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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4월14일(금) 15시15분33초 KST
제 목(Title): [오케스트라] 예술의 전당에서 그어 본... 



예술의 전당? 

그거 아무나 함부로 못 서는 무대 아닌가?

...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늘부터 생각을 바꿔주세요. 

staire도 감히 거기서 소음을 내며 연주를 했으니까요.

(돈만 내면 아무나 세워줍니다. 결혼식도 할 수 있대요...)



92년인가 의대 오케스트라 OB 팀인 'Doctors' Orchestra' (이름만은 거창하다)는 

창단 연주회를 예술의 전당에서 가졌다. 물론 여기에 staire가 빠졌을 리 없고...



그날은 마침 비가 왔다. 

허문도가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의 업적 중 하나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우리의

자랑 예술의 전당은 천장에서 빗물이 마구 새는 한심한 모습...

연주를 1시간쯤 남겨놓고 리허설이 끝났다. 백발이 성성한 고참 선배님들이야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의대 오케스트라 최고참 선배는 '경성제대' 

1기인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젊은 애들은 분장실에서 마이티를 치고 있었다.

수위가 와서 흘낏 보고는 'KBS 단원들은 밤낮 월남뽕 치던데...'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 버리시고...



고참도 신참도 아닌 중고참 staire는 무얼 하며 시간을 때우나 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아무도 없는 텅 빈 무대와 객석을 보는 순간...

'그래... 지금 아니면 내가 언제 또 여기서 독주회를 해보겠냐...'

해서 과감하게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빈 무대에 서서 아무도 없는 객석을 향해 크게 

허리를 굽혔다. 귓속을 울려오는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 (망상)



평소에 탐내면서도 감히 손대지 못하던 것들을 여기서 몽땅 풀어 볼 욕심에 우선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차분한 1악장이 시작되면서 staire는 자신의 소리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이야... 역시 좋은 홀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집에서 연습할때면 듣기 괴롭다는 표정을 짓던 동생들이 이걸 들었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 악기와 이 엉터리 연주자에게서 이런 소리가 날 수 있을까? 

튀는 듯한 2악장... 그리고 트릴과 멜로디의 절묘한 중음이 빛나는 3악장...

물론 제대로 하면 그렇다는 것일 뿐... 운지가 무너지고 음정 마구 틀리고 어려운

음표는 대충 뭉개고 지나가는 staire의 연주에 무슨 절묘하게 빛날 게 있을까마는 

유리처럼 울리는 소리에 스스로 취한 staire는 마지막 음을 호쾌하게 긋고선 

앵콜(?)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앵콜이니까 1악장만 들려드리겠습니다...

두툼하고 풍부한 소리...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홀이 만들어내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이미 반쯤 꿈꾸는 듯한 staire는 완전 5도 음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져 

맥놀이(beat...)생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브루흐를 마음껏 농락하고야 말았다.



음... 시간 관계로 앵콜은 하나만 더 받지요...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비탈리의

샤콘느입니다...

샤콘느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만들어진 곡임에 틀림없다. 흐릿한 배경이라고는 

전혀 없는 투명하고 정갈한 울림... 때로 잦아들고 때로 풀어지면서도 시계처럼

묵직한 박자를 새기는 바이올린... 그래... 이 순간만은 하이페츠가 부럽지 않다.

딱딱한 듯해서 하이페츠를 즐기진 않지만 이 샤콘느만은 그의 무표정하고 당당한 

연주를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언제던가... 악기 실력이 늘지 않고 벽에 부딪혔을 때 일기에 썼던 구절...

'악기를 아이작 펄만처람 할 수만 있다면 펄만처럼 두 다리를 절어도 좋다...'

흐흐... 무슨 소리... 이젠 만족이야... 멀쩡한 두 다리로 서서 이런 연주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샤콘느는 마지막 종착점을 향해 달려간다... 현란한 아르페지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물론 대충 짚어 반음 가까이 틀린 음정 탓이겠지만 반페이지를 

쉬지않고 몰아쳐 온 크레센도가 이제 폭발하고 만다... 

폭풍같은 마지막 4분음표들... 예술의 전당 대극장을 자신의 소리로 가득 채우는 

기쁨...



땀에 푹 젖은 staire가 환호하는 허깨비들을 향해 몇 번이나 인사하는 사이...

에구... 후배들이 객석에 와서 듣고 있었던 거다...

'히히... 소리는 별 수 없지만 폼 하나는 멋있네요...'

'근데 인사는 뭐하러 해요? 우히히...'

짜식들... 니들은 모른다... :(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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