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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ellen 
날 짜 (Date): 1995년04월27일(목) 14시39분50초 KST
제 목(Title): [퍼온 글] 13. 믿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수필]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11/14 01:26   128 line

   사람들은 어린 시절, 사춘기, 이런 단어들에서 뭔가 아름답고 풋풋
하고 따뜻한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반드시 그
렇지만도 않다. 그 시절에도 아픔이 있고 치열한 삶이 있고 좌절이 있
고 환멸이 있다. 지금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고소 (苦笑)를 머금게 하
는, 참으로 웃기지만 웃을 수만도 없는 일들도 많이 있는 것이다.
   세상엔 남의 말을 고지 곧대로 믿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일이 흔히 
있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고지식하다면서 비웃지만 그건 얼마나 불
행한 일인가. 잘못된 것은 세상이지 그들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조금
만 생각해 보면 우리들  자신도 남의 말 믿고 따라 했었지만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바보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많이 있다.
   나와 비슷한 또래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근검, 절약이
란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폐품 수집이니, 폐품 활용이니 
해서 달마다 신문 뭉치, 빈 병들을 모아다 내야 했고 노트의 앞 뒤 표
지에다가도 필기를 했으며 몽당  연필을 써야 했다. 절약하는 것은 분
명 미덕이지만 그 미덕을 어이없는 희극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도대체 
누구인지. 몽당 연필을 의무적으로  하나 이상씩 쓰고 있어야 했고 그
것을 수시로 검사 받아야만  했던 그 때에는 멀쩡한 연필을 잘라 몽당 
연필을 만드는 일이 그다지 드물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편에선 멀쩡한 
지우개로 도장을  멋들어지게 팔 줄 아는  손재주 있는 아이가 인기였
고, '지우개 따먹기'로 (이거 해보셨는지? 손으로 튀겨서 상대방 지우
개를 책상에서 떨어뜨리면 따먹는  거. 생각보단 꽤 재미 있다.) 너무 
지우개를 많이  따서 '지우개 전용 필통'을  마련해서 하나 가득 넣고 
다니는 놈도 있었고, 한 편에선 죄 없는 볼펜을 박살내는 '볼펜 찍기' 
게임이 유행이었다. ('볼펜 찍기'는 조금은 위험한 게임이다. 손에 잡
고 있던 볼펜이 세로로  쪼개지면서 손을 베는 일이 가끔 있었다.) 격
세지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일른지 모르겠는데 나는 당시에 일본에 다녀 
오셨던 나의 작은 아버지가 사주신 '잠자리표' 일제 연필을 감히 쓰지 
못해서 묵히고 있었다. 밤낮으로 국산품 애용을 부르짖으며 검사를 해 
대는데 어찌 외제를 쓰겠는가. 지금도 국민학교에서 그러는지 정말 궁
금하다. (근데 그 아까운 연필들 다 어디 갔지?)
   참으로 웃지 못할  이야기는 혼분식에 얽힌 얘기들이다. 우리는 매 
점심 때마다 도시락을 '검열' 받아야만 했다. 보리나 기타 잡곡이 30%
가 안되면 면박을 받았기에 어머니를 졸라서 꼭 보리를 섞어야만 했고 
어머니는 일부러 보리를 사다가 밥을 지으셨다. 검열은 상당히 철저한 
것이어서 때로 심증이 갈  때에는 밥을 파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속에
는 쌀밥이고 겉에만 보리를 뿌려가지고 오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으
므로. 우리는 혼식, 분식이 몸에 얼마나 좋은지 지겹도록 들어야 했고 
하얀 쌀밥을 먹는 것은 죄악에 다름 아니라고 배웠다. 
   한번은 어머니가  김밥을 싸주셨다. 누나가  소풍 가느라고 김밥을 
쌌는데 도저히 따로 내 도시락을 장만할 여유가 없었던 어머니는 그냥 
내 도시락에도 김밥을 넣어 준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소풍 때가 아
니면 김밥은 허용되지 않는  메뉴였다. 왜냐하면 '잡곡을 30% 이상 섞
은 김밥'이란 '순간접착제'를 쓰지 않는 한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를  생각해 주시느라고 그 바쁜 와중에 보리
를 따로 쪄서 김밥  겉에다가 몇 알씩 '붙혀' 주셨지만 담임 선생님의 
날카로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런 후 얼마간 세월이 지나자 '혼
분식이 몸에 좋다'는  말은 전혀 들을 수  없게 되었고 특히나 분식을 
하자는 얘기는 들을래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 부
터는 '우리 쌀로 만든  쌀막걸리', '쌀과자'가 나오고 있으니 이게 도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혼식이 몸에 과연 좋은 건지 어떤 건지 내가 의
사가 되어 있는 지금도 헷갈릴 지경이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상당
히 일관성 있게 홍보되고 있는  내용도 없지는 않은 듯 싶다. 그 시절
에 반공 포스터를 그린다고 '뿔난 시뻘건 악마'를 그리던 기억에 비추
면 요즘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양의 탈을 쓴 늑대' 포스터는 그다지 
낮설지 않은 친숙한 모습이다.)
