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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arche (기마토끼)
날 짜 (Date): 1995년03월14일(화) 17시02분13초 KST
제 목(Title): 술


나는 어떤 경우에도 철저히 깨어 있어야 하며 맨 정신으로 부닥쳐야지 

술에 의지하는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 입장에 그리 큰 변화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나 자신이 여러 번 마셔 보면서 선배들과 친구들이 얘기하곤 하던

무너지는 벽, 친근감, 기댐, 배설, 등등의 경험이 여러가지로 나의 신경을, 

특히 미적으로 자극했고, '술'에 대해 조금씩 관용적이 된 것이 사실이다.

너무 일반화하는 것같지만, 술은 그래도 안 마시는 사람이 강한 것이다.

한국에 여덟 달 남짓 다녀온 후배(?)를 만났다. 어려서부터 외국을 전전하며 

산 터라 대학생으로서의 한국 생활에서 많은 것을 느낀 것이 틀림없다.

뭔가 상당히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같았고...

여기 미국에 있는 다른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도 많고 실망하게 되는 점도 있겠지.

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 나는 이제 탐미적 경향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

열정과는 별도로 그의 "한국"에 대한 경험은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술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는 그 앞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선배에게 계속 도전을 던지는 그 애 앞에서, 나는 또다시 나 자신의 "옛날"을

스스로 들추어 괴로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단순히 "야 임마, 네가 몇달간 그들과 술담배를 같이 해봤다고 그들의 역사를

알고 그들의 아픔을 알 수 있을 것같아?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 가지고 네가

벌써 네 친구들을 판단할 정도로 스스로 그렇게 컸어?"라고 면박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히 뭔가 느꼈지만... 그것의 실체를 붙잡으려면... 짧은 시간으론

불가능할 것이다. 

뭔가 느꼈지만... 타고난 "계급성" 때문에 완전한 이해는 너무나 어려운...

차라리 불가능한... 그건 바로 내가 그토록 아프게 느꼈었고 지금은 

고맙게도(?) 정리해가는, 어쩌면 그저 잊어가는 감정이 아닌가?

다툼이라기 보다는... 서로에 대한 하소연이 되고 마는 술자리를...

이제는 선배의 입장에서 같이 하게 되면서... 내가 도대체 왜 여기 있는가,

내가 도대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본다.

연륜이란 것이 이렇게 가벼운 것인가. (쩝.. 선배님들.. 죄송)

사실... 난 또 뭐가 잘나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 참내.

또다른 후배의 하소연이 머리 속을 울린다.

"형, 요즘 와선 난 미국 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닌 것같아요. twinky * 애들은

차라리 괜찮아요. 나같은 FOB * 는 정말 이쪽 저쪽에도 못 끼겠어요."

국적을 결정해야 하는 20대초의 대학생들은 정말 심각하게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같다. 

이 "고민"이라는 것... 단순히 아름답다 하기엔... 너무 쓰라리다.




* FOB(free on board?)는 미국에 늦게 이민 가서 영어 보단 아직 한국어가 익숙한

학생들, twinky(과자 이름?twinkie?)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려서부터 살아서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학생들을 가리켜 서로 부르는 말이다. 서로 파당을 지어

욕하는 말인 것같아서 처음엔 상당히 안 좋게 생각했었으나, 서로 그렇게 

경멸하는 것같지는 않고, 내가 아직 그 호칭의 역사를 잘 모르기 땜에 

판단은 일시 유보하기로 했다. 
 

First came the vacation and then the next term and then vacation again and 
then again another term and then again the vacation. It was like a train going 
in and out of tunnels and that was like the noise of the boys eating in the 
refectory when you opened and closed the flaps of the ears. - PAYM, 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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