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5년02월13일(월) 00시10분58초 KST 제 목(Title): 전통의 가치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거의 백년의 전통을 가진 유서 깊은 학교 였다. 경기고나 서울고 같은 명문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비록 뺑뺑이를 돌리고 고등학교를 배정 받는 세대였지만 학교에 대한 애착은 제법 있어서 주변에 있던 신설 고등학교를 `뼈대 없는 학교' 라고 곧잘 놀려 먹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오래된 학교다 보니 시설도 낡았고 고래로 전해 내려오는 악습도 많아서 `뼈다구 있는 학교' 라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 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이란 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바로 그곳에서 배웠다. 지금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각 고등학교 별로 2~3년 마다 한번씩 교련검열이란 것이 있었다. 각 학교가 교련과목을 똑바로 가르치고 있는지 담당장학관이 나와서 검사를 하는 행사였는데, 아마 대학입시에 치중한 나머지 서류상으로만 교련을 했다고 보고하고 그 시간에 학력고사 과목을 가르치는 파행을 저지르는 학교가 많아서 였던 걸로 기억한다. 재수없게도 난 3학년 때 그 교련 검열에 걸려서 피 같은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구령에 맞추어 행진 연습을 해야 했었다. 교련검열은 간단하다.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전부 집합해 행진을 하고 장학관이 있는 연단 앞으로 행진하면서 분열이란것을 하는 것이다. (혹시 안해본 사람들은 모스크바 붉은 광장 앞에서 무슨 국경일때 군대가 행진을 하고 서기장 앞에 오면 받들어 총 내지 우로 봐를 하고 서기장은 박수치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평소에 교련을 똑바로 안한 학교에서는 이때 줄이 안맞고 손이 안 맞아 학생 연대가 오합지졸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교련검열의 통과여부는 장학관 앞에서 분열을 할때 줄이 얼마나 잘 맞는가 손발이 얼마나 잘 맞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데.... 검열일 1주일 전쯤부터 오후시간 내내 분열 연습을 하는데 교련선생님들의 얼굴이 도무지 펴질 줄을 모르고 완전히 쭈그렁박 인것이다. 왜? 애들이 너무 못해서! 우리학교가 교련을 빼먹은 것도 아니고 할 거 다했는데도 정작 이런 대규모 분열을 해보니까 줄 속에 서 있던 내가 보기에도 엉망진창이었다. 학생들 발이고 줄이고 도무지 맞는것이 없었으니까. 교련검열에서 탈락하면 재검열을 받아야 했고 ( 쉽게 이야기해서 잘할 때까지 다시 한다! 이거지 뭐...) 교련선생님들은 문책에, 학교는 파행수업을 했는지 내사에...사태가 상당히 우려스러웠다. 어지간히 못하지만 않으면 다 통과랬지만 우리는 그 `어지간히' 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던 것이다. 맘이 급한 교련 선생님들은 직전날에는 수업을 전폐하고 하루종일 최종연습을 시켰지만 엉망진창인 우리의 행진실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개판오분전인 상태에서 날이 저물때가 되고 말았다. 교련과 주임선생님은 눈물을 머금으시며 마이크를 잡으시고 학생들에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탈락이 뻔하지만 그래도 운을 하늘에 맡기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통과되도록 노력해보자, 응? 최소한 학교 이름을 욕되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니냐?" 라고 최후의 유언(?)을 남기셨다. 그런데 내 모교에는 옛날부터 ` 우리학교는 실전에 강하다 ' 는 전통 아닌 전통이 하나 내려오고 있었다. 주로 입학시험과 관련된 것인데 평소에 모의 고사 같은것은 죽을 쑤다가도 입학시험 에서는 대히트를 치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는 징크스(?)이다. 그 징크스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 다음날 분열 때 교련선생님들 모두를 거의 졸도(?) 직전까지 몰고가는 놀라운 기적을 연출해 냈다. 어제까지 오합지졸, 개판 오분전, 엉망진창이란 수식어로도 모자라던 우리들이 정작 실전에 가서는 장학관의 감탄사를 자아내게 할 정도로 일사불란한 행진을 이루어 낸 것이었다. 선도부였기 때문에 행진에 참가를 안하고 교문에서 도열해 있던 내 친구 하나는 나중에 왈, " 야...국군의 날 육사생도 뺨쳐 먹을 지경이었어. 어제는 그리 엉망이더니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바뀌냐? " 우리가 분열을 끝낸 뒤 장학관의 일장훈시가 있었는데 그 첫머리가 이랬다. "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역시 백여년에 가까운 전통을 가진 학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읍니다....어쩌고 저쩌고..." 우린 웃음을 참고 차렷자세를 유지하느라고 돌아가실 뻔 했다. 어제까지 탈락을 걱정하던 학교에게 이게 왠 칭찬? :) 장학관이 퇴장하고 난 후에 교련주임 선생님이 우리에게 모라고 그러실려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는데 목이 메어서 말을 못하시다가 겨우 한말씀 하셨다. " 연습때부터 똑바로 하면 더 좋았자나! :( " 킥킥킥.... 전통이란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거다. 우리나라에는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여파로 아직까지도 `전통' 이라면 우습게 보고 `새로 시작하는 것' 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는데, 내 생각에는 새로운 것 만큼이나 전통 있는 것도 가치있다. 전통있는 집단은 변화하기 어려운 대신, 시행착오가 적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가치를 더 발휘한다. ( 뿌리깊은 나무 바람에 어쩌고 하는 말쌈(?)이 있잖은가? ) 그 다음달 쯤인가 TV 에서 세계의 유명대학을 소개한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일본의 와세다 대학을 소개했던 편의 한장면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서클 선배가 신입부원을 교육시키는데 인사하는 방법이 글러먹었다고 자그마치 30번이나 다시 인사를 시키면서 매번 기합을 넣는 장면이었다. 거기에 붙일 수 있는 말은 여러가지다. 전근대적, 군국주의, 시대착오..등등.. 하지만 말이다... 바로 거기에서 와세다의 교풍이 나오고 모방의 천재이면서도 의외로 국수적인 일본인이 나오는 것이다. 그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이거였다. " 일본의 혼, 와세다 "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은 소중하다. 과거의 악습을 떨쳐버릴 수 있으니까. 반대로 그만큼 전통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p.s.: 시그너춰 때문에 요새 실연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에요. 심심해서 그냥 적은 겁니다. 그리고 이 시그너춰는 제 말이 아니고 이 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에 나옵니다. 똑 같지는 않지만요. :) ___ landau 의 이달의 격언 ___ 여자와 버스는 놓쳐도 또 온다. 단지 배차간격이 좀 다를 뿐이다. |