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08월20일(토) 17시52분40초 KDT 제 목(Title): 주례, 주례사 그리고 교수님들... 내가 학교에 남아 있고 내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학생이어서 그런 지는 몰라도 내가 갔던 결혼식은 대부분 대학의 교수님들이 주례를 맡으셨다. 아마 한국에서는 그래도 아직 대학교수가 주례로 가장 인기가 있을만큼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위치인 모양이다. 거기다가 아무래도 교수님들은 말빨이 세실 거라는 (?) 은연중의 기대도 한 몫 했으리라 짐작한다. 아무리 끗발이 좋은 주례라도 주례사가 엉터리이면 설사 아무도 안 듣는다고 해도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교수님들을 주례로 모시면 무게도 있어 보이고... 말씀도 잘 하실테고... 아마 그래서 교수님들은 이래저래 주례를 자주 보시게 되나 보다. 어느 해인가 과 선배님의 결혼식을 갔더니 우리 과의 s 교수님께서 주례를 보시고 계셨다. 결혼하시는 선배님의 지도교수님이셨단다. 교수님은 무난하게 주례사를 하셨고 이제 신랑신부가 힘차게 행진을 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그냥 신랑신부 행지인~~~ 하면 될 걸,(아마 교수님도 긴장하셔서 적당한 말이 갑자기 기억이 안 나신 거겠지..) 우리의 교수님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로.. "신랑신부 , 앞으로~~~이 갓!" 졸지에 교련 훈련장으로 변한 결혼식장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교수님들의 주례실수는 주로 처음 주례를 맡으시는 경우에 많이 생기는 데, 어느 교수님은 주례를 맡기 시작한 초기 시절에 그만 청바지를 입고 결혼식장에 오시는 사태(?)를 일으키신 적이 있다. 말이 쉬워서 그렇지 청바지를 입은 주례 선생님이라....? :) 황당한 학생들이 교수님에게 여쭈었다. "에고 교수님, 주례를 보시는데 왠 청바지????" 그랬더니 교수님게서 가라사대, "어차피 주례는 식 내내 연단 뒤에 서 있으니까 바지는 안 보이잖아!" 그래서...그렇게 청바지 차림으로 (물론 위에는 양복차림이죠.) 주례를 보셨단다.:P 또 다른어느 교수님은 주례를 자주 보시는 분인데,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지 아직까지 실수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문제는 이 교수님께서 물리학과 학생의 주례를 맡으시면 이런 이야기가 곧잘 들어 간다는 사실이다. ".... 신랑 XXX 군의 연구 결과는 물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기치고 있으며... .... 세계적인 수준의 업적으로 인정 받고 있읍니다......" 말이 고대로 인용된 것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뜻의 주례사가 많다. 그러면 멋도 모르는 일반 하객들은 그런가...? 하고 생각하지만, 신랑이 얼마나 과내에서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 얼마나 교수님의 속을 썩이고 졸업을 했는지 아는 과의 선후배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고생을 해야한다. 언젠가 나의 동기생 한사람이 지방에서 결혼을 했는데 평소 자신은 잘 모르던 아버지의 친구분 (역시 교수님)이 주례를 서셨단다. 친구들 몇이서 축하를 해주러 그 먼 도시까지 갔는데... 주례사에 이런 말이 있더란다. "...XXX 군을 보니 역시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눈이 참 맑다고 느꼈읍니다. ...." 평소에 건달에 더 가까운 신랑을 잘 아는 친구들은 "쟤는 술 먹을 때만 눈이 맑아 지잖아...." 하는 어느 한 친구의 농담에, 하객석의 제일 앞에서 큰 소리로 웃지도 못하고 단체로 키득키득 대면서 몸을 떨었단다. 나의 사촌 여동생이 결혼 할 때는 내 사촌 자형이 된 사람의 대학 시절 지도교수님이 주례를 서셨는데, 이 분이 영문과에서 하필이면 셰익스피어 비극을 전공하신 것이 화근이었다. ".... 여러분 결혼은 인생이나 마찬가지로 얼굴에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연극에 불과 합니다. 신랑신부도 이 시간부터 얼굴에 가면을 써야 합니다...어쩌구...." 솔직히 무슨 말인지 전체를 들으면 그럴듯한 내용이었지만 어디 누가 주례사를 그렇게 꼼꼼히 듣는가 말이다. '가면' 이니 '연기'니 하는 말만 따로 들으면 마치 결혼하면 위선적으로 겉과 속이 다르게 살라고 들리는 것 같아서 다수의 하객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교수님들은 자기가 지도하는 대학원생이 다른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하면 상당히 섭섭해 하신다. (덕분에 나도 신부는 없으면서 주례는 이미 확정되어 있는 해괴한 상황이다.) 나의 친구는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교수님께서 오시기 어려우리라 지레 짐작하고는 그곳 현지에서 주례를 구했는데 그 때문에 그만 한동안 교수님의 눈 밖에 나버린 적도 있었다. 대학원생들이 이런 '교수님 주례'를 벗어 나는 길은 오직하나 교회나 성당에서 식을 올리는 것 뿐이다. 여기서는 목사나 신부가 식을 진행하니까.....:) May the force be with you ! LANDAU ( fermi@power1.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