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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gureumi (구르미)
날 짜 (Date): 2002년 6월  9일 일요일 오전 07시 40분 23초
제 목(Title): Re: 터키? 나는 학살정권을지지하지 않는다


음.. 위에 이야기는 사실이 아녔군여..
다음은 "Thirteen days"라는 영화에 대한 글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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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악의 위기상황이라고도 전해지는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소재로, 미소의 냉전 분위기가 극에 달했던 당시의 워싱턴 정가를 그대로 
재현한 로저 도날드슨 감독의 정치 드라마. 당시 대통령 특별보좌관이었던 
케네스 오도넬(케빈 코스트너)의 시각으로 캐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이었던
로버트 케네디,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라마 등 당시 주요 정치인, 군인, 
외교관들의 숨가쁜 상황들이 펼쳐진다. 

   어네스트 R. 메이(Ernest R. May)와 필립 D. 젤리코(Philip D. Zelikow)
가 공동 집필한 '케네디 테입: 쿠사 사태 동안의 백악관 내부(The Kennedy 
Tapes - Inside The White House During The Cuban Missile Crisis)를 데이빗 
셀프가 각색하고 연출은 로저 도날드슨이 맡았다. 뉴 라인 시네마가 8천만 
달러를 들여서 만든 대작으로 원래 미국 개봉은 2000년 12월 성탄 연휴로 
예정되었으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정식 개봉은 1월로 미뤄졌다. 평론가들의 
반응이 양호한 편이라 아카데미 후보 자격을 얻기 위해 제한상영되었으나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외면을 받으면서 흥행에도 실패했다. 
한편, 쿠바에서 특별 상영전을 갖기도 했다. 

  영화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적 실화를 재현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일촉즉발의 당시 상황을 짜임새있게 재현하고 있는 수준있는 
드라마다. 영화의 마지막은 수석 보좌관 케빈 코스트너의 시각을 통해, 
케네디 형제의 엘리트적 포부와 용기, 그리고 존경심을 추억어린 시선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필름 2.0은 영화의 배경이 된 미사일 사태에 대한 쿠바와 
소련의 의도와 원인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쿠바 
사태에 관한 영화라기 보다는, 영화의 원작 제목처럼 당시의 숨가쁜 상황을 
오직 '백악관 내부'에 촛점을 맞추고 집중적으로 그려진 영화라 할 수 있으므로 
그리 타당한 지적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이니만큼 그 진실성을 
따져보아야할 것이다. 

   '쿠바 사태'(쿠바 미사일 위기: Cuban missile crisis)는 19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11일간 소련의 핵탄도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여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를 말한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주도 아래 탄생한 쿠바 사회주의정권은 
다음해 말까지 2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인의 투자자산을 몰수하는 정책을 폈고, 
이에 미국 정부는 경제제재로 보복 조취를 취해 양국 국교가 단절되기에 
이른다. 불과 70마일 바깥에 사회주의 국가가 있다는 점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은 1961년 4월 17일 쿠바 혁명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CIA의 지휘 아래 
망명 쿠바인들로 구성된 부대를 피그만에 침투시킨다. 하지만 이 공작은 병력 
1천여명이 생포되며 실패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최종 승인자인 존 F. 케네디와 
미국 정부에 큰 타격을 입혔을 뿐 아니라 카리브해의 긴장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빚었다. 더구나 쿠바는 1962년 9월 '소련-쿠바무기원조협정'을 
체결하여 소련의 미사일을 도입하였다. 

   미국은 그 해 10월 14일 중거리탄도미사일의 발사대가 쿠바에 건설 중임을 
공중촬영으로 확인하였다. 22일 미국 대통령 J.F. 케네디는 텔레비전 전국방영을 
통하여 처음으로 "소련은 서반구에 대하여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공포하고, 쿠바에 대하여 해상봉쇄조치를 취하였다. 
케네디는 소련의 N.S.흐루시초프 서기장에 국제연합의 감시하에 공격용 무기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전세계의 긴박감 속에서 소련은 26일 미국이 쿠바
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하고, 27일 쿠바의 소련 미사일 기지와 터키의 미국 미사일 기지의 
상호철수를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27일의 제안을 무시하고, 
26일의 제안을 수락할 것을 결정하였다. 28일 흐루시초프는 미사일의 철거를 
명령하고 쿠바로 향하던 16척의 소련선단(船團)의 방향을 소련으로 돌림으로써 
11월 2일 위기는 사라졌다. 소련이 쿠바로부터의 폭격기 철거에 동의한 20일 
미국은 해상봉쇄를 풀었으며, 12월 7일 소련은 공격용 무기를 쿠바로부터 
철거하였음을 미국에 통고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63년 미-소 간에 
핫라인(hot line: 긴급통신연락선)이 개설되었고, 핵전쟁 회피라는 공통의 
과제하에서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모스크바조약)'이 체결되었다. 

   한편, 1989년과 1992년 공개된 미국 정부의 문서에 따르면,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와 후루시초프 사이에 오간 서신에서 소련쪽은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대신 미국이 유엔을 통해 공식적으로 쿠바 침공의사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케네디의 안보팀은 격론을 벌이며 대쿠바 침공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미국은 1962년 '몽구스 작전'이라는 
이름의 쿠바 전복계획을 다시 추진하고 있었는데, 400명의 미국인과 
2천여명의 쿠바 망명자로 구성된 부대를 조직해, 공교롭게도 그해 10월 쿠바에 
진입할 계획을 잠정적으로 세우고 있었다. 노엄 촘스키에 따르면 이들은 
긴장이 팽팽했던 62년 10월부터 11월까지 러시아 기술자가 묵고 있는 
호텔에 총알을 난사하는 등 테러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쿠바를 전복할 계획을 갖지 않았으며, 터키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해 소련을 
달래려 했다는 이 영화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가장 크게 어긋난다고 씨네21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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