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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5년04월13일(목) 23시17분59초 KST
제 목(Title): [여행기 IV] 여행중에 만난 외국인들.



* 이 글을 친구 랄프 린트너에게...

여행중에 참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역시 뒤스부르크에서 나의 실험 파트너였던 랄프 린트너. 나이 25세인
이 건장한 독일 청년은 란다우가 뒤스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실험 파트너로서
보다는 이야기 친구로서 더 진가를 발휘했었다.

란다우야 이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국이 자랑하는 이빨이고 (내가 언제 
그렇게 격상 되었지?) 린트너 이 친구도 나만큼이나 공부하기보다는 이빨까기를
좋아하는 친구라 우리는 처음부터 환상적으로 죽이 잘 맞았던 것이다. 영어도
딱 나정도로 못했기 때문에 이야기 하기가 아주 좋았다. ( 영어는 너무 못하는 
사람을 만나도 골치 아프지만 너무 잘 하는 사람을 만나도 문제다.)

연구실에서 어찌나 떠들어 댔는지 그 연구실의 방장 에 해당하는 울리히 숄츠
라는 사람이 걸핏하면 "Hey, boys! shut up, please." 라고 우리에게 경고를 
주어야 했을 정도였다.:) 

린트너하고는 정말 별 이야기를 다 했다. 교수가 학생 조지는 것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똑 같다는 성토에서 부터 시작해서 요새 물리학 하는 사람중에 선물거래나
그런 걸 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많다던데 우리 같이 공부 때려 치우고 그길로
나아가서 베어링스 은행을 파산시킨 닉 리슨 처럼 이름을 날려 보자는 헛소리까지.
(마침 베어링스 은행 파산직후 였읍니다.)

그래도 제일 재미있었던 주제는 린트너에게서 독일 그 자체에 대해서 들을 때 였다.
조금이나마 나에게 독일이란 나라에 대해 알려준 사람은 바로 린트너였을 것이다.
처음에 린트너에게 너는 기민당(CDU) 에 투표하냐니까 아니랜다. 그럼 사민당(SPD)
이냐니까 그것도 아니랜다. 그럼 어딘데 ?! 린트너 왈....

" Green Party! (녹색당) " 

으윽...그렇지... 독일 젊은 층에서는 녹색당의 인기가 대단하다지. 그걸 까먹었네.

린트너는 그외에도 나에게 독일에서 버스표 사는 법. 철도 이용법. 슈퍼에서 
물건 찾는 법등등....온갖 생활의 지혜(?)를 빌려 주었다. 아마 린트너와 함께
한 기간이 없었다면 나의 단독여행은 몇배나 더 힘든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

그 다음 기억에 남는 인물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광장에서 만난 미국인 교수 
루이스 씨. 그 때 나는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그곳에서
기차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독일 애들을
모아 놓고 영어로 막 떠들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지나니까 독일 애들은 가버리고
혼자 남길래 심심하던 란다우가 가서 우리 야그나 좀 하자고 말을 붙였다.:)

정치학을 했다는 그 할아버지는 캘리포니아 어느 작은 대학의 은퇴교수라는데
자신이 컬럼비아 대학출신이라는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는 재미난 인물
이었다. 은퇴 후에 그동안 모아둔 약간의 돈을 가지고 장장 8개월동안(!) 유럽을
둘러보기위해 막 독일에 도착한 참이었는데, 자동차 집을 사서 손수운전하며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유럽전역을 여행할 생각이랜다. 

히야~~~~~ 나도 나중에 은퇴하면 저 할아버지처럼 하고 싶다. 이번에 못본데도
다 가보고 말이지. :) 우리는 함께 유럽은 우리 같은 싸구려 여행자에게 너무
물가가 비싸다는 둥, 이탈리아는 도둑놈이 많아서 여행하기 고롭다는 둥 
핏대를 올리며 즐거워 했는데...... 갑자기 루이스 교수가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뒤를 좀 돌아 보라는 시늉을 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에고고.....

역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이랑 애기 엄마들이 한 십여명 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란다우와 루이스 씨를 묘하게 쳐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 사람들
눈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미국인과 왠 일본인(걔네들 보기에) 이 독일 한복판
에서 알아듣지 못할 말로 열을 내는 모습이 어지간히 신기했나 보다. 흠냐....
덕분에 란다우는 유럽을 구경하러 온 주제에 유럽인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별난 체험을 하게 되었다. ^_^

반면에 란다우를 가장 괴롭힌 인물은 로마의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어느 벨기에
청년. 이 친구가 나를 괴롭힌 이유는 영어 때문이었다. 척 보기에도 공부깨나
하게 생긴 그 사람은 영어를 상당히 잘했는데 ( 글쎄 여행 중에도 `셜록 홈즈의
모험'을 원서로 읽더라고. ) 문제는 발음이 영 개떡이라 도무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더란 것이었다. 

