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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ellen 
날 짜 (Date): 1995년04월27일(목) 14시51분07초 KST
제 목(Title): [퍼온 글] 15. 천재는 악필인가?

[잡담] 천재는 과연 악필인가?                 06/19 23:20   91 line

   글씨란 것은 그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고 한다. 또는 성격을  보여준
다고도 한다. 헌데 이런 말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성
격과 어떤 인격을  가진 인간이라 해야하는지. 내가 보아도 나의  글씨는 
도대체 아름다운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또박  또박 단정한 것도 아니
고, 갈겨쓰더라도  힘있고 씩씩한  달필도 아니다. 개성있다고  해야할른
지, 지나치게 융통성있다고 (?) 해야할른지, 아무튼  어째 불안하고 위태
위태하면서 정리도  안되어있고 찌그러진 상자곽 모양의  삐죽삐죽거리는 
테초의 혼돈과도 같은 나의 글씨는 아무리해도 보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
을 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도 방탕하고  드러운 
성격의 성격의  소유자인가? 읽는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다행히도  워드 
프로세서라는 문명의  이기로 말미암아 (신이여! 워드프로세서에  축복을 
내리소서!) 내 글씨를 가지고 누군가 뭐라고 그럴  일이란 많이 줄어들기
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손으로 뭔가를 써야만 하는 일들은  생기기 마
련이다. 리포트나 각종 자료는 물론이고 친구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 심
지어 연애 편지에  이르기까지 (!) 글로 써야하는 것이라면 몽땅  워드프
로세서로 만든다. 온갖  폰트와 특수효과로 아름답게 치장된 (이렇게  하
는 것이 좀 유치해보인다는  건 잘 알지만) 나의 문서를 보고  어떤 사람
은 '야! 너  글씨 잘쓴다!'하고 감탄인지 조롱인지 모를 소리도  하곤 한
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의 글씨를 본다면  '야! 깬다, 확 깨!'라고  하
게되지 않을까?
   헌데 나의 직업상  가장 많이 써야만  하는 의무 기록은 여건상  그저 
손으로 쓸 도리밖에 없다. 동료들 중에는  그것들마저 콤퓨터로 처리해보
고자 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해서는  편
리한 점보다 불편한 점이 더 많으니 이를 위한  의무 기록 전용 무른모가 
나오기 전에는 차라리 손을  쓰는 편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불
행 중 다행인  것이 정확성과 다른 사람에게의 의미 전달이  그 무엇보다
도 중요한 의무기록  작성에 있어 나의 글씨는 미관성 무척  나쁘기는 하
되 무슨 자인지 못알아보는 일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보통 의사의 글씨
라면 일단 거의 생각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는  최악의 글씨라고들 생각하
는 묘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면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깨끗하고 정돈된  글씨로 또박또박 적어 놓은  글씨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웬지 손을 씻고 나서  봐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대다수는 원래 글씨를 잘  쓰는 사
람들도 시간에 쫑기고 같은 것을 수십번 또 쓰고  또 쓰고 하다보면 글씨
는 자연 '개발새발'이 되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악필은  후천적인 것은 아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
터 알아본다고 하질  않는가? (이런데 쓰는 속담 맞나?) 나는  글씨란 것
을 처음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악필로 명성을  드높혔다. 처음 쓰기 시작
할 때야 누가  잘쓰랴만 그래도 또박 또박 정성들여 쓰기만  한다면 결국
은 엔간하게는 될터인데,  나에게는 애당초 그런 성의라는 것이  없었다. 
한획을 그어도 끝까지  진득하게 눌러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이  나의 성
격에 맞지 않았던  것일까? 삐뚤빼뚤에다가 울퉁불퉁, 삐죽빼죽,  컸다가 
작았다가, 이리 누었다가 저리 누었다가... 자유분방함  그 자체였다. 나
의 그런 글씨가  정말 끝없는 자유를 갈망하는 염원(?) 때문인지  성격이 
드러워서인지는 나도  정말로 모르겠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나는  나의 
그 천재적인  악필로 인해 많은 고초와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는  사실이
다.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나의 글씨는 도대체 달라질 줄을  몰랐다. 
어느날, 어머니께서 담임 선생님을 방문하자 선생님은  "지동 어머님, 글
쎄, 얘 글씨 좀 보세요!"하고 나의 글씨를  보여주었다 한다. "어쩌면 좋
죠?" 담임 선생님은 나의 글씨를 보고  무척이나 충격을 받으셨었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말썽이라곤 전혀 부릴 줄 모르고 얌전함이  지나치다 못
해 거의 앞뒤 꼭 막혀서 숨도 못쉴 정도로  내성적이었던 내가 이런 무지
막지한 글씨를 쓰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헌데, 우
리 어머니의  반응 좀 보소. "뭐가요?  괜찮은데요?" 하하하... 우리  엄
마, 최~고예요! (실은, 우리 어머니는 당신  자신의 글씨조차 못알아보는 
가공할 필체를 지니고  있다!) 어머니는 나의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소위  모범생다운 패기없는 모습 속에는 실은 무한한  자유 
분방함, 유연성, 창조력이  숨어있고 그것이 글씨 속에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하셨나보다.
   나의 글씨를 보다 못한 선생님은 "너, 이제부터 매일  나한테 노트 검
사 받어!'"하셨고 나는  엄청 짜증이 났지만 별수 있나, 울며  겨자 먹기
로 매일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탄암과 핍박도 나의  천재성(?)을 
꺾을 순 없었는지  나의 글씨는 여전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과의  타
협인지 나름대로는 일정한  유형을 갖추면서 남들이 알아볼 만큼의  최소
한의 규칙성을 확보하며  혼돈의 세계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나의  글씨는 
아직은 창조적이고  반미학적이며 포스트모던(?)하다. (근데  포스트모던
이 뭐죠?  좀 알켜주세요!) 천재는 악필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하지만 
악필이라고해서 천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나를 보
면!) 왜 이런 말이 생겼는지,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알도리 없지만 분명
한 것은 창조라고 하는것, 뭔가 새로운  것이란 정돈되고 깔끔한데에서보
다는 혼돈으로 들끓는  어수선함 속에서 도깨비처럼 튀어나오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하면  조금 해명이 될까? 물론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가
로써의 의사란 직업은  창조력을 요구하는 직업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기존의 지식들을 종합하고 널려있는 사실들로부터 결론을  귀납해내는 직
관력은 필요할지언정, 창조적  아이디어라는 것은 설사 샘솟듯이  새로운 
생각이 솟아나더라도 이를  일부러라도 억제해야할른지 모른다. 예를  들
면, 머리가 아프다면 머리를 잘라버리겠다는 생각은  무척 창조적(?)이긴 
하지만 좀... 곤란하지 않은가? 
   나의 가공할 글씨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나는 아직까지도  잘 모른
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은 개성이  엷어져가는 변화되는 필
체에 막연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손으로 글씨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 
내 글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기억이 안날 지경이  되어가는 것이 그 이
유가 아닐까?  아무튼 나는 나의 글씨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진  않는다. 
아무리 거지발싸개같은 글씨일지언정 이것때문에 무슨 결정적  손해본 것
도 없고,  (학생 시절에 학점은 약간  손해보지 않았을까?) 또  강호에는 
내 글씨보다 한 수  위의 절정 고수(?)들도 많이 있어 내  글씨 정도라면 
양반이라는 생각도 들기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엉망의  글씨를 
가지고도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나의 악필을 
숨겨진 가능성과 창조력으로  충만한  자유의지의 한 표현으로  인정하여
주신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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