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2001년 2월 23일 금요일 오전 12시 49분 24초 제 목(Title): [Celtic 기행 V] 녹색의 아일랜드 (1) 유럽에서 제일 멋있는 바다는 어디게? 이 문제는 유럽에서 어느나라 여자가 제일 예쁘냐만큼 설들이 구구하다. (아... 결국 또 나왔다. 란다우의 여행기에 꼭 한번은 나오는 예쁜여자 이야기. 날카로운 푸르니님. 스코틀랜드 여행기에 여자이야기 없다는 것을 알아채다니) 어디어디 바다가 멋있다는 주장이 난무하지만, 란다우는 더블린(Dublin) 근처의 호워스(Howth)에서 바라본 아이리쉬해 (Irish Sea)만큼 멋있는 바다는 유럽에 없다고 늘 주장한다. 영국에 있는 동안 반드시 아일랜드를 한번 가보겠다고 한국에서부터 맘을 먹었지만, 원래 서울 사는 놈이 63빌딩 못 올라간다고 이상하게 바로 옆에 살면서 아일랜드 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돌아갈 날이 한달쯤 남은 어느 여름날, 란다우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일랜드로 가는 야간버스에 올랐다. 친절하지만 밥맛 떨어지는 잉글리쉬들과는 달리 듣던대로 순박한 느낌을 주는 아이리쉬들이 많은 것 같은 야간버스와 야간페리의 내부. 배낭을 메고 여행자 티가 단박에 드러나는 란다우에게 아일랜드 사람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듣기 힘든 인사를 건네었다. `First time in Ireland?' 아마 영국이니 프랑스니 하는 나라들과는 달리 유럽에서 외진 이곳 아일랜드에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처음 오는 사람들인가 보다 :) 북 웨일즈에서 출발해 밤새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아이리쉬 해를 가로지른 페리는 뿌연 여명이 밝을때 쯤해서 저만치 아일랜드 해안이 보일정도에 도달했다. 어두컴컴한 속에서 강렬하게 나타나는 흑녹색의 완만한 구릉과 해안선. 새벽의 실루엣은 확실히 나에게 아일랜드의 첫인상을 녹색으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억지로 짜낸 이틀간의 여행에서 첫날은 더블린 근처의 호워스 라는 자그마한 반도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짧아서 아일랜드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서부지역을 볼 수 없는 나에게, 영국쪽의 동부해안에서 가장 서부와 비슷하기 때문에 `아일랜드의 하이라이트' 라고 불리는 호워스 반도는 그야말로 안성마춤이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답게 녹색이 실내치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DART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더블린 지역 교통국의 열차를 타고 호워스 해안으로 향했다. (DART = Dublin Area Rail Transport ?) 믿어지지 않을만큼 맑은 날씨였다.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여가수 Enya 의 최신 앨범 제목을 아시는지? A day without rain이다. 앨범 타이틀 곡을 만들던 날 비가 안와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고 할 정도로 아일랜드도 비오는 걸로 말하면 영국이 형님으로 모실 지경이라는데, 그날만큼은 이 머나먼 유럽의 서쪽 끝까지 찾아온 한국여행객을 위해서인지 아일랜드는 구름 한점 없는 맑고 청명한 하늘이었다. 호워스 반도는 하루 하이킹 코스로 딱이다. 역에서 내려서 작은 반도의 반대편으로 약간 높은 고원지대(?)를 지나는데 두어시간 정도, 해안에 도착하면 Cliff Walk라고 해안가를 따라 반도를 빙 둘러서 원위치로 돌아오는 약간 험한 산책로가 역시 두어시간 정도. 해안을 향해 반도 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은 초장에 반쯤 무너진, 켈트 적인 인상을 풍기는 작은 고성이 있고 골프장이 하나 있은 다음, 꽤 험한 산길로 이어진다. 란다우는 길을 잘못들어 한참을 헤매다가 이상한 빈터 같은 곳으로 나왔는데, 사방에는 깊은 숲이고 아주 작은 공간이 풀한포기 없이 비어있는 것이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곳 같은 느낌이었다. 아일랜드와 켈트 족은... 언제나 주술적이고 약간 동화적인 분위기를 곁들여 달고 다닌다. 그날 안개라도 끼었더라면 정말 영화나 비디오에서 보던 요정 이야기 분위기 였을텐데. *) 산길을 빠져 나오니 넓직한 초원지대 같은 평지가 나왔다. 자갈반 잡초반의 평평한 땅은 사진으로만 구경했던 서부 아일랜드의 풍광 이랑 꼭 닮았고 나는 그제서야 왜 호워스 반도가 아일랜드의 하이라이트 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걸로 봐서 미국인 으로 짐작되는 어느 관광객 부부와 `오늘 날씨 무지 좋죠?'하고 인사를 주고 받으며 걷고 걸어서 나는 호워스 반도 반대편 해안에 도착했다. 반대편 더블린 쪽과 달리 깍아지른듯한 낭떠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에 눈부실 정도로 짙은 청녹색 으로 빛나는 아이리쉬 해와 그 위를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 유럽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의 모습이었다. 드라마틱한 낭떠러지와 완만한 구릉 사이로 오솔길처럼 나 있는 Cliff Walk를 따라 걸으면서 란다우는 영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어떤 편안함을 느끼며 아일랜드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에머랄드 빛의 청정한 바다, 맑은 공기, 따스한 햇살, 그리고 아무것도 서둘 필요가 없는 그 한가로움. 편안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영국에 온 이후로 언제나 긴장되고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하고, 많이 구경해야 하고, 여러가지를 배워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것이 있었고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도 그랬지만, 이상하게 Cliff Walk에서부터 아일랜드만큼은 편안하고 상쾌하고 유쾌했다. 유럽대륙이나 영국과 달리 특별한 구경거리도 없고 낙후된 아일랜드지만, 내 생각에 아일랜드의 진짜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여유로운 편안함. :) Cliff Walk를 지나서 호워스의 낮은 해안가로 나오면 예쁜 아일랜드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들이 이어진다.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시인 예이츠가 호워스에 반해서 (예이츠만이 아니라 나도 홀딱 반해지) 살았다는 집도 있고, 1차대전인가 2차대전때 (오지도 않는) 독일군을 대비해서 만들었다는 벙커 비슷한 방위시설도 남아있다. 해질녁쯤해서 출발지인 호워스 역 앞에 도착해서 두어개 밖에 없는 상점에서 아일랜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엽서를 몇장 샀다. 호워스는 때묻지 않아서 좋다. 유럽의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털기위한 상점이 득시글 거리건만, 유럽의 벽지 아일랜드 그 중에서도 외곽인 호워스에는 엽서 몇 장을 빼고는 그 흔한 티셔츠 파는 곳도 찾기 어려울만큼 한가롭다. 예쁜 범선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작은 포구에 주저앉아서, (지금은 레딩으로 옮겼지만) 당시엔 아일랜드행 직행 페리가 다니는 리버풀에 살면서도 그때까지 아일랜드에 와보지 못하고 있던 친구에게 `나 아일랜드 왔지롱. 놀랬지?' 하는 엽서를 썼다. 영국에서 오래 유학했기 때문에 내가 영국에 있는 동안 마치 누님처럼 날 구박(?)했지만, 적어도 아일랜드에서는 내가 오빠다. 음~~ 핫핫핫핫 ^.^;;;; 그림처럼 예뻤던 호워스를 뒤로하고 DART에 올라서 나는 화살처럼 빠르게(?) 더블린을 향했다. 제임스 조이스와 IRA, 그리고 마이클 콜린스의 도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