   나는, 아니  우리는, 국민학교 시절,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 
때 그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 나라를 이토
록 잘 살게 만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탁월한 지도자로서의 그의 카
리스마는 너무도 막강한 것이어서 감히 그 이외의 다른 대통령이란 상
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10.26. 전의 
일이었던가 보다.) 하루는 내  짝이 나한테 난데 없이 "너, 시월 유신
이 뭔지 아니?" 하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린가. 시월 유신은 
이 나라의 영원 무궁한  번영을 위한 위대한 내디딤이 아니었던가. 내
가 뭐라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하자 그가 스스로 대답해버리는 것이었
다. "마, 뭐긴 뭐냐, '왕권 강화'지." 나는 벙 쪄가지고서는 고민해야
만 했다. '세상엔 내가 잘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은가 보다!' (그 친
구 지금 뭐하나 모르겠다. 기자가 됐다는 거 같던데.)
   세상에 속고만 살아온 것 같은 피해 의식이 따라 다닌다는 것은 무
척이나 괴로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내가 세상을 속여보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2학기가 되자 나에게  '새마을 부장'이란 허울 좋은 감투가 떨어졌
다. 반에서 반장, 부반장 빼고 나면 다른 무슨 무슨 부장이니 하는 직
책은 대개는  별 볼일 없는 법인데  이 새마을 부장이란 허수아비한테 
엄청난 잡무가 떨어졌다. '근검 절약하는 생활'을 점검하기 위하여 반
원 전체의 생활상을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매우 많은 항목들을 
달마다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폐품을 얼마나 모으고 뭘 어
떻게 절약하고 하는  것들인데 자세히는 생각이 안나지만 엄청 시시콜
콜한 것들을 기록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날더러 70명 반 
아이들을 하나 하나 쫑아다니면서 "너 요번 달 폐품 활용 상황이 어떻
게 되니?" 하고 다니란 말인가? 
   난 결심했다. 이건, 도대체,  말도 안돼. 난, 죽어도 안 해. 아니, 
못 해! 난 집으로 그  두툼한 그 장부를 가져 갔다. 그리곤 주위에 아
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당연히  아무도 없지.) 책상 위에 턱하니 장부
를 펼치곤 볼펜으로 일필휘지(?) 써 내려 갔다. 동그라미, 세모, 동그
라미, 가위,  동그라미, 세모, 세모...음... 가위가  너무 없나? 그럼 
가위, 가위, 가위... 그  수많은 칸들을 20분만에 거뜬하게 다 채워버
렸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장부를 제출했고 아무도 나의 공문
서 위조(?)를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리고 나의 사기 행각은 계속 이어
져서 매달마다  앉은 자리에서 70명 반원의  근검 절약 생활상이 나의 
손 끝에 놀아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소리를 듣고 
움찔하였다. 그러나 막상 담임  선생님께 가보니 전혀 다른 일로 부른 
거였다. 헌데 내가 속으로 휴-하고 안심하고 용무를 마친 후 돌아서려
는 참, 마치 얄미운 콜롬보 형사처럼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아 참, 근데 잠깐만." 
   순간 엄청난 오멘(?)이 느껴졌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새마을 장부 요즘 어떻게  하고 있니? 이거 쓰려면 무척 힘들겠더
라?" 
   "네... 그게... 저..." 
   "반 아이들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물어서 쓰고 있니? 무척 시간 걸
리겠던데?" 
   "네... 아뇨... 그러니깐..."
   불행히도 나는 '공문서 위조'에는 초범이라 너무도 순진했다. 나는 
그 자리서 범행 일체를 순순히 자백하고 말았다. 선생님은 아연실색했
다. 한참을 멍하니 나를  바라보시던 선생님이 마침내 역시 멍한 목소
리로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래... 알았다... 가 봐라..."
   그 이후 나의  가공할 장부 조작은 고위층의(?) 묵인하에 계속되었
음은 물론이다. 그따위 장부를  쓰는 일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쓸데 없
는 일이었는가는 시키는 선생님 자신이 더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세상은 진지하고 정직하게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능멸하고, 
약삭빠르고 입에 발린 소리 잘하는 사람, 이런 말을 했다가 잠시 뒤엔 
저런 말을 하고도 시침 뚝 떼는 이들의 손을 들어준다. 비도덕적인 인
간에 의해 흔히 어겨지는 약속은 그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손해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에 흠집을 내는 것으로써 더 큰 아픔
을 준다. 그리하여  한 인간은 서서히 다른  인간의 말을 절대로 믿지 
않게 많드는 껍질을 쓰게 되고 세월이 가면 갈 수록 그 껍질은 두꺼워
져만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껍질이 무척이나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다는 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좌우명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인
간을 믿지 않고서는 결국 살아갈 수가 없으므로.

   '설사 다시 빙하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인류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
을 것이다. 원시 시대의 인류도 빙하시대를 이겨내지 않았는가?'
                                - 일리인, '인간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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