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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eyedee (아이디)
날 짜 (Date): 1995년02월17일(금) 12시02분45초 KST
제 목(Title): * 80년대 - 농활을 가서..


  일학년 여름방학 때 농촌활동(이하 농활)을 가게되었다. 
  
  농활가기 전에는 선배들이 일본어 공부를 시켰다. 
  
  뭐..세계화나 국제화를 대비해서 그런건  아니고, 학생들의 사회과학 
  
  이념에 대한 탐구심이 강했는데 당시엔 이념서적에 대한 통제가 강해서 
  
  구미(?)에 맞는 번역본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학생들의 이념서적에 대한 
  
  갈증이 일본의 좌파 학자들의 책을 찾게 만들었다.
  
  
  일본책을 읽으려면 일본어를 알아야하니 선배들이 공부를 시킨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점차 국내 사회과학 서적 출판이 활성화되면서 일본어 학습의
  
  필요성은 사라졌다.
  
  
  일본어 공부가 끝나고 농활이 예정되어있었다. 언더조직이니 맘놓고 농활
  
  을 할 처지가 못되서 유령교회 대학생부를 사칭하고 가야만했다.
  
  우리 팀은 남학생 일색이어서 서울여대 팀하고 같이 농활팀을 구성했다.
  
  얼굴도 읽히고 농촌현실도 미리 파악할겸해서 농활에 앞서 2일정도 수원
  
  근교에서 MT를 했다. 
    
  
  세미나를 했는데 "저임금 정책을 유지하기위해 저곡가 정책을 강요한다"
  
  "농지세나 비료 값등이 불합리하다" ..등등의 내용이었다.
  
  세미나 도중, 대구 출신 선배가 "쌀값"을 자꾸 "살값"으로 발음해 이상한
  
  느낌을 줘 웃음이 터지곤 했다.
  
  
  MT를 마치고 드디어 완행열차를 타고 현지로 내려갔다.
  
  이미 지난해에도 들린 곳이라 농민들이 반갑게 맞아줬다. 마을회관에
  
  숙소를 정하고 즌비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활동은 다음날 부터였는데  대충 일과를 살펴보면 
  
  아침 6시 기상, 체조 및 농민가 제창, 조식,
  
  조별로
  
  아침 8-12시: 농민들 일돕기.
  
  오후 1-5시 : 농민들 일돕기.
  
  오후 8-10  : 농민 가정 방문
  
  다모여서
  
  11시 - ?  :반성 및 토론회
  
  순이었다.
  
  
  열흘 동안 하루 8시간씩 일을 해야했는데 안하던 일이라 무척 힘들었다.
  
  농촌일의 대부분이 허리를 굽히고 하는 일이라 노동강도 보다는
  
  허리가 아파 괴로웠다. 처음에는 허리가 뽀개질듯이 아프더니 2-3일이
  
  지나니까 그저 멍할뿐 감각이 둔해져 견딜만했다.   
  
  일하는건 당연한 것이지만 자잘한 행동수칙이나 심야 반성회는 못마땅
  
  하게 느껴졌다.
  
  
  행동수칙을 보면 "방에서 다리를 뻗지 말라," "벽에 등을 기대지 말라,"
  
  "취침 시간이 아니면 절대 자거나 졸지말라," "대중가요를 부르지 말라,"
  
  "음주 금지,"  "밥알 한개도 남겨선 안된다," "가게에서 파는 것이면 농민
   
  들이 권하더라도 사이다 한 방울 마시지말라 (농민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등등이었는데 농민들과의 대면시 주의사항을 제외한 나머지 중엔 납득하
  
  기 힘든 부분들이 있었다.
  
  
  농활의 성격을 그때 파악해보니 단순한 노동의 체험이나 봉사, 농민 의식
  
  화 같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투사로서의 각오를 다지는 극기훈련장 같았
  
  다. 한 선배가 회고하길 "예전에 농활중에 보름달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
  
  선배가 감상적이었다는 이유로 비판받은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말이
  
  실감났다.
  
  심야 반성회는 더 힘들었다. 하루종일 일을 해 피곤한데 잠을 쫓으면서
  
  하루 중 무엇을 잘못했나 돌아가며 이야기하고 자책의 시간을 갖는 것은
  
  지나쳐 보였다. 
  
  일하다가 매실주를 한잔 얻어마셨다고 고백하고 스스로를 비판하던 
  
  한 선배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하더라도 그처럼 엄격하게 스스로를 얽어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치기 힘들었다. 
  
  난 농활에서 헌신이나 강인한 인간성뿐아니라 교조나 도그마의 가능성도
  
  함께보았다. 그이유는 아마 내가 다른 사람 처럼 투철한 신념이나 용기가
  
  없어서 였는지도 모르지만..
  
  
  서울여대 쪽 리더역할을 한 작고 무척 약해 보이는 예쁜 누나가 있었다. 
  
  이 누나는 밥도 아주 조금 밖에 안먹는데 하루 8시간 열심히 일을하고 심야 
  
  반성회가 끝난후에도 우리쪽 선배 두어명하고 이야기를 하다잤다. 
  
  열흘동안 매일 3-4시간 밖에 안자는 듯했다. 무엇이 그를 그처럼 행동하게
  
  했을까?  "인간/세상에 대한 애정"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자기 구속"이 동시에
  
  작용했다면 너무 건방진 말일까?... 
  
  
  농활이 끝난 후,  처녀 총각이라곤 한명도 없던 마을, 일에 시달려 나이보다 
  
  10살쯤은 더들어 보이는 아줌마들, 동네서 제일 잘팔리는 약이 신경통 약 
  
  "낙센"이라는 한 아저씨의 말등의 기억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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