 시절이 오히려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정이 흐르고...



그립던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겠지.

냉정하게 생각하면 나의 미래를 위해서 차라리 회화학원을 나가는게 유리할 지도

모르지만...

마지막 학창시절을 열심히 살고 싶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직접적으로 나에겐 도움이 안 된다 하더라도...

지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자세가 오히려 도움이 

될거라고 믿으며...

어차피 그리 약삭빠르지 못한 시절을 살아왔고...

치밀하게 미래를 준비할 머리도 없으니...

그냥 우직함으로...

진정한 공대생의 모토 '단순, 무식, 과격'을 살려서 살아가고 싶다.

단순하게 무식하게 과격하게

졸업후 내가 뭘하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사회에 나가서도...


그런 날 보고 단순하고 무식하고 과격하다고 비웃는 똑똑한 사람이 있다면...

자랑스럽게 "난 단순하고 무식하고 과격한 공돌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다.

속엣말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런 일이다.


십년, 이십년이 지난 후의 내 모습은 어떠할지???

모교에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어있을지...



나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회스럽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싶다.







   


     -- 팔십년대의 후반을 그리워하며... 이십일세기를 꿈꾸는 갈매기가

        횡설수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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