더군다나 내 이름을 묻길래 란다우 랬더니 자기는 다른 `란' 씨 (물론 한국인)을
안다면서 친척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는 같은 성씨가 매우 많으며 한국
에서는 아이덴티티가 성이 아니라 이름에 실린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란'
씨가 한 5~10% 는 된다는 이야기도 함께.

그랬더니 이 친구 왈, 그렇게 같은 성이 많으면 네가 스스로 성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니....이런 후레자식 같은 놈을 봤나. :( 그거야 너네 
유럽애들 같은 쌍놈들이나 하는 짓이지 어찌 한국 같은 동방예의지국에서 감히
조상이 주신 성을 바꿀 수 있느뇨? 같은 성은 한 조상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것이란다.

이 끈질긴 벨기에 친구는 거기서두 포기하지 않고 또 따졌다. 아니...그럼 너네
한국은 전 국민의 5~10% 가 같은 사람의 후손이니.....?

으악....란다우는 거기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내 짧은 영어로 한국문화에 대해
깜깜한 저 친구에게 무슨재주로 전주 이씨와 인천 이씨는 같은 "오얏 리" 자를
쓸 뿐 전혀 다른 가계라는 것을 설명한단 말이냐....흠냐.....지겨운 놈.:P

사실 유스호스텔에서 잘때면 세계 각국의 백수건달을 다 만나게 된다. 이번에는
파리의 호스텔에서 만난 미국 관광객. 혼자 조용히 밥 먹는 란다우를 괜히
불러서 자꾸 말을 걸었다. 나는 원래 영어를 지지리도 못하는데다가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 30분만 지나면 머리에 과부하로 스팀을 받기 때문에 가능하면
밥 먹을때만은 외국인과의 대화를 기피했었다.

근데 역시 혼자 밥을 먹는 게 심심했던지 이 콜로라도에서 왔다는 미국 촌놈이
자꾸 내게 말을 시키는 것이었다. " 마, 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한국속담도 모르니? 응! " (물론 속으로만.....)

안그래도 빵에 커피로만 때우는 서구식 아침식사에 질려버린 란다우는 밥먹으며
영어까지 신경 쓰려니 죽을 지경이었다. 그 친구 이야기가 자기는 걸 프렌드랑
함께 여행을 왔는데 그녀가 여태 엎어져 자고 있어서 할 수 없이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결혼할 사이냐고 물었더니만 그건 아니고 그냥 친구인데 안전문제상
같이 다닌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그녀가 어제밤에 어느 프랑스 놈팽이랑
눈이 맞아 가지고 밤을 꼴딱 새고 들어와서 지금 아침도 안 먹고 있다고
분개하는 것이었다. 나참....별놈 다 보겠네, 너가 데리고 살 여자도 아니라면서
왜 그리 열내냐? 너도 능력있으면 빠리쟌느 하나 꼬셔서 같이 바람 피워. 그럼 
되자나? :P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은 베를린에서 만난 어느 엔지니어 아저씨. 
처음으로 베를린에 도착해서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을 찾는 란다우에게 다가와서는
영어로 도움을 주면서....자기가 그 방향이니 차를 태워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접근해 온데다
다리를 절면서 지팡이를 짚고 있어서 나로서는 왠지 겁이 났다. 

그런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이탈리아에서 한번 털리고 난
후로는 공연히 긴장이 심해져서 어쩐지 사양하고 싶었다. 난 그냥 걸어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방향만 묻고 그대로 걸어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한 10분 걸었나? 갑자기 그 아저씨의 차가 내 옆으로 와서 주차하면서
빵빵거렸다. 지금 폐관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걸어가면 틀림없이 못볼테니
자기 차에 타라는 것이다. 나도 그냥 항복하고서는 차에 올랐다.페달이 하나
없는 장애인용 차.....

나보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이랬더니 놀랍게도 현대와 울산 을
알고 있었다.(독일식으로는 훈다이 와 울잔) 자기는 지멘스 사의 엔지니어인데
현대 중공업과의 일로 해서 울산에 갈 뻔했다는 거다. (아깝게도 나가리 되었다고)
그러면서 더 친근감을 느꼈는지 나를 목적지 바로 문 앞까지 태워다주고
바로 앞에 이집트 박물관이 있으니 거기서 꼭 유명한 `네펠티티' 여왕의 흉상을
구경하라고 안내까지 해 주었다.

그 친절함이 너무 고맙고....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처음에 경계심을 가졌던
내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몇번이나 당케 ( 독일어 의 댕큐) 를 연발하면서
나는 기념으로 가져간 한국 열쇠고리를 그 아저씨에게 선사했다......

여행하면서 느끼는 묘미는...유명한 유적지를 보는 것보다도 그곳 사람들을
부딪히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나는 특히나 여행의 성수기(유럽 사람들에게는
바캉스 시즌)인 여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더
잘 볼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



                                                    landau .
                     우리는 여행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처음
                  출발한 자리로 돌아올 때, 처음으로 그곳의 의미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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