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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MinKyu (김 민 규)
날 짜 (Date): 2003년 3월 19일 수요일 오전 01시 57분 28초
제 목(Title): Re: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주장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이야기가
될까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석유에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겠습니다.

석유가 전쟁 수행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다만
제가 제기했던 의문은, 석유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이냐, 전쟁을 하려고
하니까 석유 확보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냐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좀 다르게 생각해보면, 애당초 다른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었다면 독일이 굳이 전쟁을 통해서 소련의 석유까지 확보해야만
했느냐에 대해서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루마니아의 유전 만으로
공급이 충분치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독소전 직전까지 소련에서
다량의 석유를 수입했다고 하니까요. 다만, 독소 불가침 조약 이후로
소련은 성실하게 석유를 공급해 주고 있는데 단지 그 석유를 이유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조금 석연치 않은 면이 있습니다. 그것 보다는
소련이란 나라 자체를 타도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치 않은 것은, 독소전 후 루마니아를 상실하기
전까지는 독일이 심각한 석유 부족에 시달린 것 같아 보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첫해야 비축분 등으로 넘어간다 치더라도 1942, 1943년에도
독일은 여전히 소련에 대해서 공세적으로 나갔으니까요. 제가 알기론
석유보다는 전차 부족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고 하니까 -- 전차 부족이
1943년 쿠르스크의 공세가 늦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소련의 석유 없이도 버틸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말기에
석유가 없어서 헤매는 상황은 아마 루마니아를 잃은 44년 가을 이후의
상황일 것입니다.)

란다우님도 잘 아시겠지만 '생존권'을 위해서 소련을 정복해야 한다고 하는 
히틀러의 주장은 그의 '나의 투쟁'에도 나온다고 하며, 1941년에 독소전을 
시작한 다른 원인 중 하나는 영국의 항전을 단념시기키 위한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즉 소련 타도는 원래 히틀러의 목표였는데, 원래는 서부 전선을
종결시키고 나서 소련을 공격하려 했는데, 영국이 끈질지게 항전을 
하니까 본말이 전도되어서 영국을 단념시키기 위해서 소련을 먼저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독소전 수행 과정에 대해선, 제가 그리 자세히 알지는 못하고, 지금
참조할 수 있는 책이 '제3제국의 흥망' (유명한 책이긴 하지만 조금
오래되었죠) 밖에 없어서 그냥 그 책에 나온 내용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책에 독소전 배경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나온 것 같지는 않지만,
대략 최초의 계획 부분에서는 우크라이나 방면과 발트3국 방면등 두곳에
주공을 두었는데, 바쿠 유전은 모스크바 점령 후에 필요에 따라 확보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p.798) 그런데 히틀러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는지
군부의 설득으로 생각을 바꾸었는지는 그 책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도를 놓고 생각하면 당시 독소 국경에서 바쿠 유전까지 거리는
국경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의 두배가 넘어 보이는데, 유전부터 확보하는
것을 최초 목표로 삼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란다우님께서 우크라이나의유전 (드네프로 동쪽)도 언급하셨는데, 그곳
유전이 어느정도 규모의 것인지 제가 알지 못해서 뭐라고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냥 유전에 관해서는 바쿠의 유전만 염두에
두었습니다.)

독소전 첫해에 소련을 제압하는데 실패한 다음에는 독일이 장기전을 각오하고
그를 위해서 유전 확보를 중요한 과제로 삼아서 1942년의 하계공세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란다우님께서 말씀하신 유전을 장악하기 위한
독일군의 움직임은 주로 1942년의 하계 공세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그전에 밀리터리 보드에 fractal 님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관한 연재에 자세하게 나와 있죠)
물론 1941년 가을 키에프 공방과 같이 모스크바 방면에서 벗어나서
우크라이나를 장악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것이 석유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는 히틀러가 중앙의
돌출부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포위해서 큰 규모의 전술적 승리를 거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런 '우'를 범했다라는 것이었는데 (아시다피시
그의 참모들은 반대했음), 그 배경에 석유가 얼마나 개입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생존권' 이야기를 다시 하면, 사실 어떤 의미에선 석유도 '생존권'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제가 가졌던 의문은,
과연 그 당시에 석유가 '생존권'을 대표할만한 것이었냐라는 것이고,
최소한 히틀러가 '나의 투쟁'을 쓴 1920년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때부터 소련 타도를 꿈꾸어왔다고
여겨지고, 석유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독소전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히틀러가 인종이나 이념을 내세웠다 하더라도 전쟁의 배경에는 경제적
동인이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어렴픗한 제 기억에는 그러한 경제적 배경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근래의 연구 결과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자료를 마침 갖고 있는 것도 없고 해서 거기에
대해서 더 언급할 능력이 안되네요.

하여간, 저 나름대로 써 보았는데, 제가 알고 있는 바가 최근 연구
결과와는 차이가 있는 내용일 수도 있고, 우크라이나의 유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이 정도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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