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U ] in KIDS 글 쓴 이(By): MinKyu (김 민 규) 날 짜 (Date): 2003년 3월 18일 화요일 오후 12시 41분 33초 제 목(Title): Re: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전반적으로는 별 이의가 없지만, 몇가지 사소한 것으로 딴지를 조금 걸겠습니다.. 그렇다고 절 부시 지지자로 생각치는 말아주세요. 3.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첫째 목적이 석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사소한 걸로는 당시 소련의 주요 유전은 우크라이나가 아니고 카프카즈(코사서스) 지방인데 (지금의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가 유전의 중심지임), 독일로부터 거리가 워낙 멀어서 독소전 첫해에는 독일의 목표지도 아니었습니다. 전쟁 첫해에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가 독일의 주요 목표였죠. 그리고 독일은 소련 외에도 루마니아와 헝가리의 유전을 확보하고 있었고, 당시는 지금만큼 석유 의존도가 높지 않았을 뿐더러, 독일은 석탄액화공업을 육성했기 때문에, 소련의 석유가 반드시 필요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탐을 냈던 것은 사실이고,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한 다음에는 유전지대를 주된 목표로 바꾸지요. 그랬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패배하면서 히틀러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히틀러에게는 독일의 '생존권'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고 실제로도 중요한 과제였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태인이나 슬라브인 같은 '열등한' 족속을 '멸종(?)'시키고 그 땅을 독일의 생존권을 삼겠다고 했던 것이고, 그런 이유로 서유럽에 비해서 동유럽에서의 독일 점령 정책이 그렇게 무자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탈린의 농장 집단화에 반대했던 우크라이나인들은 처음에 독일군을 환영하기도 했다지만, 나중에는 반독 전선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념적인 이유에서도 나찌즘과 볼셰비즘은 서로를 타도 대상으로 하는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의 눈에는 이념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소련은 타도의 대상이어야 했고, 석유 확보 같은 것은 그러한 소련 타도의 수단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6. 2차대전 때 오스트리아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38년인가에 벌써 독일에 합병되었지요. 그때 독일이 빌붙은 나라라면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같은 나라가 있습니다. 8.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토인비나 처칠도 잠시 나찌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사족을 하나 붙인다면, 히틀러와 부시, 혹은 당시 독일과 지금 미국의 공통점 중 하나는, '복수심'에 호소해서 전쟁을 수행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야 9-11 테러에 대한 복수심이고, 당시 독일은 1차대전 패배 후의 가혹한 전후처리때문에 억울함 내지는 복수심이 속으로 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히틀러 자신이야 일관된 침략정책을 추진했어도 최소한 초기에는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억울하게 잃은 것을 되찾는 성격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라인란트 진주 (1차대전 후 라인강 서안 및 동쪽 50km까지를 일방적인 비무장지대로 강제당했는데, 히틀러가 일방적으로 군대를 진주시켜 주권회복(?)을 시도했음. 이것이 단순한 주권회복이 아닌 이유는, 독일이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보호장치를 상실했기 때문), 오스트리아 합병(베르사유 조약에서 금지시켰지만, 이들은 같은 민족이라 합병을 원하는 이가 많았고 실은 히틀러도 오스트리아 태생임) 같은 것이 그렇고, 체코나 폴란드 침략 조차도 수데텐란트의 독일인이나 단찌히 회랑과 같은 좋은 '구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히틀러는 독일을 견제하는 모든 장치를 하나하나 다 제거해 나갔고, 급기야는 프랑스를 굴복시키고 소련까지 사경에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자기 억울한 것만 생각하고 자기멋대로 하면 결국 나찌 독일과 같이 될 우려가 있는 것인데, 얻어맞아 본 적이 별로 없는 미국은 그걸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라크에 대한 전쟁 (그냥 '부시의 전쟁'이라고 할까요?)이 일종의 예방전쟁이라고 하면서 지지하는 사람들은 2차대전 직전의 영국,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의 실패를 들어서 옹호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유화책이냐 강경책이냐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고,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면 모를까 지금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같습니다. 오히려 미국이 유엔으로 대표되는 2차대전 전후 질서를 일방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나찌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대표되는 1차대전 전후 질서를 일방적으로 파괴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