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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aizoa (오월의첫날)
날 짜 (Date): 2002년 9월 12일 목요일 오전 10시 34분 20초
제 목(Title): [퍼옴] 떠나는 이공계 대학원생


완곡어법을 사용하였던 것 같음.
서울대 대학신문 2002년 9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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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공계 대학원생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 줘야  
 

 
 
  언제부턴가 서울대를 졸업하고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이공계 대학원은 대부분 좋은 연구 
요건 및 장학금을 보장하면서 중국, 인도, 우리나라 등 동양계의 학생들로 인력 
수요를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고자 하는 많은 학생들이 
부푼 꿈을 안고 한국을 떠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유학파를 선호하는 국내 기업과 돈 많은 미국이 
있지만 국내 대학원의 교육 수준 및 여건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각종 연구 
활동에 기여하고 있는 국내 대학원생들이 지도 교수와의 도제 관계 속에서 
형편없는 처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 대학원의 경우는 대부분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에 출퇴근을 하며 
자발적인 연구 활동 및 교수가 '시키는' 각종 일들을 하게 된다. 이 일들 
중에는 기업으로부터 위탁받고 연구 및 개발을 수행하는 프로젝트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 업무들이 일방적일 뿐만 아니라 정당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정해져 있는 
인건비에 따라 급여를 지급받게 되는데 인건비가 낮게 책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것마저도 착복당하는 경우가 있다. 결과적으로 대학원생들은 
배우고 있는 학생이라는 명목으로 월 몇 십만원대의 싼 급여를 받고 많은 
노동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결국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대학원생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과외나 시간 
강사를 하게 되고 이는 연구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나마 
99년부터 BK21이 시행되었으나 그것마저도 서울대 등에 집중되어 있어 국내 
대학원의 질 향상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교수와 대학원생의 권력 관계에서는 연령 및 신분상의 권력 관계에 의해 
교수의 위치가 절대적이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교수를 만나는 것 
외에 민주적인 인간 관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노자의 최근 저서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에 의하면 오슬로대학에서는 누가 학생이고 누가 
교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는데 우리 사회의 봉건성과 너무나 대조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사회로 진출했을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오죽하면 
이공계 엔지니어들의 처우 문제가 대학원에서의 노예 근성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 다 나올까?

  한국 유학생들은 미국의 부족한 이공계 인력을 메움으로써 미국 자본주의를 
유지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국내 대학원에 가기 싫어서 유학간다는 것은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은 대학원생들이 연구에 주력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처우를 개선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실제 연구 개발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원생에 대해 경제생활자로서 인정하고 건강 보험 및 국민연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 교수에 
따라 천차만별인 교육 환경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처우들이 은폐될 수 
없도록 대학원생 스스로 패배적인 분위기를 일소하고 행복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최영준 전기공학 박사과정 
기사입력날짜 : 200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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