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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semi (고봉균)
날 짜 (Date): 1995년03월06일(월) 14시52분16초 KST
제 목(Title): 사람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국민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만으로 열 살이 채 안 되었을 때일 것이다.
당시 조립식 프라모델은 내 용돈 사정에 비추어 싸지 않았기에,
대신 판지공작 책을 구해다가 거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은 주로 장식용--그러니까 움직이지 않는--판지 모형만을 만들었으나,
흔히 아이들이면 그러듯 나도 움직이는 모형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예전에 만들어뒀던 탱크 프라모델에서
모터가 달린 밑판을 떼어내
판지 모형에 부착해 움직이도록 하기도 했다.

기차공작에 관한 책을 시작하면서
진짜 그 기차에 어울리는 동력부와 바퀴 등을 만들려고
책에 소개된 규격의 작은 부품들을 부모님께 사다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사 들고 온 것은 엉뚱하게도 기차 프라모델이었다.
좀 생소한 회사 제품이었고,
부모님께 사달라고 조를 엄두가 나지않을 만큼 비싼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마 그래서 지금의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원한 물건들을 사러 들른 어떤 과학상사에서
그 주인이 "국민학교 3학년 짜리가 이런 부품들을?"하고 의심하는 것에 넘어가,
당시 보통 꼬마들이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조립모델을 추천받아
사 들고 오신 것이었다.
오호 통재라.
그 프라모델은 불량품이었다.
바보같은 엄마아빠, 뚱땡이 호박 같은 과학상사 주인...

덜 떨어진 전문가의 의견을, 사랑하는 자식에 대한 믿음보다 우선시하다니!

나도 당시 내가 그 모든 것은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다.
처음 해보는 짓이니까.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좀 뚝딱거리면 되겠지...
분명히 별것 아닌 부품들이었다.

적어도 부모님은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지 않더라도
나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도전해보게 했어야 했다.
"넌 어려서 못해!"가 아니라, 일단 해보게 하고,
잘되면 좋은 거고 안 되도 거기서 뭔가를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실망하지 않게 인도하면 더욱 좋겠지.

확고히 믿진 않더라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누가 그를 믿고 격려해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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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학의 본질은 자유이다." -Georg Cantor, 무한집합론의 창시자
        % "수학은 전제가 없는 과학이다." -David Hilbert, 1927 함부르크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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