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4월27일(목) 01시38분43초 KST
제 목(Title): [R] 산부인과 인턴 



음... 제목을 잘못 달았군... ARAMIS님 글에 대한 reply인데...



산부인과 실습에는 '산박'이란 게 있다. 산과 병동에서 하룻밤 새면서 인턴과 함께 

밤 당직을 하는...

staire는 그때 미분방정식 기말시험을 준비하느라 (의대생도 그런 거 듣냐고 묻지

말아요... 청강이었으니까...) 산박 날을 못 잡아 일요일에 혼자 산박을 했다.

일요일이니까 널널하겠지... 라는 근거 없는 생각으로 미리 군기(?)가 빠질 대로 

빠져서 저녁 든든하게 먹고 들어간 시간은 밤 9시...

그러나 애기들이 바깥 세상 달력을 알 리가 없으니 일요일이라고 뭐 하나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더 심했다)  :(



9시반 넘어서 응급실에서 호출... 달려 내려가보니 웬 할머니께서 하반신이 온통 

피에 젖어 스트레처에 누워계시다.

'앗... 저런 할머니가 출산을???'

"야!!! 어디 보는 거야? 이쪽이야 이쪽..."

으으... 그럼 그렇지... 그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실려온 DOA...

(DOA = Death on Arrival... 병원에 온 즉시 또는 그전에 죽은...)

하여간 산모를 분만장으로 싣고 갈 틈도 없이 응급실 한 켠에 적당히 커튼 치고 

응급 제왕 절개... 이거 마치고 나니까 이미 12시가 휙 넘어갔다.



병동에 올라와보니 그새 또 환자 하나가 와 있다. 임신 3개월인데 유산이라는거다...

큐렛(칼날이 선 숟가락같은 기구)으로 긁어내는 도중에 (물론 staire가 한 게 아니라

당직 인턴이...) 그 환자는 계속 중얼거린다.

"아파....으윽... 너무 아파... 마취가 안 됐나봐요..."

어떡해요? 라는 표정으로 인턴의 눈치를 살폈으나 인턴은 무표정...

3개월짜리 아기는 교과서대로라면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야 하지만 

긁어낸 조각을 아무리 맞춰도 사람 모양이 되지를 않는다.

"임신 초기에 이미 죽어서 성장이 멈춘 거야..."

인턴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낭배기 정도가 틀림없는 그냥 '주머니'...



새벽 3시... 두 건이나 치렀으니 이젠 됐겠지 하는데 또 삐삐가 울린다.

다급하게 뛰어나가보니... 6인실 입원 환자 한 분이 화장실에서 산도가 열려버린 

거다. IIOC(Incompetent Internal Os Cervix)... 자궁경부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배변이나 배뇨등 배에 힘을 줄 때 아기가 밀려나오는...



"차트! 차트 어디 있어?"

staire가 집어든 차트에는... 임신 34주의 쌍동이. 

"다행이네요. 34주면 인큐베이터에 넣어서 살릴 수 있지요?"

"일반적인 조산은 그런데... 쌍동이는 성장이 느려서 아마 안될 거야."

안될 거야...란 그럼 쌍동이를 죽인다는 의미?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머리만 내밀고 있는 아기의 얼굴은 새빨갛다. 자궁내압이 

대기압에 비해 높다보니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온 머리 부분에만 피가 몰려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걸린 거다... 



"IIOC인 경우에는 대개 자궁내압이 이렇게 높지 않은데..."

인턴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혀 떨어진다. 잠이 덜 깬 당직 레지던트도 눈을 비비며

등장. 이제 잠은 다 잤다. 최악의 산박이야... :(

"죽었어..."

레지던트(주치의)의 무감동한 한 마디... 아기의 맥이 잡히지 않는 거다.

어찌어찌해서 꺼낸 아기는 새빨간 상반신과 창백한 하반신의 두 부분이 또렷이 

구별되는 그로테스크한 형상... 열 달을 채워 태어났으면 귀여웠을까? 

몸길이 15cm, 성기게 난 머리칼이 너무 가늘어 대머리처럼 보이는 머리에 감은 눈,

staire의 엄지 손톱만한 손에는 손가락 다섯개와 손톱까지 제대로 달려 있는데...



"탯줄 자르지 마... 동생이 나오고 있어..."

Y자 모양으로 갈라진 두 갈래의 탯줄... 태반을 공유하고 있는 형제였다. 탯줄을 

어깨 주위에 감고 있는 '동생'이 어렵지 않게 빛을 보는 순간,

"살아 있어! 소아과 nersery에 연락해!"

탯줄을 자르고 거즈 위에 올라온 아기는 형보다 훨씬 작다. 몸길이는 10cm 남짓,

형의 하반신과 비슷한 창백한 색깔... Apgar score가 빵점에 가깝다.

(Apgar score = 신생아의 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10점 만점의 점수. 색깔이나 자세

등으로부터 채점된다. 요즘 애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점수의 노예(?)가 되는 

셈이다.)



눈을 감았음에도 거무스레하게 얼비쳐 보이는 눈동자... 사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유생(?)이라는 인상을 주는 아기지만 어쨌든 살아 있다. 산모는 전신마취로 자고 

있는 사이 소아과 신생아팀 사람들에게 넘겨진다...



일이 끝나자 월요일 아침 7시... 아침 먹고 수업 들어갈 때가 다 된거다. 

수업이 끝나고 9시에 병동에 올라가 동생마저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틈도 없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ARAMIS님 글을 읽고 악몽같던 산박날 밤의 인턴 형이 떠올라 두서 없이 

끄적거렸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