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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2003년 3월 18일 화요일 오후 04시 07분 10초
제 목(Title): Re: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 어느정도로 유전지대와 석유 확보를
중요시 했는가 하는 점은 아래 사실로 부터 알 수 있습니다.

독일-소련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히틀러를 포함해서 독일군의 고위
장성들이 작전회의를 여러번 가졌었는데, 당시 히틀러는 개전 초기에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보다도 오히려 우크라이나와 바쿠 유전지대를
먼저 점령할 것을 주장했었습니다. 소련을 공격한 히틀러의 첫째
목표가 석유였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독일군
지휘관들은 전쟁에 있어서 수도를 점령하는 것이 중요함을 들어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먼저 공격할 것을 주장했고, 수도를 점령
해서 소련 전체를 장악하면 유전도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고 히틀러를
설득해서 결과적으론 독-소전의 초기에는 독일의 공격이 주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방면에 집중되었던 것입니다.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하고 전쟁이 주로 우크라이나 지방에 집중된
이후에도, 전략적으로는 독일이 재빨리 드네프르 강 서쪽으로 
후퇴해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상황이었을 때, 히틀러가 드네프르강
동쪽의 석유 유전 지대를 포기하는 것이 아까와서 전략적인 후퇴를
허가하지 않고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더 큰 피해를 입은 적도
있습니다. 당시 히틀러는 드네프르 강 동쪽의 유전지대 만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켜내라는 명령을 자주 하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2차대전때 독일군의 움직임을 보면, 독일의 제 1 목표는
소련남부의 유전지대를 장악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고
대부분의 역사가들도 여기에 동의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탈린과 공산주의에 대한 히틀러의 반감이나 인종말살 정책은 두세번째
쯤 될 것입니다. 

당시 석유의 의존도나 석탄액화공업에 대해서 답하면 이렇습니다.
2차대전 당시에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현재보다 낮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석유보다 석탄에 주로 의존했다는 것은 산업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야기이고 (지금은 가정용 난방이나 산업동력이 거의 모두
석유지만 당시엔 석탄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석유에 대한 의존이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전쟁을 수행하는데 보병과 총만 있으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고,
전투기를 띄우고 탱크를 굴리며 수송용 차량을 움직이는데는 100% 석유가
필요했습니다. 석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공장을 돌릴 수는 있지만,
전투기를 날리고 탱크를 굴릴 수는 없습니다. (군함은 석탄으로도 운항시킬
수 있긴 하지만...) 따라서 이미 프랑스를 침공해서 영불해협에서 영국과
대치하고 있고 그리스와 북 아프리카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히틀러에게는 소련의 석유가 풍부한 유전지대가 필수적 이었던 것입니다.

석탄액화공업은 원인이라기 보다는 결과라고 봐야합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은 석유의 부족 때문에 필사적으로 석탄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연구에 매달렸고, 어느정도 성과도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중에 석유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고 2차대전 개전 초기에 석탄액화공업의 능력이나 루마니아 헝가리의
유전지대는 독일군의 전쟁수행을 감당하기에 크게 모자랐습니다.

독일이 유전지대를 점점 잃어버리는 2차대전 말기로 가게 되면 
조종사도 있고 비행기나 탱크도 있는데 석유가 없어서 전투기가 못뜨고
탱크가 못움직이는 사태가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독일의 소련 침공이 오직 석유 때문에만 일어난 사건은
아닙니다만 (저도 석유때문에만 일어났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소련의 석유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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